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려 시대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1. 지방 통치조직의 정비와 그 구조
  • 1) 지방 통치조직의 정비
  • (5) 명종대 이후의 지방제도 운영실태

(5) 명종대 이후의 지방제도 운영실태

 明宗代 이후 지방제도 운영의 문제는 지방에 파견된 관인들이 부패하였다는 데 있다. 현령과 감무는 대민안정에 진력하기보다는 권세가에 기생하는 형편이었고, 왕명을 받고 파견된 별감조차도 힘써 權貴를 섬기었다. 이에 더하여 권세가들이 군현의 官格조차도 마음대로 바꾸는 현실 속에서 정연한 지방 제도를 운영하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

 당시 권세가들은 유민 안집을 목표로 파견된 감무를 자신의 지방 장악을 위한 도구로 활용하였다. 권세가들은 이를 위하여 외관 선발의 원칙을 무시한 채, 登科 출신보다는 薦擧를 통해 외관을 충원하였고, 이렇게 파견된 외관들은 국가 행정보다는 중앙 지배층의 사적 이익을 위하여 활동하였다. 중앙권세가들은 이를 위해 添設職을 남발하거나0378)≪高麗史≫권 75, 志 29, 選擧 3, 選用守令. 자신의 생각에 따라 외관들을 갈아 치우기도 하였다.0379)≪高麗史≫권 75, 志 29, 選擧 3, 選用守令 창왕 즉위년 3월. 이 때문에 지방의 호강자들은 이들의 관직이 낮다하여 무시하고 천하게 여겼으며,0380)≪高麗史≫권 75, 志 29, 選擧 3, 選用守令. 외관 본연의 임무는 더욱 더 방치될 수밖에 없었다.0381)고려 후기 지방제 개혁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로 제기된 것은 바로 이 점이었다.

 지방에 파견된 관인들 중에서도 별감 등 왕의 특사들에 의한 민폐는 더욱 극심하였다. 충렬왕 때 전라도에 파견된 王旨別監 權宏이 백성을 割取하여 문제를 일으킨 사건이나0382)≪高麗史≫권 28, 世家 28, 충렬왕 3년 4월. 李德孫이 경상도에 王旨使用別監이 되어 백성의 고혈을 짰다는 일,0383)≪高麗史≫권 123, 列傳 36, 李德孫. 전라도에 파견된 왕지사용별감 林貞杞가 苛暴聚斂에 힘써 권귀를 섬겼다는 사실0384)≪高麗史≫권 123, 列傳 36, 林貞杞. 등은 이들이 지방에 내려가서 얼마나 횡포를 부렸는가를 잘 보여 준다.

 국가기구의 사적 운영의 경향은 외관 뿐 아니라 관격을 자의로 조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군현의 관격은 국가에 일정한 공이 있거나 반역 등으로 문제가 있을 때 조정하는 것이 상례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권세가들의 內·外鄕이라고 해서 관격을 올렸고, 혹은 원 사신의 청탁에 의하여, 군현인의 뇌물에 의해서도 군현이 승격되었다. 정상적인 군현의 승격에는 속현이나 부곡의 移屬이 뒤따르는 것이 통례였는데,0385)인종대 승격된 一善縣 등의 경우 屬縣을 이속받았다. 이렇듯 자의적인 군현 승격 결과 수령과 향리의 지배구조는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또한 여러 이유로 관격이 승격된 군현에서 권세가의 횡포가 커짐은 쉽게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명종대 이후의 외관제는 국가기구로서 정연한 지배체제를 갖추지 못하였고, 지방파견관의 종별과 직무한계 등이 권문세가에 의해 자의로 정해지고 있었다. 안찰사 뿐만 아니라 안렴사·존무사·별감 등도 임기응변으로 질서없이 운영되고 있었다. 권세가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외관을 마음대로 천거하여 활용하였을 뿐 아니라 파견된 외관도 자신의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던 것이다. 戶口와 田丁數에 따라 정해지는 군현의 관격조차 권세가의 뜻에 따라 승강이 되는 현실에서 지방제도의 정비나 운영은 기대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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