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려 시대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Ⅰ. 불교
  • 2. 대장경의 조판
  • 1) 초조대장경의 조판
  • (3) 초조본의 특성

(3) 초조본의 특성

 初雕大藏經은 북송의 開寶勅版大藏經에 이어 두번째로 조판을 시작하였으나 마무리는 거란판대장경보다 늦어져 세번째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주목하여야 할 것은 이미 위에서도 언급하였듯이 동양에서 그 당시까지 조판한 漢譯 대장경의 수록 범위에 있어서 우리 초조본이 가장 포괄적인 점이다. 초조대장경은 북송의 개보칙판, 거란판 및 송조대장경을 바탕으로 조판 수록된 것이다. 그런데 재조대장경의 更函에 들어 있는 초조의 대장목록에 의할 때 그 중 양적으로 가장 많은 것은 북송의 개보칙판대장경이다. 개보칙판대장경은 오늘날 전하는 것이 매우 적은데 그 중 일본 京都의 南禪寺에 비장되어 있는 開寶 7년(974)의 간행 기록이 있는≪佛本行集經≫권 19 영본, 미국 하버드대학 포그미술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大觀 2년(1108, 예종 3) 인출의 개보칙판≪御製秘藏詮≫권 13 잔본, 그리고 현존의 여러 초조본을 서로 비교해 보면 본문의 수용은 물론 판식에 있어서 많은 공통점이 발견된다. 책머리에 찬자와 한역자를 표시하고 그 아래에 함차를 표시한 것이라든지, 각 판의 머리 여백이나 끝 여백에 간략하게 서명·권차·함차 또는 각수 이름을 새기고 한 줄에 14자, 한 판에 23줄(첫 장에 해당하는 판에는 22줄)이 배자된 형식들이 서로 공통된다. 다른 점은 함차에 표시된 천자문의 매김과 권말에 표시된 간행기록의 생략이라 하겠다.250)千惠鳳·朴相國,≪湖林博物館所藏 初雕大藏經 調査硏究≫(成保文化財團, 1988), 13∼15쪽.

 본문에 글 자체가 둥근 筆意의 신운을 다소 느끼게 하는 것이 있지만 대체로 모난 필의의 歐(陽詢)體 계통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점, 송나라 황제의 諱字와 兼避字가 缺劃되어 있는 점은 서로 공통된다. 여기에 차이가 있다면 초조본의 휘자와 겸피자는 모두 결획된 것이 아니고 완전하게 고쳐 새겨진 것이 오히려 많이 나타나는 점이라 하겠다.

 그리고 판화에 있어서≪어제비장전≫권 13의 초조본(일본 京都 南禪寺 소장)과 북송본(미국 하버드대학 포그미술관 소장)을 서로 비교하여 보면, 판화 전반에 걸친 구도의 특징은 같으나, 본문에 따른 판화의 배치가 서로 다르게 나타나고 있음이 그 차이점이라 하겠다.

 이러한 형태·본문·판화상의 여러 조건을 고려하면 초조본의 판각은, 종래 일본학자가 주장했듯이 개보칙판을 그대로 완전히 번각 수용한 것이 아니고,251)池內宏, 앞의 글, 23쪽. 달필의 판서자들이 바탕책에 준거하여 수정하면서 판서본을 마련하여 새겼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본문 내용과 판식에 있어서 개보칙판을 흡사하게 받아들인 것은 사실이라 하겠다. 이와 같이 고찰해 볼 때, 오늘날 좀처럼 구해 보기 힘든 개보칙판의 본문 원형과 형태상의 특징을 이 초조대장경 현존본에 의해 어느 정도까지 미루어 알 수 있음은 실로 다행한 일이라 하겠다.

 그리고≪高麗國新雕大藏校正別錄≫에 의할 때,「國·丹二本」·「東·北二本」을 비롯하여 북송의 개보칙판에 대한「二本」·「諸本」·「他本」등의 표현이 거란본에 의한 교정 사례를 알 수 있게 한다. 또 그것을 바탕으로 간행한 초조본이 전래되고 있어 그 사실을 더욱 뒷받침해 주고 있다. 이 거란본은 북송의 개보칙판에 없는 것, 본문에 탈락과 착사가 심한 것, 이역인 것을 가려 새겨 새로 편입 또는 대체 편입시켰다는 점에서 본문의 학적 가치가 한층 높이 평가되고 있음은 크게 주목하여야 할 사실이라 하겠다.

