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려 시대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Ⅱ. 유학
  • 3. 유학사상의 실천적 전개
  • 1) 오행설과 천인합일설
  • (1) 오행설과 정치

(1) 오행설과 정치

 ≪高麗史≫五行志의 서문을 보면 오행지를 편찬한 의도가 나타나 있다. 그 내용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하늘에는 五運 즉 제왕의 자리를 부여하는 5행의 운행이 있으며, 땅에는 五材 즉 金·木·水·火·土가 있다. 사람은 세상에 태어나면서 五性 즉 喜·怒·欲·懼·憂의 性情을 갖추며, 이것이 五事 즉 貌·言·視·聽·思로서 나타난다. 이것을 잘 닦으면 길하고 닦지 않으면 흉한데, 길이란 休徵이 응하는 바이며, 흉이란 咎徵이 응하는 바이다. 일찍이 箕子가 洪範九疇 즉 5行·5事·8政·5紀 등 9章의 大法을 펴서 하늘과 사람의 관계를 밝히는 데 힘쓴 이래로, 공자는≪춘추≫를 지어 災異를 반드시 기록하였다. 따라서 고려시대의 사료로 전하는 재앙과 상서의 기록에 의거하여 오행지를 작성한다고≪고려사≫의 찬자는 밝히고 있다. 이것은≪고려사≫찬자의 견해이지만 오행설의 내용이기도 하다.523)李熙德,<五行說의 展開와 儒敎政治思想>(≪高麗儒敎政治思想의 硏究≫, 一潮閣, 1984), 95∼151쪽.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오행사상의 기조를 이루는 경전이≪서경≫이며 그 중에도 홍범편의「五行」·「五事」·「庶徵」·「休徵」·「咎徵」등이라 하겠다. 즉 5행에서는 수·화·목·금·토의 그 기본적인 속성인 水潤下·火炎上·木曲直·金從革·土爰稼穡 등을 설명하고 있다. 또 庶徵에서는 자연현상에 선과 악의 징조가 나타나는 것을 설명하고 있으며, 휴징과 구징에서는 서징에 이어 길·흉이 천지 자연현상에 나타나는 것을 더욱 상세하게 설명하였다. 그러나 보다 직접적인 사상적 근거는 伏生의≪尙書大傳≫의 한 편목을 이루는<洪範五行傳>에 있음을 알 수 있다.

 ≪漢書≫·≪後漢書≫의 五行志에 인용된<홍범오행전>에 의해 그 내용을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서경≫홍범편의「水潤下」에 관해<오행전>에서는 “종묘를 소홀하게 하고 신에게 빌지 않고, 제사를 폐하고 天時를 거스르면 水가 潤下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또「火炎上」에 관해서 오행전에서는 “법률을 버리고 공신을 축출하고 태자를 죽이고 첩으로서 처를 삼을 때에는 火가 炎上하지 않는다”고 하였으며,「木曲直」에 대해서<오행전>에는 “田獵하는 시기를 고려하지 않고, 酒食에 예법대로 힘쓰지 않고, 궁전의 출입에 절도가 없고, 백성들의 농사철을 뺏고 또 姦謀가 있을 때에는 木不曲直한다”고 하였다.「金從革」에 대해<오행전>에서는 “戰功을 좋아하고 백성을 얕보고 성곽을 장식하고 변경을 침범했을 때에 金不從革한다”고 하였다. 또「土爰稼穡」에 대하여<오행전>에서는 “궁실을 꾸미고, 內淫亂하여 친척을 범하고 부형을 모독하면 稼穡不成이 된다”고 하였다. 즉≪서경≫홍범편의 목·화·토·금·수의 5행 각각의 성질과 기능이 정상으로 발휘되지 못하게 하는 근본적인 원인이 되는 군주의 부덕한 행위를 열거하고 있다. 이것은「天人合一說」의 理法을 실례를 들어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다만≪서경≫의 홍범에서는 이와 같은 천인합일설의 이치를 구체적으로 설정하고 있지 않은데,<홍범오행전>에서 그 이치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다음에「洪範 五事」즉 貌·言·視·聽·思心에 관해서 역시<홍범오행전>을 살펴보기로 한다.「貌之不恭」즉 용모가 공손하지 못한 것을 정숙하지 않다고 한다. 이에 대한 咎徵으로는 狂이다. 그 罰은 장마의 계속, 그 극은 악이다. 어떤 때에는 복식의 妖가 나타나고 어떤 때에는 거북의 요사스러움이 일어나고 어느 때는 닭의 화가 생기고, 어느 때는 하반신의 器官이 상반신에 생기는 기형이 나타나고, 어느 때는 靑眚·靑祥이 나타난다. 이것은「金」이「木」에 해를 끼치는 것이다.

