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려 시대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Ⅱ. 유학
  • 3. 유학사상의 실천적 전개
  • 2) 효와 예
  • (1) 5륜과 5교

(1) 5륜과 5교

 유교의 실천윤리 중에서 효가 가장 핵심이 되고 있음은 주지하는 바이나, 이것이 확대 발전하여 五敎나 五倫思想으로 체계화되었다.527)李熙德,<儒敎의 實踐倫理>(앞의 책), 250∼288쪽. 즉 유교윤리의 덕목 가운데서 군신과 부자 사이의 덕목인 충효를 비롯하여 형제·부부·장유 등의 윤리를 구체적으로 실천하기 위한 법제적·예제적 질서가 차츰 마련되어 갔다. 이러한 덕목 중에서 효 즉 부자의 윤리가 강조되어 있다 하더라도 필경 이것은 전제군주에의 의리를 위한 지주가 되었다고 믿는다. 이러한 사실은 바로 중국의 법질서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예컨대 唐律의 十惡에 있어서 서두의 1조에서 3조까지는 謀反·謀大逆·謀叛 등이며, 제4조 이하에는 부모 등 가족윤리가 설정되어 있다. 더욱이 제7조의 불효항에는 부모에 대한 고발행위에 있어 고발자인 자손은 絞首刑을 받지만, 謀反·謀大逆·謀叛 등 국가나 왕실에 대한 중죄를 고발할 때에는 비록 자손에 의한 親告라 하더라도 처벌을 받지 않게 되어 있다. 이렇게 볼 때 중국에서는 전부터 전제체제의 통치수단인 법률에서 명백히 군주에 대한 신민의 의리가 제일의적임을 알 것이다. 따라서 유교주의 하의 실천윤리에서 효의 윤리가 가장 중요시되고 있기는 하나 이것은 군신의 윤리를 강화하거나 지탱하기 위한 장치로 발전되어 갔다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효사상과 효행의 유형을 살피는 데 있어서 가장 중심을 이루는 5륜이라는 유가의 실천윤리를 규명하는 것이 보다 중요한 과제이다. 고려 시대 유교윤리에 관한 구체적인 자료로 우선≪高麗史≫의 忠義·良吏·孝友·烈女傳 등을 들 수 있다.

 먼저 군신의 덕목에 속하는 양리전·충의전을 중심으로 한 유교의 실천윤리를 살펴보겠다.≪고려사≫충의전의 서문에는 생명과 의리가 공존할 수 없을 적에는 생명을 버리고 의리를 취하여야 하며, 충신·의사는 무서운 형벌을 무릅쓰고 생명보다 의리를 소중히 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무릇 군주에 대한 신하의 의리는 변고를 만나면 생명을 가벼이 던지고 순절해야 하는 절대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유교주의적 전제군주체제에 있어서 신하의 도리는 상황에 따라서 다양하였다. 고려시대의 유교주의체제에 있어서 신하의 의리에 대한 稼亭 李穀의 臣論을 보면 “신하의 종류로는 重臣과 權臣이 있고 直臣·忠臣·奸臣·邪臣이란 것이 있다”고 하였다.528)李 穀,≪稼亭集≫권 7, 臣說送李府令歸國. 신하의 도리란 것은 결국 군주에 대한 자신의 희생과 봉사라 하겠으나, 그것은 군주 자체에 대한 충성일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백성에 대한 올바른 정치를 성취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곡도 그의 臣說의 서두에서 “옛날에 신하가 된 자는 차라리 임금에게 신임을 얻지 못하더라도 감히 백성에게 원망을 사지 않았으므로 爵祿을 급히 하려고 하지 않았고, 차라리 오늘의 기림을 얻지 못할지라도 감히 후세에 비방을 받지 아니하려 하므로 공적과 업적을 쌓으려 하지 않았다”529)위와 같음.고 하였듯이, 신하의 도리는 군주에 대한 상대적 관계보다도 후세에 비방을 받지 않을 영원하고 절대적인 義의 실현이며 군주를 매개로 한 天命의 실현 그것이기도 하다. 이곡의 臣說은 신하의 명분을 밝힌 매우 주목할 만한 것이라 보이는데 이와 같이 유교주의적 실천윤리를 자각하고 있던 고려인들의 윤리적 기록을 우리는≪고려사≫의 양리전이나 충의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양리전에는 知刑部事 庾碩이 성품이 강직하고 청백하여 공평무사한 관리생활을 보낸 사례로부터 東京留守 王諧 등 모두 5명이 수록되었다. 그리고 충의전을 보면, 洪灌·高甫俊·鄭顗·文大·曹孝立·鄭文鑑에 이르는 6인의 충의 사실이 열거되어 있다.

