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대
  • 09권 통일신라
  • Ⅳ. 대외관계
  • 3. 해상활동
  • 1) 항로의 개척과 항해술의 발전
  • (1) 북방해로(노철산항로)

(1) 북방해로(노철산항로)

 신라가 독자적으로 중국과 직접 교류하여 국제 무역활동에 등장하게 된 것은 眞興王 25년(564) 北齊(550∼557)와의 교역에서 비롯된다. 이 때 이미 신라는 대중국교역의 중요한 港浦인 남양만의 唐恩浦(경기도 남양)를 점유하고(552) 있었으므로 바다길을 통한 교역이 손쉬워졌다. 이 뒤로 신라의 중국에 대한 이른바 朝貢貿易은 본격적으로 행해졌다.

 당나라 賈耽(730∼805)이 저술한≪道里記≫0773)≪新唐書≫권 43 下, 志 33 下, 地理 7 下.에 보면, 중국에서 신라로 가는 해로를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북방해로인 것이다. 이에 의하면 登州(山東省 蓬萊)를 출발하여 동북으로 大謝島(長山島)·鼉欽島(砣磯島)·末島(大·小欽島)·烏湖島(南隍城島)를 거쳐 300리를 나아간다. 그리고 북으로 烏湖海(黃詳川 海面, 老鐵山水道)를 지나 馬石山(老鐵山)의 都里鎭(旅順口)까지 200리를 가서 동쪽으로 靑泥浦(大連 부근)·桃花浦(金縣 淸水河口)·杏花浦(莊河縣 花園口)·石人汪(石城島)·橐駝灣(小洋河口)을 지나 烏骨江(鴨綠江口)까지 800리 길을 간다. 다시 남쪽 해안, 즉 한반도 서해안을 따라 烏牧島(平北 宣川郡)·浿江口(大同江口)·椒島를 지나 長口鎭(黃海 豊川郡)에 이른다. 다시 鵠島(白翎島)·秦王石橋와 麻田島·古寺島(江華島)·得物島(德積島)를 거쳐 唐恩浦(京畿 南陽灣)에 이른다. 이곳은≪도리기≫의 종점으로 신라시대에 대중국대륙 교통의 요지 가운데의 하나였다. 당은포에서 육로로 700리 길을 가서 신라의 서울 경주에 도달한다.

 이 해로는 곧 중국의 산동반도 등주를 출발하여 동북쪽으로 발해만의 노철산하구를 거쳐 大連灣의 동쪽을 지나 압록강 하구에 이른다. 여기에서 한반도의 서해안을 따라 남하하여 대동강 하구와 초도를 지나 瓮津灣과 강화도·덕적도를 거쳐 남양만에 이른다. 이 뱃길은 진흥왕 13년(552) 신라가 한강유역을 점유한 뒤로 때로는 고구려·백제의 방해로 막히고 위협을 받기도 하였으나 멸망할 때까지 중단없이 이용되었다.

 신라와 당 사이의 이 항로는 근해 연안 혹은 섬을 따라 항해하기 때문에 비교적 안전하였다. 비록 항해거리가 멀고 시간이 걸린다고는 하지만 비교적 안전하기 때문에 이른바「遣使獻貢」이란 정치적·경제적·군사적·문화적 의례적인 교빈관계가 이 항로를 통하여 오래토록 지속되었다.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