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려 시대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1. 정치조직의 변화
  • 2) 지방 통치체제의 변화
  • (2) 문무교차제의 시행과 외관간의 갈등

(2) 문무교차제의 시행과 외관간의 갈등

 무신정권 성립 후, 현령·감무의 계속적인 증파로 인한 대읍영속관계의 구조적 변천과 더불어 문과출신의 仕路였던 이른바 ‘州縣外補’에 ‘文武交差制’의 시행으로 말미암아 외관간의 갈등이 표출되어 군현제도가 크게 이완되었다는 점이 커다란 특징으로 나타난다. 외관의 ‘문무교차제’란 지방행정관리의 補任에서 한 지방의 장·차관을 반드시 文武同數로 한다는0043)李佑成,<高麗朝의「吏」에 대하여>(≪歷史學報≫23, 1964). 뜻이다. 이와 같은 제도가 성립된 배경부터 먼저 살펴보기로 한다.

 정중부 등의 무신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한 직후인 명종 3년(1173) 10월의 制에서 “3京·4都護·8牧으로부터 郡·縣·館·驛의 직임에 이르기까지 武人을 幷用한다”0044)≪高麗史≫권 19, 世家 19, 명종 3년 10월 임술.라고 한 바와 같이, 무신들은 3경·4도호·8목뿐만 아니라 군·현·관·역의 직임까지 차지하였던 것이다. 이같은 상황에 이르자 집권무신들 중에도 자성론이 대두되어0045)行伍출신인 左僕射 洪仲方이 “西班散職 差任外官 固非先王制也”(≪高麗史節要≫권 12, 명종 9년 5월)라고 한 것은 그 일례이다. 약간 완화된 것이 바로 외관 문무교차제이다.

 무신집권기에 문무교차제가 실제로 어떻게 운용되었던가를 한 예를 들어 살펴보자. 大學博士 盧寶璵가 蔚州防禦副使로 되자, 참지정사 宋有仁이 “외관은 문무교차하는 것이 成法으로 되어 있는데 현임 울주판관이 문관이니 또 노보여를 제수할 수 없다”고 하여 告身에 서명하지 않았다. 노보여는 결국 울주에 부임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여파로 당시 명주부사, 관성현령 등이 모두 부임하지 못하고 말았다.0046)≪高麗史≫권 128, 列傳 41, 叛逆 2, 鄭仲夫 附 宋有仁.

 그러나 외관의 문무교차제 창안은 실상 무신들이 그 직을 차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무신들은 겉으로는 외관 문무교차제를 주창하면서도 실은 그들이 외관을 독점하려 하였다. 예컨대 “庚癸 이래 權臣이 국정을 장악하여 文武交差之例를 주창하면서도 매양 무관을 외직에 보임하였다”0047)≪高麗史≫권 75, 志 29, 選擧 3, 銓注 選用守令 충렬왕 원년 6월.라고 한 것에서 그것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 있어서 ‘주현외보’는 문과출신의 사로에서 반드시 경유해야 하는 것이며, 이를 거치지 않고서는 중앙관료로서의 진출이 매우 곤란하도록 제도화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같이 중요한 외관직을 무신들에게 빼앗긴 뒤에 문관의 사로가 막혀서 이들의 사환이 순탄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李奎報가 趙太尉에게 관직을 구하는 편지를 올리면서 文吏의 橫出銳進者 중에서도 前路가 막혀 30년, 혹은 28, 29년이 되어도 등용되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한 것은 그 예이다.0048)李奎報,≪東國李相國集≫권 26, 上趙太尉書.

 무신정권시대에 외관 문무교차제의 실시로 인하여 나타난 외관 사이의 갈등으로 행정상의 기능이 마비되는 일까지도 있었다. 충주목 副使 于宗柱와 判官 庾洪翼 사이의 알력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충주부사 우종주와 판관 유홍익은 번번이 簿書 처리를 둘러싸고 사이가 나빴는데, 몽고병이 장차 이를 것이라는 소문을 듣고 守城策을 의논할 때도 서로 의견이 달랐으며, 또 서로 시기하였다. 그 결과 충주는 부사와 판관의 갈등으로 외적의 침입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채 蒙兵에 의해 유린되고 말았으며, 결국 그들의 분열 대립은 戰後 官奴들의 반란까지 초래하였던 것이다.0049)≪高麗史節要≫권 16, 고종 19년 정월.