 다음에는 5륜 중 夫婦有別과 관련하여≪고려사≫의 열녀전 및 후대의≪三綱行實≫이나≪新續東國三綱行實≫등의 열녀에 대한 기록을 통하여 부부간의 실천윤리를 보기로 한다.≪예기≫에서 말하는 夫義婦德, 夫唱婦隨는 이른바 유교주의 사회에 있어서의 夫妻의 지위를 밝히는 것이지만,≪주역≫에서도 “夫는 乾道로 강건을 귀하게 여기고 사람을 이끌 덕을 가지나, 婦는 坤道로 柔順을 귀히 여기고 從順을 덕으로 삼는다”고 하였다.≪고려사≫열녀전에 실린 열녀는 胡壽의 妻 兪氏 외 열부 11인의 사적이 실려 있으며,≪삼강행실≫·≪신속동국삼강행실≫열녀편 등에 고려시대 열녀에 관한 사적이 전승되고 있다. 부인의 정절은 유교적 윤리의 하나로서 국가는 충·효의 윤리와 함께 널리 장려하여 그 보급에 힘썼던 것이다. 더욱이 왕실로부터의 義夫·節婦·烈婦에 대한 포상행사는 크나큰 효과를 미쳤을 것이다. 禮制에 있어「老人賜設儀」에 의하면 老人·孝子·順孫과 함께 절부가 일정한 포상을 받고 있다. 이러한 유교윤리의 강화정책은 법률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高麗律의 모태가 되었던 당률에 의하면 그 10악의 7조인 불효항 다음인 9조의 불의에는 처의 남편에 대한 의무와 제약이 설정되고 있다. 즉 남편과 大功 이상의 존장자를 구타하거나 告罪하는 행위는「不睦」에 속하고 또 남편의 상을 듣고도 상을 감추거나 놀이를 즐기거나, 평복을 입거나 개가하는 행위는 곧「不義」에 해당하는 처벌을 받게 되어 있다. 즉≪고려사≫형법지에는 처의 남편에 대한 구체적인 법률상의 의무가 周親이나 부모에 대한 의무와 거의 같은 상황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한편 처의 남편에 대한 不從을 법에 의해 제재하고 있었다. 이처럼 강제된 부인의 정절이 유교주의정치이념의 소산임은 재언을 요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거의 일방적이라 할 처의 남편에 대한 의무에 비하여 남편이 받는 구속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다만≪고려사≫형법지 大惡條에 의하면 “남편이 아내를 구타하여 상처를 냈거나 물체로 상처를 내면 곤장 80대, 이를 한 대 이상 부러뜨린 자는 90대…”라 하여 남편의 처에 대한 무제한의 폭행을 법으로 막고 있다. 또 亂時에 외적의 침입에 의한 불가항력적인 처의 汚節을 이유로 처를 버린 사람은 관직을 파면시키는 등 인도적인 조치를 보여주고 있다. 물론 남편은 처부모에 대하여 五服制度에서 父祖의 다음 가는 근친급의 복제를 규정하고 있다.

 다음 長幼有序와 兄良弟弟에 관해서 살펴보면≪孟子≫의 5륜설에는 “長幼有序”라 하였고≪禮記≫禮運篇에서는 “長惠幼順”과 “兄良弟弟”라 하여 장유와 형제의 2륜으로 삼고 있다. 그리하여≪예기≫曲禮에 “以年長倍則事父 以十年長事兄 以五年長則友”라 하여 장유의 禮序를 규정하고 있다. 장유유서를 규제한 법률을≪고려사≫형법지는 尊長과 卑幼로 구분하여 설정하였으며 동일한 죄에서도 극심한 형량의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禮制도 혈연과 장유란 기본질서 위에 성립되었음은 말할 것 없지만, 특히 殤服의 경우에는 연령차이에 따라 喪服禮를 뚜렷이 구분하고 있다.

 다음 朋友有信에 있어서 信은 朋友 교제의 근원을 이루고 있을 뿐 아니라 인간의 사회생활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 앞서 인용한≪예기≫곡례에 “以五年長則友”라 하였으므로, 5년 내외는 붕우로 삼을 수 있는 연령 차이임을 알 수 있다. 때로는 붕우와 형제의 倫常의 선후나 중요성을 논의의 대상으로 하고 있기는 하나 혈연을 중히 여기는 유가적 윤리사상의 이상은 역시 형제가 붕우에 앞선 것을 밝히고 있다. 그런데 이 붕우 사이의 윤상은 극히 도덕적 규범에 머물고 있을 뿐, 일정한 예나 법제상의 강제규범은 마련되어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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