 「言之不從」즉 언어 사용이 불순한 것을 不乂라 한다. 그 구징은 어지러움이고 그 벌은 가뭄이며, 그 극은 근심이다. 때로는 詩妖가 나타나고 介虫의 요사스러움이 일어나고 때로는 개의 화가 나타나고, 어느 때에는 구설의 痾가 일어나고 어느 때는 白眚·白祥이 나타난다. 이것은「木」이「金」에 해를 끼친 것이다.

 「視之不明」즉 사물을 잘 관찰하지 못하는 것을 밝지 못하다고 한다. 그 구징은 느슨함이고 그 벌은 더위의 계속이며, 그 극은 병이다. 때로는 草妖가 있고, 때로는 껍질없는 벌레의 요사함이 있고 때로는 양의 화가 생기고 때로는 눈병이 생기고, 때로는 赤眚·赤祥이 생긴다. 이것은「木」이「火」에 해를 끼친 것이다.

 「聽之不聰」즉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함을 不謀라 한다. 그 구징은 急이다. 그 벌은 추위의 계속이고 그 극은 궁핍이다. 어느 때는 鼓妖가 일어나고 어느 때는 물고기의 요사함이 일어나며 어느 때는 豕禍가 일어나고, 어느 때는 귀의 병이, 어느 때는 黑眚·黑祥이 일어난다. 이것은「火」가「水」에 해를 끼친 것이다.

 「思心不容(睿)」즉 사려가 깊지 못함은 聖德이 되지 못한다. 그 구징은 암울함이다. 그 벌은 바람부는 것의 연속이다. 그 극은 凶短折 즉 요절이다. 어느 때는 脂肪(심장을 싸고 있는)과 夜의 妖가 일어나고, 어느 때는 꽃의 요사함이 일고, 어느 때는 牛禍가 일어나고 어느 때는 心腹의 병이 생기고, 어느 때는 黃眚·黃祥이 일어난다. 이것은「金」·「木」·「水」·「火」가「土」를 해친 깃이다.

 이상과 같이≪서경≫홍범편의 五行·五事·休徵·庶徵·咎徵 등의 내용을 홍범 5행전에서 더욱 발전적으로 전개하고 있음을 보았다. 이것은 홍범 가운데 휴징·구징의 사상이 瑞祥과 災異로 나타나는데, 재이란 천이 내린 天禍인 것이다. 이것은 인간 특히 군주의 행위에 관한 것으로 천인합일사상에 의한 것이다. 이 천일합일사상은 하늘과 인간 사이의 감응인 것이다. 재이를 자초한 군주는 권위를 상실하게 된다. 그러나 천벌로서 재이와 천화가 내려지는 한편 군주의 행위 여하에 의해서는 상으로서 서상을 맞이할 수도 있다. 어떤 형태이건 군주는 天과 감응하여 교통하게 된다. 하늘로부터 서상을 나타나게 하기 위하여 하늘을 우러러 노력할 수도 있으며, 그의 부덕한 행위로 인하여 재이를 초래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그러한 군주는 하늘과 통하는 초인간적인 능력과 권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서경≫홍범의 구징과<홍범오행전>의 재이는 군주가 예를 지키지 않고 도를 행하지 않을 때에 나타나는 것으로 군주로 하여금 예를 지키게 하고 도를 행하게끔 하고자 하는 하늘의 경고이다. 즉 군주에게 도를 설득하는 것이요, 군주를 비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 군주를 향해서 신하가 직접 도를 설득하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권위를 빌어 이것을 행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군주가 하늘과 교접하고 하늘과 일체화한 초인간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기에 그러한 군주를 비판하고 지도하는 것은 하늘 이외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요컨대<홍범오행전>은 물론≪상서≫홍범의 경우에도 군주를 하늘에 연관된 초인간적 권위의 소유자로 삼고 있는 것이다.524)板野長八,<尙書大傳>(≪中國古代における人間觀の展開≫, 岩波書店, 1972), 363∼367쪽.

 이상과 같은≪서경≫홍범의 사상과 복생의≪尙書大傳≫중의<홍범오행전>의 사상이≪고려사≫오행지에 전개되어 있는 것을 이미 그 서문에서 살펴보았다. 그러나 보다 직접으로 동 5행지의 순서에 따라 고려시대에 있어서의 이러한 천인합일사상의 수용 실태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고려사≫오행지의 순서에 따라 그 사상의 전개를 살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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