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려 시대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Ⅱ. 문화의 발달
  • 5. 미술
  • 1) 건축
  • (1) 건축활동

(1) 건축활동

 명종대에는 開城의 地德이 쇠약해져서 나라 안이 혼란하므로 도읍을 옮겨야 한다는 천도설에 대항하여 풍수지리사상에 입각한 三蘇說이 일어났다. 개성 주변 세 곳의 명산의 각 명당에 궁궐을 짓고 왕이 이 곳을 때때로 巡駐하면 개성의 지덕이 회복된다는 주장에 따라 명종 4년(1174)에 北蘇로 箕達山, 左蘇로 白岳山, 右蘇로 白馬山을 정하여 그 곳에 궁궐을 건립하였다. 명종 5년에는 도성 서쪽 鳳鳴山 밑에 의종의 원당으로 海岸寺를 창건하고 왕의 眞影을 안치하였다. 그러나 명종 11년에는 무신들을 싫어했던 의종의 원당이 도성 서쪽에 있는 것이 부당하다는 무신들의 주장에 따라 도성 동쪽에 있던 吳彌院을 宣孝寺로 고쳐서 眞殿을 건립하고 의종의 진영을 그 곳으로 옮겼다. 명종 9년에는 원년 10월에 화재로 소진된 궁궐의 중수공사에 착수하여, 12년 9월에 穆親殿과 麗正宮을 완성시키고, 16년 4월에 羅景門을 낙성하여 궁궐의 중수사업을 일단락지었다.

 고종대에 들어서는 14년(1223)에 乾元寺를 창건하였고, 19년 6월에는 몽고의 침입을 피하여 강화도로 도읍을 옮겨 그 곳에 궁궐과 관아건물을 건립하고 성곽을 정비하였다. 고종 30년에는 고려의 호국사찰인 興國寺를 강화도에도 건립하고, 37년 정월에는 開豊郡 昇天府에 궁궐을 건립하였으며, 8월에는 강화궁궐의 中城을 축조하였다. 고종 46년 2월에는 摩尼山에 離宮을 건립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4월 몽고에 강화를 청해 태자 倎(뒤에 원종)을 보내고, 이 해 6월에는 강화성곽의 내성과 외성을 헐게 하고, 이 달에 고종은 승하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개성의 궁궐을 새로 건립하고 정비하기 시작하여 개경환도에 대비하였다. 원종 3년(1262) 10월에는 태조가 창건한 彌勒寺와 功臣堂을 중수하였다.

 충렬왕 2년(1276)에는 왕비인 齊國大長公主의 궁궐을 건립하기 위하여 원에 工匠을 청해 그 다음해에 壽寧宮을 건립하였고, 충렬왕 8년에는 妙蓮寺를 창건하였다. 충선왕 3년(1311) 9월에는 원 晉王의 원당으로 興天寺를 창건하였고, 또 모후인 제국대장공주의 원당으로 그의 궁이었던 수령궁을 희사하여 旻天寺로 만들었다.

 공민왕 7년(1358) 3월에는 개성의 외성을 수축하고, 9년 11월에는 홍건적의 난을 피하여 臨津縣 白岳에 신궁을 지어 왕이 한때 살기도 하였다. 또 공민왕 15년 5월에는 王輪寺 동남쪽에 魯國大長公主의 影殿을 건립하였다.

 이 밖에 이 시기에도 계속 고승이나 귀족들에 의한 창사활동이 있었다. 강종 원년(1212)의 眞覺國師에 의한 海南의 花芳寺 창건이 있고, 고종 32년에는 崔怡에 의해 강화도의 禪源寺가 창건되었다. 공민왕 17년에는 玄昱國師에 의하여 黃州에 心源寺가 창건되고, 우왕 10년(1384)에는 李成桂에 의해서 安邊에 釋王寺가 창건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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