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려 시대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Ⅰ. 사회구조
  • 1. 신분제도
  • 2) 관인계층
  • (1) 관인층의 특성

(1) 관인층의 특성

 관인층은 文班·武班·南班의 세 계층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들이 고려의 귀족을 대표하였다. 각 반은 저마다 나아가는 독자적인 사로가 있었다. 그에 따라 수행하는 역도 성격에 있어서 차이가 있었다. 즉 문반층은 문관직을, 무반층은 무관직을, 그리고 남반층은 宮中職을 세습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중앙(開京)에서 관직에 나아가고 그 자식들이 역시 중앙의 관직에 나아가는 일을 세습적인 직업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반 사이에 차이가 없었다. 그들은 모두가 중앙 귀족이었다는 점에서 같았던 것이다.012)李基白,<高麗 貴族社會의 形成>(≪한국사≫4, 국사편찬위원회, 1974 ;≪高麗貴族社會의 形成≫, 一潮閣, 1990, 67쪽).

 관인층의 중앙귀족으로서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것이 歸鄕罪였다. 중앙의 귀족이 관직에서 쫓겨나고 아울러 職田을 몰수당하여 本貫으로 유배되는 것이 그러한 죄였다. 이 죄를 짓는 것은 관인층에게 귀족신분의 박탈을 뜻하는 것이었다.013)중앙귀족과 歸鄕罪와의 관계에 관한 설명은 다음 논문들을 참고하였다.
李佑成,<閑人·白丁의 新解釋>(≪歷史學報≫19, 1962;≪韓國中世社會硏究≫, 一潮閣, 1991, 72쪽).
文炯萬,<麗代‘歸鄕’考>(≪歷史學報≫23, 1964), 38쪽.
李基白, 위의 책(1990), 67∼68쪽.
朴龍雲,≪高麗時代史≫(一志社, 1988), 255쪽.
관인층에게 있어서 과거의 고향은 귀족으로서의 지위를 박탈당한 뒤에나 돌아가는 곳이었다. 고려의 관인층은 이 점에서 고향으로 자진하여 낙향하기도 한 조선의 양반들의 경우와는 달랐다.

 고려의 관인층이 지니는 또 다른 특성은 그들이 본관을 칭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고려는 지방에서 성장한 호족들이 주류를 이룬 관인층에 의하여 주도된 사회였다. 그 관인층은 서로 姓을 달리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말하자면 그들은 이성귀족이었다. 이들 여러 이성귀족들은 그들의 본래 출신지를 본관이라고 하여 자기들의 가문을 다른 가문과 구별하고자 하였다. 이렇게 본관을 칭하면서 그것을 내세우게 된 것은 관인층이 귀족으로서 가지고 있던 특권의식의 발로였다. 이 점에서 고려 귀족은 본관을 내세우지도 않았고 그럴 필요도 없었던 신라의 귀족들과는 달랐다.014)중앙귀족과 本貫과의 관계에 대하여서는 李基白,≪韓國史新論>(一潮閣, 1967), 131쪽 및 위의 책, 68∼69쪽 참조.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