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려 시대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Ⅱ. 문화
  • 1. 과학과 기술
  • 3) 의학
  • (2) 의약 서적의 간행과 수입

(2) 의약 서적의 간행과 수입

 고려 초기의 의학 수준이나 그 내용을 개관하는 가장 간편한 방법은 당시 사용되고 있던 의약 관련서적을 살펴보는 일이다. 고려는 개국 후 곧 적지 않은 책을 인쇄한 것으로 보이는데, 앞에 소개한 과거 또는 취재에 사용한 의학교육의 교재들은 처음부터 인쇄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것들은 이미 신라 말기에도 인쇄되어 보급되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중국으로부터 수입된 책들이 있었고, 또 그것들이 필사되어 퍼졌음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실제로 인쇄된 것으로 기록에 남은 경우로는 문종 10년(1056) 서경유수의 보고가 있다. 즉 각종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필요한 책을 베끼기 때문에 착오가 많이 생기므로 이 폐단을 줄이기 위해 秘閣에 소장되어 있는 책들을 나눠주기를 청하였는데, 이에 대해 정부는 담당기관에서 책을 인쇄해 나눠 주도록 지시하였다. 여기에 당연히 의업의 교재들이 포함되었을 것으로 보이지만, 정확히 어느 책을 얼마나 인쇄해 보급했는지는 밝혀져 있지 않다.

 그런데 바로 2년 뒤인 문종 12년(1058) 9월에는 충주목에서 새로 인쇄한 다음의 책들을 바쳤고, 이 책들은 비각에 보관됐다고≪고려사≫는 전하고 있다. 이어 이듬해 문종 13년 2월에는 安西都護府에서 새로 찍은 다음의 서적을 바쳐 역시 비각에 두게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346)≪高麗史≫권 8, 世家 8, 문종 12년 9월 기사·문종 13년 2월 갑술.

충 주:≪黃帝八十一難經≫≪川玉集≫≪傷寒論≫≪本草括要≫≪小兒巢氏病源≫≪小兒藥證病源十八論≫≪張仲卿五臟論≫ 안 서:≪肘后方≫≪疑獄集≫≪川玉集≫

 이들은 구체적으로 중국의 어느 책을 가리킨 것일까. 우선≪황제팔십일난 경≫은 통일신라시대에 의학교육의 교재로 쓰고 있었던≪難經≫을 가리킨 것이 분명하다.347)≪三國史記≫권 39, 志 8, 職官 中, 醫學.
金斗鍾, 앞의 책, 106쪽.
중국의 기록에는 이 책이 秦越人 즉 扁鵲이 지은 것으로 되어 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명목상의 저자일 뿐이다. 여하튼 당시 의학의 기본적인 저서였음은 분명하고, 신라 이래 의학교육의 기본적 자료였기 때문에 문종 때에 다시 인쇄되었을 것이다.

 ≪천옥집≫은 충주목과 안서도호부에서 모두 인쇄했는데, 지금은 사라진 의서의 하나로, 상세한 것을 알 수가 없지만 이 책이 川玉이란 호를 가진 어떤 의학자가 편집한≪상한론≫의 일부일 것으로 보인다.348)金斗鍾, 위의 책, 126쪽.≪상한론≫은 유명한 후한의 의학자 張仲景의 저술이다.≪본초괄요≫는 송의 張文懿가 지은≪本草括要詩≫3권을 가리킨 것으로 보인다. 본격적인 본초서가 아니라 본초의 중요한 내용을 외우기 쉽게 노래의 형식으로 설명한 것인 듯하다. 또≪소아소씨병원≫은 巢元方의≪諸病源候論≫가운데 소아부(권 45∼50)를 가리킨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349)洪以燮,≪朝鮮科學史≫(東京, 三省堂, 1944), 174쪽.

 ≪소아약증병원십팔론≫에 대해서는 더욱 그 내용을 짐작하기 어렵다. 문헌조사에 따르면 송의 劉景裕가 지은≪小兒藥證≫1권이 있는데, 여기에 고려 의학자들이≪소아소씨병원≫을 지으면서 중요한 18가지를 더해 만든 것이 아닐까 하는 의견이 있다.350)金斗鍾, 앞의 책, 125∼126쪽.≪장중경오장론≫은 장증경의≪오장론≫을 가리킨다. 다만≪고려사≫에는 張仲景의 이름이 張仲卿으로 잘못 적혀 있다.≪주후방≫은 葛洪의 작품인데, 그 후 陶弘景에 의해≪肘后百一方≫으로 펴내진 일도 있다.≪의옥집≫은 五代의 和凝과 그 아들 朦이 지은 법의학에 관한 책으로, 고려의 법의학은 주로 이에 의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상은≪고려사≫를 통해 밝혀져 있는 의학서적의 인쇄상황이지만, 이 밖에도 적지 않은 의서가 퍼져 있었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예를 들면 고려에 중국의 서적이 많다는 것은 당시 중국인들도 인정하는 사실이어서, 선종 8년(1000) 송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온 李資義 등은 중국이 원하는 서적목록을 가지고 왔다. 그런데 그 가운데 의학서로 보이는 것들은 다음과 같다.351)≪高麗史≫권 10, 世家 10, 선종 8년 6월 병오.

≪王方慶園亭草木疏≫ 27권 ≪古今錄驗方≫ 50권 ≪張仲景方≫ 15권 ≪深師方≫ ≪黃帝鍼經≫ 9권 ≪九墟經≫ 9권 ≪小品方≫ 12권 ≪陶隱居效驗方≫ 6권 ≪桐君藥錄≫ 2권 ≪黃帝大素≫ 30권 ≪名醫別錄≫ 3권

 이 의학서 가운데 고려가 2년 뒤 송에 보내준 것은≪황제침경≫뿐이었다. 물론 이 책밖에 없어서 이것만 보냈다는 증거는 없다. 여하튼 당시 중국에서 많은 서적을 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당시 고려에는 의학서를 포함한 많은 중국의 서적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송 왕실은 현종 8년(1017)과 현종 13년에 고려 사신이 귀국할 때≪太平聖 惠方≫100권을 보낸 일이 있다. 또 숙종 6년(1101)에는 역시 고려 사신이 귀국할 때≪神醫補救方≫1,010권을 보냈다. 공식적으로 들여온 이들 의서 밖에도 많은 의서가 중국에서 들어왔을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 밖에도 고려 초부터 활발해졌던 불교서적의 도입과 함께 적지 않은 불교의학서가 수입되어 인도의학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불행히 고려 전기 동안에 어떤 의학서가 고려인에 의해 집필되었던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예종 때부터 의종 때까지 활약한 金永錫(1079∼1167)의≪濟衆立效方≫은 그 대표적 저작이다. 이 책은 지금 전하지 않지만, 그의 묘지명에 의하면 이 책은 중국과 신라의 의서를 종합 정리하여 저술했다고 밝혀져 있다.352)朝鮮總督府 編,≪朝鮮金石總覽≫上, 金永錫墓誌. 고려 후기에 확연하게 드러나는 고려의 독자적인 의학 수준, 즉 民族醫學을 이룩해 가고 있음을 보여준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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