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려 시대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1. 중앙의 통치기구
  • 7) 식목도감
  • (2) 식목도감의 기능

(2) 식목도감의 기능

 식목도감의 기능에 대하여는≪高麗史≫忠宣王 2년의 교서에서 邦國重事를 관장하였다고 씌여 있다. 그러나 이것은 고려 후기의 식목도감을 말하였을 따름이고 원래의 그것은 아니었다. 그러면 식목도감 본래의 기능은 무엇이었을까.

 식목도감의 기능이 그 관서명인 「式目」과 관계가 있었을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식목이란 格式·條目을 일컫는다.

고려의 制度·條格이 역사에 빠지고 간략함이 많은데 지금 古今詳定禮·式目編修錄 및 諸家의 雜錄을 취하여 諸志를 만든다(≪高麗史≫凡例).

 위에서 말하는<式目編修錄>이 제도·조격과 관계가 있음을 표시한 것이다. 그러므로 식목도감이 제도·격식을 관장한 기관이었음은 확실하다 하겠다.

 구체적으로≪高麗史≫에 나타난 식목도감의 기능을 보면 전술한 바 현종 14년의 첨사부의 공해전과 관원의 給從數 제정을 비롯하여 주군의 僧官印을 수납하고0140)≪高麗史≫권 6, 世家 6, 정종 원년 10월. 氏族不錄者나 雜路 및 흠있는 가문 출신의 登仕문제,0141)≪高麗史≫권 95, 列傳 8, 崔冲·李子淵·金元鼎. 三禮·三傳業 출신자의 서용,0142)≪高麗史≫권 73, 志 27, 選擧 1, 科目 숙종 7년 윤 6월.
≪高麗史≫권 74, 志 28, 選擧 2, 科目 崇獎之典 숙종 7년 7월.
學式의 제정,0143)≪高麗史≫권 74, 志 28, 選擧 2, 學校 인종조. 관리 품질의 승진,0144)≪高麗史≫권 75, 志 29, 選擧 3, 銓注 選法 신종 5년 4월. 그리고 判案의 소장0145)≪高麗史≫권 100, 列傳 13, 杜景升. 등이 있다. 이것은 식목도감이 바로 격식·법규를 제정하는 기능을 가졌음을 표시하는 것이다. 특히 여기서는 관리 등용의 신분제한 문제를 많이 논의하여 식목도감이 귀족사회 유지에 밑받침이 되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식목도감의 기능 중에서 주목되는 것은 판안의 소장이다. 식목도감은 제도·격식을 의정하였을 뿐 아니라 결정된 내용의 기록을 간직하여 후대의 참고로 이용케 한 것이다.≪高麗史≫의 諸志를 작성하는데 이용한 앞의<式目編修錄>이나 禮志에 이용된<式目編錄>(두 책은 동일한 것으로 추정됨), 또한 고려의 兩界州縣軍 편성 등을 수록한<高麗式目形止案>0146)≪文宗實錄≫권 6, 문종 즉위년 10월 기묘. 등은 바로 이러한 법제의 기록이라 생각된다. 즉 식목도감은 의논 결정된 내용의 자료를 보관하여 후세의 龜鏡으로 삼아 稽考케 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이 식목도감은 법제에 관한 문제를 관장하였으나 그것은 사무처리를 하는 행정기관이 아니라 중요 안건을 회의하는 기관이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 같다. 그것은 도병마사가 변경·군사에 대한 문제를 회의하는 기관인 점과 동일하였다. 그러므로 고려는 법제·격식 등 대내적인 문제를 재추를 중심으로 한 식목도감의 회의원으로 의논케 하는 동시에 변경·군사 등 대외적인 문제는 역시 재추를 주로 한 도병마사에서 의논 결정케 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이 식목도감과 도병마사는 재추로 구성된 회의기관이란 점에서 동일하였기 때문에 비록 그들 기능은 구분되었지만, 때에 따라서는 식목도감에서 군사문제를 다루기도 하고 도병마사에서 법제문제를 취급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식목도감의 정식 기능은 어디까지나 제도·법규 등 내부적인 중요 문제를 회의하고 결정하는 회의기관이란 점에는 틀림이 없었던 것이다.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