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려 시대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Ⅲ. 수공업과 상업
  • 1. 수공업
  • 4) 사원 수공업

4) 사원 수공업

고려시대에는 불교가 발달하고 사원경제가 향상되었으므로 사원의 수와 승려의 수가 증가하였고, 따라서 사원의 수공업품 수요가 증대되어 스스로 이를 자급하기에 이르러 사원수공업이 발달하였다. 사원수공업은 대개 직포업과 제와업, 그리고 제염업 등에서 발달하였는데 처음에는 자체의 수요를 충족하기 위하여 운영된 것이었으나 차차 생산이 증대하여 민간의 수요들을 조달하기에 이르렀다.

≪高麗史≫열전 제국대장공주전의 기사에 의하면, 충렬왕비인 제국대장공주에게 한 여승이 그의 婢가 짠 白苧布를 헌상하였는데 가늘기가 매미 날개와 같고 화문이 섞여 있어 그 아름다움과 섬세함이 빼어났다고 한다. 그리고 이 백저포를 市商에게 보였더니 시상들이 전에 보지 못한 우수한 직물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또한≪朝鮮佛敎通史≫에 의하면, “彌陀寺의 여승들이 모두 細綿布를 직접 직조하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었다”고 한다.

위의 두 기사에서 직물을 짜낸 사람이 하나는 여승의 婢라는 점에서 노비도 사원 내에서 직물생산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여승들이 거처하는 사원에서도 직조업이 행해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사원에서는 직물류를 짜는 이외에도 기와를 굽는 승려도 있었다. 즉 충렬왕이 승려 六然을 강화도에 보내 琉璃瓦를 굽게 하였으며 육연은 광주의 義安土를 가져다가 黃丹을 많이 사용해서 유리와를 구웠는데 품질과 색상이 아주 뛰어나 市商들이 파는 것보다 우수하였다고 한다.1346)≪高麗史≫권 28, 世家 28, 충렬왕 3년 5월 임신. 그리고 琉璃瓦 같은 것은 승려들이 직접 생산했다기 보다는 사원노비들이 주된 생산자였다고 여겨진다.1347)李相瑄,<高麗寺院經濟에 대한 考察>(≪崇實史學≫1, 1983), 71∼73쪽.

사원의 이러한 수공업품들은 자가수요에 충당되기도 하였지만, 그 제품의 질이 일반 민간수공업품보다 우수하여 상품으로서도 중요한 구실을 하여 상업의 발달에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사원의 상행위는 사원경제에 큰 보탬이 되기도 하였지만 반면에 많은 폐단을 야기시켰다.

<徐明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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