 이와 같이 거란본에는 본문의 학적 가치가 크게 평가되는 것이 적지 않은데, 오늘날 그 바탕이 된 거란본이 남아 있다는 말은 아직 듣지 못하였다. 오직≪校正別錄≫에 의해, 초조본의 바탕이 된 거란본은 매 줄에 17자가 배자되고 본문이 우수했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초조본은 비록 북송 개보칙판의 판식에 준거, 새로 판서본을 마련하여 새겨냈기 때문에 형태상의 특징이 달라졌지만, 본문의 원형은 그대로 우리의 고려대장경에 의해 살펴볼 수 있으니, 이것 또한 자못 주목해야 할 사실이라 하겠다.

 요컨대, 초조대장경은 그 당시까지 조판된 대장경 중 수록 범위가 가장 포괄적인 동시에 오늘날 아주 드물게 전래되고 있는 개보칙판과, 전혀 전래되고 있지 않는 거란판 대장경의 특징 및 원형이 담겨져 있다. 이것이 무엇보다도 먼저 손꼽아야 할 초조본의 특성이라 하겠다.

 종래에는 초조본이 일본 京都의 南禪寺에만 현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더구나 그것이 비장된 채 별로 공개되지 않아 그 일부만을 實査하고 글을 썼거나, 아니면 전적으로 문헌 중심의 글을 써왔다. 그리고 그 글들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끼친 영향은 매우 컸었다.

 그런데 근래에 이르러 이 남선사의 초조본을 폭넓게 조사할 수 있게 되었고, 또 일본의 壹岐島 安國寺와 對馬島 長松寺에서 6백 권≪大般若波羅蜜多經≫이 새로 발견된 데252)千惠鳳,<對馬·壹岐의 高麗初雕大藏經版 大般若波羅蜜多經>(≪佛敎와 諸科學≫, 東國大, 1987), 783∼812쪽. 이어 우리 국내에서도 그간 200여 권의 초조본을 발굴해 내어 초조대장경에 대한 안목을 새로이 할 수 있게 되었다.

 종래 발표된 글 중에서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 초조본 전체가 북송 개보칙판을 완전히 번각 수용했다는 설인데, 이것은 우리 조판인쇄술과 인쇄문화를 아주 낮추어 본다는 점에서 큰 문제가 된다. 우리의 초조대장경이 북송의 개보칙판을 바탕으로 본문과 그 판식을 받아들인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그대로 번각 수용한 것이 아니고 우리 나름의 수정을 가한 판서본을 마련하였음은 이미 위에서 언급하였다. 또한 초조본에는 매 줄 17자본의 거란본을 새로 14자본으로 판서하여 정교하게 새겨낸 국후본도 전래되고 있으므로 그러한 주장이 옳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들 국후본은 당시의 우리 조판인쇄술이 송나라와 비교하여 결코 손색이 없을 만큼 고도로 발달했음을 여실히 입증해 준다. 또 초조본에서 우리 국내 전래본에 의거하여 독자적으로 새겨낸 판본을 여러 종 찾아낼 수 있으므로, 그 사실을 더욱 뒷받침한다고 하겠다. 국내 전래본을 바탕으로 판각한 독자적인 판본을≪교정별록≫에서 가려내면 다음과 같다.

暎函:大樓炭經 권 제 1∼6, 法立·法炬 공역.253)守 其,≪高麗國新雕大藏校正別錄≫권 17, 제 14장 乂. 渭函:十八部論 단권, 眞諦 역.254)守 其, 위의 책, 권 27, 제7장 密. 海函:辨正論 권 제 1∼6, 法琳 찬.255)守 其, 위의 책, 권 29, 제5,6장 密. 佐函:萻提場所說一字頂輪王經 권 제 1∼5, 不空 역.256)守 其, 위의 책, 권 29, 제6,7장 密. 寧晋楚函:佛名經 권 제 1∼30, 失譯.257)守 其, 위의 책, 권 30, 제10장 密.