 부사와 판관의 분열 대립, 외관 상호간의 의견 충돌과 시기 등은 비단 충주목에만 국한된 특수 현상은 아니다. 몽고병의 침입에 대비한 山城修築을 둘러싸고 安東都護副使 庾碩과 判官 申著가 알력을 보인 것과0050)≪高麗史≫권 121, 列傳 34, 良吏 庾碩. 이규보가 전주목의 司錄·掌書記로 있을 당시 통판(판관)과의 대립 갈등 속에서 결국 면직을 당한 것0051)金晧東,<高麗 武臣政權時代 地方統治의 一斷面-李奎報의 全州牧 ‘司錄兼掌書記’의 活動을 중심으로->(≪嶠南史學≫3, 嶺南大, 1987). 등에서 알 수 있듯 당시 외관간의 갈등은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이 점에 있어서 고종 43년(1256)의 ‘諸縣尉’의 혁파 조처는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때 현위를 모두 혁파하게 된 사정은 분명히 알 수 없으나, 그들 사이의 분열 대립으로 인한 군현행정의 난맥상을 시정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각 지방의 현위를 혁파한 까닭이 설사 현령과의 분열 대립을 종식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군현조직 재정비의 일환이었던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외관 상호간의 분열 대립이 전시기에도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무신정권 시기에 가장 많은 사례가 발견된다는 것은, 이 시기의 외관 임명의 방법이 바뀐 것에서 기인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무신정권기에 외관 임명의 가장 큰 변화는 문무교차제의 실시이다. 문무교차제의 실시로 인해 새로이 외관에 보임된 무인들은 자신과 중앙의 집권무신들의 입지와 경제적 기반의 구축을 위해 노력하였을 것이고, 이로 인해 다른 외관과의 대립 갈등이 크게 노정되어 군현통치의 난맥상을 가져와 농민항쟁의 격증을 가져오는 요인으로 발전하였을 것이다. 더욱이 몽고의 침략을 받게 되자 군현이 전쟁수행을 위한 비상조직으로 전환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무인출신의 외관이 그 품계의 상하와는 상관없이 영향력을 증대시켜 나갔을 것이기 때문에 외관 상호간의 대립 갈등이 증폭되었을 것이다.

 무신정권이 무너진 후에도 외관 문무교차제의 유제는 계속 남아 있었다. 이것은 문무 양자 사이의 이해관계의 대립으로 인하여 혁파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충렬왕 원년(1275) 6월의 다음의 기록은 그것을 잘 말해준다.

충렬왕 원년 6월에 왕이 수령을 무관으로 교체하려고 하였다. 承宣 李衯成이 말하기를 ‘무인으로서 백성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이 적습니다. 만일 재능이 문과 무를 겸하고 너그럽고 당찬 것이 조화된 사람이 있다면 문무반을 물론하고 수령을 시킬 수 있습니다’라고 하니, 왕이 이를 받아들였다. 庚癸以來 權臣이 국정을 장악하여 문무교차제를 주창하면서 항상 무관으로 외직을 보임하였다. 朴恒이 銓注를 장악함에 미쳐 왕에게 아뢰기를 ‘外寄는 東班의 벼슬자리입니다. 그러므로 동반은 반드시 외직에 보임된 연후에야 중앙관리로 임명될 수 있는 것이요, 西班은 순서에 따라 진급하는데 어찌 반드시 外寄를 구하겠습니까’라고 하여 드디어 무관을 외직에 보임하지 않게 되었는데, 이 때에 와서 무관들이 (왕의) 좌우에 청탁하여 이를 회복시킬 것을 청하였다(≪高麗史≫권 75, 志 29, 選擧 3, 銓注 選用守令).

 여기서 外寄, 즉 지방 수령의 자리를 두고 문·무 상호간에 첨예한 대립양상이 빚어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의 대립은 그 자신들의 이해관계 때문이며, 농민층의 이익을 위한 대립은 결코 아니었다. 그들의 대립으로 인하여 군현제도는 이완되어 농민층의 유망은 확대일로에 놓이게 되었고, 국가재정은 상대적으로 파탄의 경지로 빠져들게 되었던 것이다.

 더욱이 외관들의 수평적 야합을 예방하고 서로 격앙, 분발하게 하여 견제와 감시를 위해 당초 官秩이 낮은 按察使와 이보다 높은 京牧의 界首官을 상하관계로 했던 당초의 의도는, 후대에 이르러 도리어 많은 폐단을 불러 일으키게 되었다. 그것은 창왕 즉위년(1388) 7월에 조준이 “안렴사, 즉 안찰사들이 능히 黜陟⋅賞罰의 典法을 엄히 하여 軍民의 爲政을 떨치지 못하는 것은 외관이 모두 正順(정3품 상)⋅奉順(정3품 하)의 관원이요, 또한 兩府의 大臣⋅奉翊(종2품)의 達官이기 때문이며, 그가 王人의 大體로서 생각하지 않고 도리어 ‘秩卑小節’로서 혐의로 삼아 기강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고 한 데서 잘 알 수 있다. 결국 이로 인해 안찰사 명칭의 잦은 변경을 가져오게 되었고, 이의 보완을 위해 중앙정부는 察訪使·勸農使·計點使 등을 파견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중첩적 파견은 군현 행정의 불협화음을 더욱 노정시킬 따름이었다.0052)金潤坤,<麗代의 按察使制度 成立과 그 背景>(≪嶠南史學≫1, 1985).

<金潤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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