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려 시대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Ⅱ. 문화의 발달
  • 8. 체육
  • 6) 수박

6) 수박

 手搏은 격투기로서 우리 나라 고유의 무도인 태권도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원시시대부터 자기방어를 위한 무술 또는 제례행사의 하나로 하던 것이 시대의 변천에 따라 무술 혹은 경기로 변화한 것이다. 申采浩의≪朝鮮上古史≫를 보면 “선배를 신수두大祭 때의 경기회에서 뽑아 학문에 힘쓰며 手搏·擊劍·射藝·騎馬·택권이·깨금질·씨름 등 각종 기예를 하며 …”0911) 申采浩,≪朝鮮上古史≫(陳鏡煥譯, 人物硏究所, 1982), 239쪽.라고 한 것이 그 점을 말해주는 것이다. 또한 같은 책에서 “松都의「手拍」이 곧 선배경기의 일부분이니 수박이 중국에 들어가「拳法」이 되며 일본에 건너가 「柔道」가 되었다”0912) 申采浩, 위의 책, 170쪽.고 하여 이미 상고시대부터 경기화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주로 무사들의 수련을 통하여 맥을 이어오다가 고려시대에는 무사는 물론 일부 한정된 일반인에 의해 경기로 실시되어 왕이나 관중들의 관람대상이 되기에 이르렀다. 특히 수박의 실력이 벼슬과 직결될 정도였음을 통해 얼마나 인기 있는 종목이었는가를 추측할 수 있다. 실제로 李義旼은 수박을 잘 하였으므로 의종이 그를 사랑하여 隊正에서 別將으로 옮겨 주었으며0913)≪高麗史≫ 권 128, 列傳 41, 李義旼. 최충헌은 연회를 베풀어 重房의 힘센 자들에게 수박을 시켜 승자에게는 바로 校尉·隊正 벼슬을 상으로 주었다0914)≪高麗史≫ 권 129, 列傳 42, 崔忠獻.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당시에 실시된 수박의 내용이나 방법은 자세히 알 수 없지만≪고려사≫를 통하여 단편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바로 의종 24년(1170)에 일어난 무신란은 手搏戱가 도화선이 되었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왕이 普賢院으로 갈 때 五門 앞에 이르러 侍臣을 불러 술을 마셨는데 술이 거나해지자 좌우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장하다. 이 곳은 군사를 익힐 만하다”하고 무신에게 五兵手搏戱를 하도록 하였다. … 대장군 李紹膺은 비록 무인이기는 하지만 얼굴이 파리하고 힘도 약하여 한 사람과의 手搏에서도 이기지 못하고 도망하니 韓賴가 갑자기 나서며 紹膺의 뺨을 때리자 바로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高麗史≫ 권 128, 列傳 41, 鄭仲夫 의종 24년).

 여기에 보이는 五兵手搏은 5:5勝拔戰이고 與一人手搏은 1:1개인전을 말하는 것이다. 이후 명종에서 충혜왕에 이르기까지 왕이 수박을 관람한 기록이 빈번하게 나타난다. 수박이 이렇게 성행하였던 것은 특별한 장비가 없이 간단한 복장으로 할 수 있는 격투기인 점과 승부를 결정할 때의 격렬성이 사람들을 자극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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