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려 시대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Ⅰ. 사회구조
  • 4. 형률제도
  • 1) 율령의 내용
  • (1)≪고려사≫형법지에 대한 검토

(1)≪고려사≫형법지에 대한 검토

 지금까지 고려시대에 시행된 刑法인 고려율에 관하여는 많은 연구가 진척되었다.349)高麗律에 관한 자세한 연구현황에 대하여는 辛虎雄,≪高麗法制史硏究≫(國學資料院, 1995), 9∼12쪽 참조. 그러나 그 연구영역의 대부분은 법제사적인 측면에 치우쳐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고려시대에 시행된 형법과 刑政에 관한 기록이 수록되어 있는 것으로는 ≪高麗史≫刑法志(이하 형법지로 약칭함)를 꼽을 수 있다. 따라서 고려시대에 시행된 고려율과 행형제도를 연구하는 데에 있어서는 먼저 형법지에 대한 개괄적인 검토와 이해가 필요하다. 그러면 우선 다음과 같은 형법지의 序文을 통해 검토의 실마리를 풀어보자.

① 刑은 지나간 일을 징계하고, 法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예방하는 것이니, 이미 일어난 일을 징벌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두려움을 알게 하는 것은 일을 未然에 방지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피할 줄 알게 하는 것만 못하다. 그러나 형이 없으면 법이 시행될 수 없다. 이것이 先王이 병용하면서 어느 한 가지도 없애지 못한 까닭이다.

② 고려시대의 제도는 대개 唐制를 모방하였고, 형법에 이르러서도 唐律을 채록하여 時宜를 참작하여 사용하였다. 獄官令 2條·名例 12조·衛禁 4조 職制 14조·戶婚 4조·廐庫 3조·擅興 3조·盜賊 6조·鬪訟 7조·詐僞 2조·雜律 2조·捕亡 8조·斷獄 4조 등 모두 71조인데, 번잡한 것은 삭제하고 간결한 것은 취하여 한 시대에 시행하였으니 또한 근거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③ 그러나 그 폐단은 법망을 펴지 못하고 형벌은 완화되고 사면이 잦아서 姦兇의 무리들이 법망을 벗어나서 제멋대로 하여도 제지하지 못하였고, 말기에 가서는 그 폐단이 극에 달하였다. 이렇게 되어 元나라의 議刑易覽과 明의 大明律을 섞어서 쓰자는 의견도 나왔고, 또 至正條格·言行事宜를 겸해서 채용하자고 책을 만들어 바친 자도 있었다. 이것은 비록 시대의 폐단을 시정하는 데 절실한 것이었으나 이미 국가의 大綱이 무너지고 국세가 기울어진 바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高麗史≫권 84, 志 38, 刑法 1).

 위의 사료에서 보듯이 형법지의 서문은 대략 세 단락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① 은 서문 중의 서문이라 할 수 있는 일반론으로 刑과 法意의 개념을 밝히고 있다. 즉 형법의 예방적·응보적 성격을 밝히면서350)延正悅,≪韓國法制史≫(學文社, 1984), 49쪽. 후자의 기능을 전자보다 하위의 개념에 놓고 보려는 것이 형법지 찬자(이하 찬자)의 형법관이라 할 수 있다. 형법지에는 가혹한 형벌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用刑에 있어서는 매우 인도적이었고, 또 개별화시켜 적응함으로써 형벌을 완화한 寬刑主義·省刑主義를 채용하였던 것이다.

 ② 에서 보듯이 고려의 형법은 당률을 채용하면서도 시의를 참작하여 獄官令 2조 등 12편목으로 모두 71조의 법률이 시행되었다. 그러나 형법지의 실제 내용은 名例·公式·職制·奸非·戶婚·大惡·殺傷·禁令·盜賊·軍律·恤刑·訴訟·奴婢 등 13항목으로 구성되어 있음이 크게 다르다.

 ③ 에 의하면, 고려의 법률은「刪削取簡」하여 한때 잘 시행되었으나 고려 말기에 이르러 법망이 해이해져 간흉의 무리가 마음대로 빠져 나와도 이를 禁制할 수 없게 됨으로써 그 폐단이 극도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대책으로 원의≪議刑易覽≫과 명의≪大明律≫을 혼용하여 당시의 폐단을 바로잡으려 하였지만 이미 국세는 기울었다는 것이다.

 이상의 서문을 종합해 보면, 찬자들은 고려의 형법이 당률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전통적인 관습법을 참작하여 썼고, 또 형법을 운영하는 과정에서는 말기에 올수록 문란해 졌다는 부정적인 관점을 보이고 있다. 이는≪고려사≫ 찬자가 갖는 흥망사관이라 할 것이며, 그 목표는 조선의 건국에 대한 당위성과 합리성을 부여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351)邊太燮,≪「高麗史」의 硏究≫(三英社, 1982), 216∼217쪽.

 ≪고려사≫형법지는 두 가지 형식으로 기사가 기록되어 있다. 하나는 年·月이 없는 일반적 기사 내지 科條的 기사이며, 다른 하나는 년·월이 있는 編年的 기사이다.352)辛虎雄, 앞의 책, 307쪽. 가령 형법지「職制」항목을 보면, 앞에는 과조적 기사에 해당 되는 일반적인 법률(주로 형법)이, 뒤에는 연월이 있는 구체적 사실이 수록되 어 있는 것이 보여진다.

 형법지의 기사 중에서 주목되는 점은 고려의 독자적인 율문이 많다는 점이다. 찬자가 서문에서「시의를 참작」하였다고 한 것은 관습법을 뜻할 수도 있지만, 형법지 각 항목에 산견되는 국왕의 制·判·敎도 그것에 포함될 것이다. 대체로 과조적 기사가 당률을 형식적으로 채록한 것이 많은데 비해, 제·판·교 등은 그때그때의 時法으로 고려의 현실에 적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제·판·교 등의 사례를 보면 연월이 없는 경우도 다소 있지만, 대부분은 연월이 부기된 편년적 기사로 되어 있다. 따라서 고려율의 체계는 과조적 기사와 詔勅類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겠다. 이제 형법지에 수록되어 있는 각 항목에 대해 과조적 기사를 중심으로 고려율의 法意와 法源을 분석해 보자.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