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5. 유구와의 관계
  • 3) 통교무역
  • (1) 무역형태

(1) 무역형태

 조선과 유구의 통교사에 있어 경제적 측면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유구와의 교역 형태는 기본적으로 사행무역이었다. 즉 유구사신이 진상품을 보내오면 조선측이 이에 대해 回賜하는 형식으로 교역하는 것이다. 대개 이 진상과 회사는 의례적인 성격이 강하였으므로 수량이 많지 않았지만, 때로는 아주 많아 문제가 되었던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유구는 본래 목적이 경제적 교역이었던 만큼 사행무역에 부수된 형태의 사무역을 추구하였다. 사무역의 규모가 어느 정도였는지 명확하게 알 수 없다. 그러나 세조 원년(1455)의 기록을 보면 유구의 진상물품이 너무 많아 浦所에서는 그에 상당한 물품을 교역할 富商이 없으므로 서울로 운반하여 민간상인들로 하여금 교역하도록 했다고 한다.725)≪世祖實錄≫권 2, 세조 원년 9월 무인. 진상품이라고 하나 민간상인이 교역하게 한 것으로 보아 무역품이었을 것이다. 이로 보아 사행무역에 수반해서 상당한 규모의 실질적인 교역이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정에서도 유구사절의 경우 일본의 통교자처럼 그 숫자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규제를 하지 않았다. 이 점이 후에 위사가 성행하게 된 원인이 되었지만 대체로 관대하게 대해 주었다.

 한편 조선의 상인 중에서도 대유구무역에 나서 활동한 자들이 있었다. 조선의 상인으로 유구에 기착하여 머문 자도 많았으며, 세종 13년(1431) 당시에는 유구인과 함께 남해무역에 종사하여 고려의 와전인 ‘꼬레스’란 이름을 남방에 전파하기도 하였다.726)崔南善,≪故事通≫(三中堂書店, 1943), 134∼136쪽. 세종대에 수차례 유구를 왕래하면서 피로인을 송환해오는 등 활약한 倭通事 金源珍도 조선·구주·유구를 연결하는 선상에서 무역활동을 한 상인적 성격을 띤 인물이었다.727)田中健夫,<日鮮貿易における博多商人の活動>(≪中世海外交涉史の硏究, 東京大學出版會, 1959), 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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