 이들 5종의 초조본 중, 일본 京都의 南禪寺에서≪萻提場所說一字頂輪王經≫권 1, 2, 4, 5의 잔존본을 조사해 보았다. 판식이 다른 송본·거란본계의 초조본과 같고 글자체도 주로 쓰이고 있는 歐體계인 점에서 공통된다. 판서본의 서법이 楷正하고 새김이 정교 세련되어 글자체가 고르고 바르며 글자획에 있어서도 힘있고 방정한 필력을 잘 보여주고 있다. 송본과 비교하여 조금도 손색이 없는 조판인쇄술의 정교성은 괄목할 만하다.

 요컨대 초조본은 송본·거란본을 바탕으로 한 판각에 그치지 않고, 우리 자신의 국내 전래본에 의거하여 독자적으로 판각용 정서본을 마련하여 새겼는데, 그 수준이 송본의 판각술에 견주어 결코 손색이 없을 정도로 진전되었음을 현존 실물이 여실히 입증해 준다. 그 조판술 우수성의 일면이 또한 초조본이 지닌 특성 중 그 두번째가 될 것이다. 이것은 고려 전기의 인쇄술은 물론 불교 및 문화사 연구에서 종래에 낮추어 보거나 또는 소흘했던 초조본의 특성을 재조명하는 새로운 자료가 된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된다.

 초조대장경에서 그 밖에 또 주목하여야 할 것은 무수한 대형 판화가 정교하고 섬세하게 새겨진 점이다. 일본 경도의 남선사에 소장된 송 태종의 御製類를 보면,≪秘藏詮≫·≪佛賦≫·≪詮源歌≫에 각각 대형 판화가 아름답게 판각되어 있다. 이들 판화는 구도·규모·판각기법 그리고 수량상으로 볼 때 판화사상 초유의 것에 해당한다. 판화는≪비장전≫의 각 권에 5폭(권 11은 6폭), ≪불부≫에 2폭,≪전원가≫에 1폭이 수록되어 있다. 그런데 그 가운데≪비장전≫의 판화는 권 1∼10에 각각 새로운 수도 장면을 묘사한 것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으며, 권 11∼20(권 17은 결본)에는 권 1∼10에서 사용한 것이 대체로 그 차례에 따라 재배치되어 있다.258)千惠鳳,<初雕大藏經의 現存本과 그 特性>(앞의 책), 430∼433쪽. 이들 어제류 중≪비장전≫권 13의 초조본과 북송본의 판화를 서로 비교하여 보면, 이미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판화 전반에 걸친 구도의 특징은 같으나, 본문에 따른 판화의 배치는 반드시 동일하지 않고 서로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259)千惠鳳,≪韓國典籍印刷史≫(汎友社, 1990), 61쪽. 우리의 초조본은 보다 적절한 장면을 묘사한 판화를 가려 나름으로 배치한 듯하다. 이러한 판화의 배치를 통해서도 일본인 학자가 주장한 ‘정장 전체의 완전 번각수용설’은 옳지 않음을 재확인할 수 있다.

 장폭의 섬세 정교한 판화는 재조대장경에서는 완전히 삭제되고 오직 초조대장경에서만 볼 수 있으므로 그 판화미술사적 가치가 자못 부각된다 하겠다. 우리나라의 판본에 나타나는 고려 판화 중, 현재까지 알려진 것으로는 11세기 초기 개경의 摠持寺에서 간행한≪寶篋印陀羅尼經≫에 수록된 소형 變相圖가 최초의 것이고, 이 초조본의 판화가 두번째로 오래된 것에 해당하나, 판화의 구도·규모·판화기법 그리고 수량상으로 이것이 수위로 손꼽히는 정수작이다. 말하자면 대형판화가 이 초조대장경에만 섬세 정교하고 우아 미려하게 판각되어 있으므로, 그 판화미술의 우수하고 정교한 면은 초조본이 지닌 특성 중 그 세번째로 손꼽힐 수 있는 것이다.

<千惠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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