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려 시대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Ⅱ. 문화의 발달
  • 10. 의식주생활
  • 2) 식생활
  • (4) 고려의 대외교류와 식생활

가. 원·객관·주식점의 개설과 접객양식

 고려에서는 여행자, 상인과 물자의 집산지를 선정하여 院이란 숙박소를 설치하고 크기에 따라 구분하여 그 경영을 지원하였다. 그리고 성종 2년(983) 10월에는 공설 주식점으로 成禮·樂賓 등 6개소를 개설하여1201)≪高麗史≫ 권 3, 世家 3, 성종 2년 10월 기해. 鑄錢유통에 편리하도록 하였다. 이것은 우리 나라에서 공설 접객업소 설치의 시작이며 특히 그 운영을 위해 마땅한 사람을 선정하고 田結을 주어 경영을 맡기는 등 나라에서 인적·물적인 면으로 지원하였다. 이러한 점은 상업발전은 물론이고 식문화의 교류와 발전에 좋은 계기로 이바지하게 되었다.

 또한 고려는 중국과 일본을 위시하여 거란·여진·남번·서역의 大食國(사라센) 등을 상대하여 전대에 비할 수 없는 대외무역이 활발하였으며 왕래도 빈번하였다. 이런 환경에서 송·거란·여진·남번상인을 위한 객관을 개설하였는데 현종 2년(1011) 4월에는 迎賓館·會仙館을 개설하고,1202)≪高麗史≫권 4, 世家 4, 현종 2년 4월 정묘. 이후 더욱 증설하여 송의 상인을 위하여 娛賓館·淸河館·朝宗館·淸州館·忠州館·四店館·利賓館 등을, 여진상인을 위하여 迎仙·靈隱 등을 증설하였다.1203)≪高麗史≫권 7, 世家 7, 문종 9년 2월 무신.
徐 兢,≪高麗圖經≫권 27, 館舍 客館.
이러한 객관에서 외상을 영접하거나 또는 외국상인이 연회를 열면서 물물교환 형식으로 객관무역을 실시하였다. 더욱이 그 규모가 문종 9년(1055) 2월에는 400명에 달한 때가 있고, 국초에 송상의 내왕은 120여 회에 약 5,000명에 달하였다.

 이러한 환경이 음식의 대외교류를 증진시켜 식문화가 발달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는데 객관에서 시행한 일상식의 접객양식은≪고려도경≫供張條에 잘 나타나 있다. 즉 객관에서는 하루 세 끼를 대접하는데 정·부사가 입관하였을 때에는 붉은 칠한 상에 한 끼에 5俎로 그릇은 다 황금을 발랐으며, 都轄·提轄 및 上節 이하는 검은 칠한 상에다 주는데 한 끼당 3조이고, 中節은 2조, 下節은 각 5인씩 한자리에서 같이 먹도록 連床을 차린다는 것이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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