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려 시대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Ⅰ. 불교
  • 3. 불교행사의 성행
  • 1) 불교행사의 유형과 전개
  • (2) 불교행사의 유형

(2) 불교행사의 유형

 고려시대에 개설되었던 불교행사는 그 의례의 양상이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고려사≫세가편에 기록된 불교행사만도 그 종류가 80여 종이 되며 개설된 총 횟수는 1,000회가 넘는다.320)徐閏吉,<佛敎의 護國法會와 道場>(≪佛敎學報≫14, 1977), 91쪽.
金炯佑,<高麗前期 國家的 佛敎行事의 展開樣相>(≪伽山李智冠스님華甲紀念論叢 韓國佛敎文化思想史≫상, 1992), 871쪽.
이들 불교행사의 유형을 어떻게 분류하느냐의 문제는 간단하지 않으나,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기준을 세워 볼 수 있다. 즉 정기적인 불교행사와 비정기적인 불교행사에 의한 분류, 敎義思想에 의한 분류, 순수한 불교행사인가 아니면 전통적인 습속의례에 바탕을 둔 불교행사인가에 의한 분류, 개설 목적에 의한 분류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고려시대의 불교행사는 정기적인 불교행사와 비정기적인 불교행사로 나눌 수 있다. 정기적인 불교행사에는 燃燈會와 八關會를 비롯하여 仁王百高座道場·藏經道場·談禪法會, 佛誕日行事·菩薩戒道場·祝壽道場 및 追福忌辰道場 등이 이에 속하는데, 이들은 어떤 구체적인 상황에 대응하여 개설되기보다는 축제적인 성격을 지니거나 전통적 습속에 의한 것이었고 아울러 예방적 의미를 갖는 불교행사였다. 이에 비하여 비정기적인 불교행사는 개설 목적이 뚜렷한 경우로, 천재지변이나 외적의 침입, 질병 등의 재앙에 대응하기 위한 목적으로 개설되었다. 왕권을 중심으로 한 귀족사회 또는 농경사회의 유지·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에 대응하기 위해 불교의 힘에 의지하는 수많은 불교행사를 열었던 것이다.

 둘째, 교의사상에 의한 분류이다. 종교관념인 교의사상과 종교의례와의 관계에 대하여는 두 가지의 학설이 있는데, 종교의례란 아무런 선행적 관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儀禮先行論과, 의례란 실리적 목적을 기반으로 발생한다는 의례의 意志說이다. 확실하게 무엇이 옳다고 단언하기는 어려우나 의례선행론에 있어서의 교의는 성립된 의례를 반영하는 입장에서 부여되고 있으며, 또한 교의적 뒷받침이 없는 의례행위는 단순한 육체적·생리적 동작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한편 의례를 수반하지 않는 순수 교의사상도 비실재적인 것으로 현실·구체적인 것이 되지 못하는 것이므로, 모든 의례행위는 일정한 교의사상적 배경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면 고려시대 불교행사의 의례는 어떤 교의사상의 배경을 지니고 있었을까.≪고려사≫세가의 불교행사 기록에서 보면, 대체로≪인왕경≫,≪금광명경≫,≪화엄경≫및 기타의 밀교 경전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인왕경≫에 대해서는 그것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仁王道場이 고려 전시대에 걸쳐 가장 성대하게 열리고 있었으므로, 인왕경의 교의사상이 고려시대에 큰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321)李箕永,<仁王般若經과 護國佛敎>(≪東洋學≫5, 1975).≪금광명경≫을 바탕으로 한 의식도량의 개설은 인왕경도량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것에 버금가는 의식행사로 열리고 있었다.

 화엄경사상에 의거한 불교행사로서 고려 초기부터 화엄법회가 열렸는데 특히 고려 후기에 가서는 각종 神衆道場으로 왕성히 개설되었다. 한국 불교에 있어 신중사상은≪화엄경≫에 바탕을 두고 있고, 또 실제로 華嚴神衆道場을 자처하고 있었다.

 다음으로 密敎經典에 의거한 각종의 消災道場과 祈禳道場도 고려 불교행사에 있어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322)徐閏吉,<高麗密敎信仰의 展開와 그 特性>(≪佛敎學報≫19, 1982). 여기서 밀교경전이라 말하였지만 실제로 어떤 경전에 근거하였다거나 어느 한 경전이 중시되었다고는 말하기 어렵고, 다만 여러 가지 밀교의례 관계된 경전이 밀교도량의 발전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밖에≪盂蘭盆經≫·≪法華經≫·≪金剛經≫등도 고려시대의 불교의례를 지탱하는 중요한 교의사상이었다. 이상에서 고려시대의 불교행사를 그 교의사상적 배경에서 분류하면 仁王經思想儀禮·金光明經思想儀禮·華嚴經思想儀禮·密敎思想儀禮·기타 盂蘭盆經思想儀禮 등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셋째는, 순수 불교행사와 전통적 습속에 바탕을 둔 불교행사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전자는 앞에서 살핀 바와 같은 불교경전에 의한 교의사상에 근거하여 행하는 행사를 말하고, 후자는 행사의 근원은 전통적인 습속이었으나 이를 불교의례화해 나간 습속의례적인 것을 지칭하는 것이다. 이같은 구분은 의례 형태적인 면의 구분과 목적에 의한 구분이 있을 수 있고, 또한 전자의 경우에도 승합적인 요소가 전연 없는 것이라고 할 수 없으므로 그 엄격한 구분이 어렵게 된다. 그러나 전자의 경우 교의사상의 뒷받침이 의례의 형태적인 면에서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으나, 후자의 경우에는 그것이 뚜렷하지 않다는 점에서 그 구분이 가능하다. 예를 들면 고려시대 전 시기에 걸쳐 성행하였던 연등회나 팔관회가 후자에 속하는 것이다.

