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려 시대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Ⅱ. 문화의 발달
  • 1. 과학과 기술
  • 6) 의약학과 생물학
  • (1) 고려의학의 자주적 발전

(1) 고려의학의 자주적 발전

 고려의학은 12세기에서 13세기에 이르면서 차츰 자주적 발전의 기운이 일어나게 되었다. 고려인에 의한 몇 가지 의서의 저술, 즉 金永錫의≪濟衆立効方≫, 崔宗峻의≪新集御醫撮要方≫, 그리고≪鄕藥救急方≫등의 출현은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제중입효방≫은 의종대에 편찬된 의서인데, 이 책은 김영석이 인종과 의종의 두 대에 걸쳐 여러 요직을 역임하면서 신라와 송나라의 의서를 참고하여 편집한 것이다. 이 책은 지금 남아 있지 않아서 그 내용을 모두 알 수는 없고, 다만 그 중의 한 처방만이 조선 초기에 편찬된≪鄕藥集成方≫중에 들어 있을 뿐이다. 그 처방은 풍문·중풍·반신불수를 치료하는데 솔잎 5말 가량에 소금 2되를 넣어 찐 뒤에 그것을 주머니 속에 넣어 수족이 불편한 동통의 부위에 찜질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처방은 당나라의 의서인≪外臺秘要≫에 千金方을 인용한 여러 처방 중에 靑松葉의 즙과 청주를 혼합하여 내복하는 방문이 있을 뿐,≪제중입효방≫에서 보는 바와 같은 외용적 치료법은 찾아볼 수 없고, 당송의 의학을 거의 집대성한≪聖濟總錄≫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이것은≪제중입효방≫이 편풍증을 치료하는 기본약제로는≪외대비요≫에 인용된 천금방의 솔잎을 채택하면서도 치료의 방법에 있어서는 독자적인 경험적 처방을 쓰고 있다. 이것은 한 가지 처방에서 나타난 보기이기는 하지만, 이 의서의 책이름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여기에 실린 많은 처방들이 고려인들 사이에 널리 전해져 내려오고 있던 경험적 민간요법을 담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新集御醫撮要方≫은 李奎報의 서문에 의하면, 그 원본은 왕실 尙藥局 약실에 이미 있었던 것으로 신효한 처방들이 기재되어 있었다. 그것이 오랜 세월이 흘러가면서 거의 잃어버리게 됨을 최종준이 애석하게 생각하여 고종의 재가를 받아 가장 요긴한 처방들을 첨가하여 간행한 것이다. 그래서 이≪신집어의촬요방≫은 실용적인 왕실의약의 처방집으로 매우 중요한 의서의 하나로 꼽혔다. 이 책은 그 후 조선시대에 진주에서 간행된 판본이 있다. 이 고려의서는≪향약집성방≫에도 12개의 처방이 인용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고려에서 생산되는 의약에 의한 고려인의 처방이 많이 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처방들은 조선의학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 처방들은 중국의학의 학문적 체계를 이어받고는 있지만, 그 실용방법에 있어서는 반드시 그렇지 않은 허다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이 책이 당·송의 의학적 지식을 단순히 발췌하거나 모방한 것이 아니고, 어느 정도의 독자적 경험이 성숙되어 나온 것을 말해주고 있다.

 ≪향약구급방≫은 이 중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책이다. 그것은 현존하는 우리 나라의 의서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이 책은 고려 고종 때 초간되고, 조선 태종 17년(1417)과 세종 9년(1427)에 각각 중간되어 조선의학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책은 3권 1책으로 되어 있다. 그 내용은, 상권에 모든 중독증세와 급·변사, 인사불성의 치료법이 써 있고, 중권에는 외과 특히 瘡疸 및 五官科 구급증의 응급처방법이 있고, 하권에는 부인 및 소아잡방, 복약법 및 藥性相反과 古傳經驗方 등이 써 있다. 그리고 권말에 부록으로 향약 즉 고려산 의약 180종에 대한 속명이 붙어 있고 약성 및 채취법 등이 간략하게 설명되어 있다.

 결국 이 책의 간행은 그 때까지 많이 쓰이던 외국산 약재 특히 중국약재들을 고려산 약재 즉 향약으로 충당하려는데 그 의도가 있었다. 이러한 고려산 약재의 개발과 연구는 종래까지 중국 의약지식에 의존하던 고식적 태도에서 벗어나서 의약의 독자적 연구와 학문체계를 세우는 일을 가능케 하는 전환점이 된 것이다. 이런 자주적 경향은 그 후에도 계속되었다. 그리하여 고려 말경에 이르러서는 향약의 지식은 本草學으로서의 학문적 체계가 서게 되어≪三和子鄕藥方≫을 비롯한≪鄕藥古方≫,≪鄕藥惠民方≫등, 고려의 독자적 의약학서의 출현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이것은 고려의학의 자주적 발전의 기틀이 세워졌음을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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