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6. 동남아시아국가와의 관계
  • 5) 임진왜란 이후의 관계
  • (1) 임란시 동남아국가의 참전

(1) 임란시 동남아국가의 참전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발발하여 초반전투에서 일본군에게 밀리게 되자 조선정부는 5월 12일 李德馨을 請援使로 명에 보내 원군을 요청하였고, 명은 수차의 논의 끝에 원군을 파견하게 되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이 때의 명의 원군 속에 유구와 동남아국인이 포함되었다는 사실이다. 명은 원군파병 요청을 받은 직후인 6월 유구와 섬라국을 선유해서 장병 수십만을 모아 일본을 바로 공격하도록 명하였다. 선조 26년 4월에는 다시 유구와 섬라국에게 수군 20만의 동원령을 내렸다고 하나, 이러한 명 황제의 명령은 무리한 것으로 지켜지지 못하였다. 그러나 동남아제국인을 명군에 편입시키는 연합군형성론은 그 후에도 계속되었으며 실제 이루어졌다. 동남아국인들이 실제 참전하게 되는 시기는 개전 1년 후인 이듬해 4월경이었던 것 같다. 즉 이 때 의주에 온 명의 장수 劉綎이 예조판서 尹根壽에게 자신의 부대에 섬라국인들이 포함되어 있다고 대답한 사실이 있다. 또 같은 시기에 병조판서 李恒福이 명의 宋經略 부대를 방문한 후 올린 보고에 의하면, “명군이 각종의 군기를 보여줌과 함께, 거느리고 있는 暹羅·都蠻·小西·天竺·六番得·楞國·苗子·西番·三塞緬國·播州·鏜鈀 등의 投順人을 좌우에 열지어 세워놓고 차례로 그들의 기예를 보여주었는데 종일토록 사열했다”고 하였다.761)≪宣祖實錄≫권 37, 선조 26년 4월 갑오. 이것으로 볼 때 섬라국을 비롯한 동남아국가와 중국 남부지방에 사는 종족들의 투항자 및 군인들이 명군에 합류하여 조선에 파견되었음을 알 수 있다.

 동남아시아 사람들이 임진왜란에 참전하게 된 동기는 조선의 요청에 의한 것이 아니라 명 황제의 명령과 관련된 것이었지만, 여말 선초 이래 조선과 통교관계를 갖거나 무역을 해온 이들이 연합군을 형성하여 일본의 침략에 공동 대응하였다는 사실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비록 동남아국가들이 국가적 차원에서 교전을 선포하며 참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동원령에 의해 명의 군대에 합류하여 국제연합군을 형성한 것은 사실이다. 이 점은 임란이 지닌 국제전적인 성격을 더 확실히 하는 것으로 그 의미가 결코 적지 않다고 하겠다.762)李鉉淙,<壬辰倭亂時 琉球·東南亞人의 來援>(≪日本學報≫2,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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