 전통습속에 의한 행사는 비록 그 의례가 불교적 내용을 갖고 있다고 할지라도 재래의 토속신앙적 기반인 현저하게 강하고 또한 그 의식의 절차도 불교의식의 儀軌를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토속신앙의례의 바탕 위에 불교의례의 요소를 가미하고 있는 것이다. 고려시대의 불교행사가 다른 한편에서 보면 대부분이 토속신앙과 습합된 기도적 성격의 것이라 할 수 있는데, 불교의 하향적 방편에 의한 토속화 과정에서 이루어진 것과 토속신앙 의례의 불교로의 상향적 방향의 의례라는 것으로 구분하여 볼 수도 있다. 고려 태조가 훈요10조에서 연등회와 팔관회를 지킬 것을 강조하며, 팔관회는 天靈과 五岳·名山·大川·龍神을 섬기는 행사라 하고, 연등회는 ‘所以事佛’이라 하여 하나의 불교적 독립 의례로 거행할 것을 당부하고 있지만 연등회의 연중행사적 성격의 내용은 불교적 의미를 찾아보기 힘들다.

 넷째로, 행사를 개설한 목적에 의한 분류이다. 대부분의 불교행사 기록은 ‘仁王經道場을 明仁殿에서 열어 天災를 물리쳤다’는 양식으로 불교행사명, 개최장소, 개최목적 등을 밝히고 있어 개설의 취지를 알 수 있다. 그런데 목적에 따른 불교행사의 구분은 쉽지가 않다. 예컨대 仁王經道場은 천재를 면하기 위해서만 열리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治病을 위해서도 열리고, 또 외적을 물리치기 위해서도 열리기 때문이다.

 ≪고려사≫세가에 기재된 불교행사의 개설 목적을 열거해 보면 대체로 祈雨, 禳戎兵, 禳天災, 禳災變, 治公主病, 祈風雨順調, 薦死亡者, 禱兵捷, 消災, 禳丹兵, 祈滅賊, 禳松蟲, 禱嗣, 祈福, 禳邊寇, 鎭兵祈福, 禳地震, 禳星變 등이다. 개설 목적을 기록하지 않은 불교행사도 간혹 있으나 대체로 앞에 열거한 목적으로 행해졌으리라 짐작된다. 이와 같이 불교행사를 개설한 목적은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이를 한마디로 말하면 사회적·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여러 가지 재앙을 물리치거나 막고자 하는 데 그 목적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다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① 자연에 대한 문제
  祈雨, 禳天災, 祈風雨順調, 祈星變, 禳地震, 禳松蟲 ② 사회적인 문제
  禳戎兵, 禱兵捷, 禳丹兵, 祈滅賊, 禳兵寇, 鎭兵祈福, 禳蕃兵 ③ 기 타
  治公主病, 薦死亡者, 消災, 禱嗣, 祈福祝壽

 이상에서 보면 고려사회의 유지·발전에 저해가 되는 요인은 농경에 관계되는 자연 현상과 외적의 침입, 왕실의 번영을 저해하는 각종 질병과 後嗣가 없는 것, 그리고 수시로 일어나는 각종 재앙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를 다시 말하면 왕권을 중심으로 한 귀족사회 또는 농경사회가 유지되는 데 장애가 되었던 요인들이라고 하겠는데, 이같은 저해 요인들에 대응하는 방법으로 불교의 힘을 빌리려고 고려 일대에 걸쳐 수많은 불교행사가 개설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고려시대에는 불교계가 자연 재해와 사회 문제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대응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다는 데서 고려 불교가 행사불교로서 발전할 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예컨대 가뭄에 대응하여 기우의례를 행할 경우, 왕이 왕사에게 시켜 거행하게 하는 경우와 사원에 명령하여 기우도량을 설치케 하는 방법이 있었으나, 문무백관을 시켜 기우도량을 개설하게 한 일도 있었다. 또한 기우도량의 장소는 어떤 특정한 사찰이나 왕궁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특히 가뭄이 심할 때에는 전국의 모든 사원에서 기우제를 지내도록 하였던 것 등이 그것이다. 한편 기우제는 仁王道場·龍王道場·般若道場·羅漢齋 등의 여러 형태로 행해졌는데 이는 영험이 있는 방법을 택하려는 데서 연유한 것이었다.

 고려시대의 불교행사는 모두 재앙에 대응한다는 목적에서만 행하여진 것은 아니었다. 즉 불탄일이나 국왕의 생일 등에 축하의 뜻에서 행해지기도 하였다. 불탄일의 축하행사는 특설연등에서 살필 수 있으며, 국왕생일의 축하행사는 전국적으로 매년 시행되었는데 이 때에는 국왕의 만수무강을 빌면서 나라를 위해 부처의 가호가 있기를 빌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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