• 신편 한국사
  • 고대
  • 08권 삼국의 문화
  • Ⅴ. 과학기술
  • 1. 한국 과학기술의 형성

1. 한국 과학기술의 형성

 기원전 1천년경 한반도 지역에 청동기 문화가 출현했다. 그것은 매우 세련된 비파모양 청동검을 돌거푸집으로 부어만드는 수준 높은 기술과, 표면을 잘 갈아서 반들반들하게 한 갈색 계통의 민무늬토기를 구어 만드는 기술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기술 문화였다. 비파모양 청동검은 지금의 중국 동북지방 요녕지역을 비롯하여 한반도의 여러 지역에서 만들어진 한국 고유의 청동기로, 중국의 청동기와는 확실히 구별된다. 중국과는 다른 기술의 흐름을 담은 것이다. 우리는 그것이 중국의 과학문명과는 다른 북방계 문화의 영향에 의하여 발전한 비교적 수준이 높은 기술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 토착기술의 전통 위에 한국인은 중국의 과학과 기술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한국인은 중국의 그것을 언제나 한국적인 것으로 변용하고 개량하려는 노력을 기울여 더욱 새로운 한국의 기술 모델을 만들어 내려고 시도했다.

 비파모양 청동검들과 함께 출토되는 여러 청동기들은 이러한 사실을 말해 주고 있다. 청동검과 청동거울로 대표되는 한국 모델의 청동기들은 중국의 청동기와는 다른 계통의 기술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비파모양 청동검에 이어서 출현한 한국형 청동검, 2개의 꼭지가 달린 굵은 줄무늬 청동거울과 가는 줄무늬 청동거울은 한국에 독특한 청동기이다. 중국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이 독특한 형식의 청동검과 청동거울은 한국의 청동기 기술자들이 뛰어난 디자인 감각과 세련된 제작기술을 가지고 있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 청동기들은 청동기시대 지배자들의 권력의 상징물로서 또 종교적인 의식에 쓰는 儀器로서 손색이 없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단번에 중국의 청동기 기술과 같은 수준으로 뛰어 오른 기술혁신의 소산이었다. 이것들은 청동방울과 함께 일본에 건너가서 그 기술이 이식되었고, 神器로서 종교적 상징물로 존중되었다.

 청동기 기술에서 한국의 청동기시대의 기술자들이 개발한 것이 2가지 있다. 하나는 돌거푸집의 기술이고 다른 하나는 청동 합금기술이다. 한국의 청동기시대 유적에서는 많은 돌거푸집들이 출토되고 있다. 그것들은 활석과 사암으로 만든 것이 대부분이고 진흙거푸집은 지금까지 거의 발견되지 않고 있다. 돌거푸집에 의한 주조기술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돌거푸집의 재료는 거의 모두가 활석(곱돌)으로 만든 것이었는데, 그것은 가장 이상적인 돌거푸집이다. 중국에서 많이 사용된 진흙거푸집은 한국에서는 비교적 적게 사용된 것 같다.

 한국의 청동기술이 중국의 그것과 다른 계통의 기술이라는 또 다른 사실은 청동기의 합금 성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중국 청동기의 주성분은 구리·주석·납이다. 그런데 한국인이 만든 청동기에는 초기의 것부터 구리·주석·납으로 된 청동기와 함께 아연-청동 합금으로 된 것들이 나타나고 있다. 장식용이나 의식용으로 쓰는 청동기를 황금빛으로 빛나게 하기 위해서 구리·주석·납에 아연을 섞는 기술을 개발한 것이다. 아연-청동 합금으로 된 청동기는 중국에서는 한나라 때에 이르기까지 발견되고 있지 않다. 기술적인 어려움 때문에 중국에서는 개발되지 않았던 합금기술을 한국의 청동기 기술자들은 그들의 필요에 따라서 발전시키고 있었다.673)全相運,<韓國古代金屬技術의 科學史的 硏究>(≪傳統科學≫1-1, 1983), 9∼27쪽. 한국의 과학기술이 형성되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의 청동기 기술은 기원전 4세기경에 최고의 수준에 도달하고 있었다. 한반도의 여러 곳에서 발견되고 있는 많은 잔줄무늬 청동거울은 그 기술이 믿기 어려울 정도에까지 이르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제품들이다. 그 중의 하나, 지금 숭실대학교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는 잔줄무늬 청동거울은 특히 주목할만한 뛰어난 작품이다.

 직경 21㎝의 이 청동거울에는 0.3㎜ 간격의 가는 평행선이 1만3천 개가 그려져 있는데, 그 선들은 수많은 동심원과 그 원들을 등분하여 생긴 직4각형과 정4각형, 그리고 3각형들이 정확하게 제도되어 있다. 이와 비슷한 잔줄무늬 청동거울은 한국에는 많이 남아 있지만, 일본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는 발견된 일이 없다. 이 청동거울은 또 그러한 기막히게 정교하고 멋있는 디자인을 거푸집으로 부어내는 고도의 기술에 도달하고 있었다는 사실에서 우리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돌거푸집에 의한 주조기술은 기원전 3세기경에 전개된 한국의 독자적 모델의 무쇠도끼 주조기술로 이어지고 있다. 이 시기에 한반도 지역에서는 많은 무쇠도끼들이 같은 크기의 돌거푸집을 써서 대량으로 주조되었다. 한국의 제철 주조기술은 돌거푸집에 의한 청동기 주조기술과 이어진다. 한국의 제철 기술자들은 거기에 중국의 선진 제철기술을 수용하여 한국인의 철기기술을 개발해 나갔다. 돌거푸집으로 부어만든 규격화된 한국의 무쇠도끼들과 강철에 가까운 큰 칼들, 그리고 대량 생산된 철제 농기구들의 출현은 한국인의 제철기술이 훌륭히 전개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국의 제철기술은 초기 철기시대부터 시우쇠와 무쇠, 그리고 강철의 세 가지 철을 다 만들 수 있는 기술 수준에 도달하고 있었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기술고고학적 연구로 정리할 수 있는 우리의 생각이다. 그런데 한국의 철기시대는 기원전 5∼4세기에 중국의 철기문화가 들어오면서 형성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설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금속기술사적 입장에서 볼 때 한국의 제철기술은 고도로 앞선 수준에 도달하고 있었던 한국의 청동기술이 그대로 이어져서 현지의 원료를 가지고 이루어질 수 있었다고 해도 별로 무리가 없을 것이다. 초기 철기시대의 유물들이 출토되는 유적들이 철광석의 산지이거나 조선 초기 지리지에 나오는 철의 산지와 같은 지역이라는 사실은 그러한 가능성과 연결되는 기술적 배경이다.674)이 문제는 앞으로 고고화학적 분석과 기술고고학적 연구에 의해서 구명되어야 할 과제이다. 지금까지의 관련 연구는 전상운·윤동석·이남규·奧野正男(오꾸노)과 북한 학자들 등의 논저들이 있으나, 분명한 결론에 도달할 만치 충분한 자료들이 나와있지 않다. 한국의 사철과 갈철광에 대한 기술고고학적 분석 연구가 더 축적되고 진전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기술적 바탕이 다져지고 있던 한국의 철기기술에 중국의 철기문화가 유입되었다. 한국인은 그 새로운 금속문화를 수용하여 한국인의 제철기술을 발전시키고, 한국의 철기문화를 재창조해냈다. 원삼국시대의 발달된 제철기술과 철기문화는 그렇게 해서 형성된 것이다. 그리고 이 금속기술은 고구려·백제·가야 그리고 신라에 그대로 계승되어 그 기술이 높은 수준에서 전개될 수 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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