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대
  • 09권 통일신라
  • Ⅴ. 문화
  • 5. 예술
  • 4) 공예
  • (1) 금속공예

가. 시대개관

 삼국을 통일한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러서는 중국대륙의 唐이라는 거대한 단일국가가 발산하는 강한 영향력을 받아 고유한 특색을 갖추고 있던 신라라는 고대국가는 내외면에 걸쳐 중국적인 영향으로 인해 중국화되어 가는 것으로 변질되어 갔으며, 또한 서역적인 요소도 영향을 받아 다분히 국제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고, 고신라 왕들이 즐겨 썼던 金冠을 버리고 중국식 服飾을 갖추게 되고, 지배계급은 물론 승려들까지도 당을 왕래하면서 당문화를 수입하는 데 노력하였다.

 특히 최초의 민족통일의 완성을 보아 하나의 정부를 이룩하여 정치적 분열을 극복하므로써 분열되었던 민족문화의 통일을 가져왔고 또한 민족의 자주성과 민족의식을 드높였다.

 또한 종래의 신라 왕호인 尼師今·麻立干의 명칭에서 존엄성을 강조하는 武烈王·文武王·神文王 등의 시호로 바꾸었으며 골품제에 있어서도 성골만이 왕으로 추대 계승되던 것이 진골로도 될 수 있도록 달라졌다.

 또 전국을 9州로 나누어 10개의 停이라는 새로운 軍制를 편성하였고, 王都인 경주에는 친위부대인 6정 이외에 별도로 9誓幢이라는 京軍을 신설하기도 했다. 이들은 왕권의 확대를 수호하는 데 이바지 하였으며 군복과 당기에 의해 구별되는 신라·고구려·백제·말갈 등의 혼성군으로서 통일신라의 정예부대를 상징하는 것도 되었다.

 또한 정치체제의 확립으로서는 중앙관제의 완비를 보아 중앙행정기구의 개편과 동시에 지방제도의 정비를 보았다. 또 경제제도의 개편에 있어서는 祿邑과 職田, 丁田의 지급, 조세제도의 개혁, 상업의 발달, 그리고 사회생활의 변천 등을 가져왔다. 아울러 해외무역에 있어서는 나당간의 활발한 대외무역과 문화교류를 이루었으며 신라인의 對唐활동은 新羅坊·新羅館·新羅所·新羅院 등을 중국대륙에 설치하는 등 해외활동이 활발하였으며, 對日관계의 문화전파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 유학의 발달과 신문왕 2년(682)에 국학을 설치하여≪論語≫·≪孝經≫·≪周易≫·≪禮記≫·≪左傳≫·≪毛詩≫·≪尙書≫·≪文選≫ 등의 전공분야를 두었으며, 원성왕 때에는 讀書三品科를 설치하여 인재를 양성하였다. 따라서 漢學과 國文學의 발달을 보아 强首·薛聰·金大問·崔致遠 등 저명한 문장가와 학자를 낳게 하였다.

 특히 불교로 호국신앙을 고양케 하였고 또한 불교의 역할로서는 서역과 중국문화를 전래시켜 불교관계 공예품의 비약적인 발전을 보게 하였는데 梵鐘·舍利莊嚴具·金鼓·裝身具·生活用品 등을 역사적 유물로 남기게 한 수준높은 공예품을 창출·유전케 하였다.

 한편 건축과 조각에서는 조형미술의 발달을 보았고 민족예술의 미술적 특성을 낳게 하였고 종교적 특성과 민족적 예술의 특성을 결합시킨 최고의 예술작품 등을 낳게 하였던 시대였다.

 이와 같은 시대배경에서 나타난 금속공예품의 대표는 불교관계의 공예품인 범종·사리장엄구·금고 그리고 생활용품 등이었다. 이와 같은 유물을 제조하는 기술도 삼국시대에 사용되었던 鍛造·鑄造·鑞付·鏤金法과 鍍金法 등의 기술이 가일층 발달하였다. 특히 금속을 다루는 데 있어 鑄造法은 어느 시대보다 치밀·정확·정교하였으며, 이와 같은 제조방법은 오늘에까지도 학술적으로 명확히 규명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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