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려 시대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Ⅱ. 문화의 발달
  • 4. 역사학
  • 7) 기타 역사서의 편찬
  • (1) 실록의 편찬

(1) 실록의 편찬

 고려에는 초기부터 時政의 기록을 관장하는 史館, 즉 春秋館이 있어서 실록을 항례적으로 편찬해 왔으며,0614)≪高麗史≫권 76, 志 30, 百官 1, 春秋館. 고려 후기에 편찬된 실록은 다음과 같다.

 명종 16년(1186)경, 文克謙·崔世輔·林民庇·兪升旦·金良鏡 등에 의해≪毅宗實錄≫이 편찬되었다.≪高麗史≫ 의종세가에는 임민비·유승단·김양경 등의 사론이 실려 있는데, 이는 아마도≪의종실록≫에서의 전재일 것으로 보인다. 고종 14년(1227) 9월에 편찬된≪明宗實錄≫은 감수국사 崔甫淳 이하, 수찬관 김양경·유승단·任景肅·李奎報·權敬中·趙文拔 등이 연도별로 분담하여 집필하였다. ≪고려사≫ 명종세가 16년으로부터 18년 사이에 권경중의 사론이 수록되어 전해지고 있다.0615)≪高麗史≫권 22, 世家 22, 고종 14년 9월 경진·권 99, 列傳 12, 崔甫淳·권 101, 列傳 14, 權敬中 및 권 102, 列傳 15, 趙文拔. 원종 8년(1267) 10월, 李藏用을 비롯한 柳璥·金坵·許珙 등에 의해 신종·희종·강종의≪三代實錄≫이 편찬되었다.0616)≪高麗史≫권 26, 世家 26, 원종 8년 10월 임오. 이는 최씨무신정권의 횡포와 몽고의 침략 등으로 인해 실록의 편찬이 늦어진 것으로 보인다. 충렬왕 3년(1227) 5월에 감수국사 유경, 수국사 원부, 동수국사 김구 등이 왕명을 받아서≪高宗實錄≫을 편찬했다.0617)≪高麗史≫권 28, 世家 28, 충렬왕 3년 5월 임인. 그런데 이≪고종실록≫은 30여 년 후인 충선왕 원년(1309)에 고쳐 쓰여졌고, 원에서 준 고종의 시호에 따라≪忠憲王實錄≫이라고 개칭했다.0618)≪高麗史≫권 33, 世家 33, 충선왕 원년 2월 무인. 충선왕 3년에 편찬되었던≪忠敬王實錄≫은 20년 후인 충혜왕 원년(1331)에 다시 편수되었다.0619)≪高麗史≫권 34, 世家 34, 충선왕 3년 11월 경자 및 권 36, 世家 36, 충혜왕 6년 9월 병신. 충경왕은 원이 준 원종의 시호이다. 충숙왕 원년(1314)에 정승으로 치사한 閔漬와 찬성사 權溥는 왕명을 받아 태조 이래의 실록을 약찬했다.0620)≪高麗史≫권 34, 世家 34, 충숙왕 원년 정월 을사. 충목왕 2년(1346) 10월 李齊賢·安軸·李穀·安震·李仁復 등은 왕명을 받아 충렬·충선·충숙왕의≪三朝實錄≫을 수찬했다.0621)≪高麗史≫ 권 37, 世家 37, 충목왕 2년 10월 경신.≪고려사≫ 충숙왕 및 충혜왕세가에는 李衍宗·張沆·許應麟·兪思廉·白文寶·元松壽 등의 사론이 수록되어 있다. 따라서 이들 또한≪삼조실록≫의 편찬에 참여했다고 보여진다. 공양왕 3년(1391) 정월, 李穡과 李崇仁에게 명하여 실록을 편수하고자 했으나 시행되지 못했다.0622)≪高麗史節要≫ 권 35, 공양왕 3년 정월.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고려 후기 220여 년 16왕 가운데 9왕의 실록이 편찬되었지만 충혜·충목·충정·공민·우·창·공양왕 등 7왕의 실록편찬에 대한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비록 그 편찬에 관한 구체적 기록은 확인되지 않지만 충혜·충목·충정왕의 실록은 고려 말에 편찬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조선 태조 때의 실록편찬이 공민왕으로부터 시작되고 있는 데서 이같은 추측을 갖게 한다. 아울러 공민왕 이후 4대의 실록은 고려 때에는 편찬되지 못한 것을 알 수 있다. 더욱이 공양왕 3년 정월에 鄭夢周가 왕에게 “근대사가 모두 수찬되지 못했다”고 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물론 사초는 전해지고 있었고, 이는 태조 초에 鄭道傳·鄭摠·尹紹宗·李行 등이 공민왕 이후 공양왕까지의 실록을 편찬한 기본사료가 되었다.0623)≪太祖實錄≫ 권 3, 태조 2년 정월 무오·권 14, 태조 7년 6월 병진 및 권 27, 태조 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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