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6. 동남아시아국가와의 관계
  • 5) 임진왜란 이후의 관계
  • (2) 조선 후기의 교류상황

(2) 조선 후기의 교류상황

 조선 초기에 비교적 활발하였던 동남아국가의 내빙도 조선 후기에 와서는 거의 없어졌다. 그 이유는 조선의 대중·대일관계의 변화와도 연관이 있으리라고 본다. 조선 전기에 비해 볼 때 1630년대 중반 이후는 대외관계가 단순화·안정화되는 것이 특징이다. 대중국관계에 있어서 조선은 明代보다 더 엄격한 통제를 받는 입장이어서 동남아국가와의 통교는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대일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즉 조선 전기에는 다원적인 통교체제 속에서 일본국왕뿐만 아니라 지방의 호족인 大名이나 막부의 관료들까지 각기 조선과 통교하는 것이 가능했으나, 조선 후기에 오면 德川幕府와 막부의 감독을 받는 대마도와의 관계로 일원화되었다. 왜구도 없어지게 되었으며 경제적인 교역은 대마도와의 사이에, 그것도 부산의 왜관에서만 가능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그동안 다원적인 통교체제 속에서 가능했던 동남아국가들의 남해무역이 더 이상 자리잡기 힘들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조선 후기에 와서는 직접적인 통교차 왕래한 동남아국가는 없었다. 주로 중국을 통해 사신들끼리 만나 필담을 나누는 형식의 간접적인 접촉뿐이었다. 조선의 사신들은 그들과의 대화와 북경에서 보고들은 바를 조정에 보고하였는데, 그 결과 동남아의 사정에 대해 제한적이나마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 밖에 임란 때 포로로 일본에 잡혀갔던 趙完璧이 안남에 가서 무역을 한 사실이 흥미롭고, 표류해 온 동남아사람들의 기사가 간혹 보일 뿐이다.763)≪光海君日記≫권 50, 광해군 4년 2월 을해.
≪孝宗實錄≫권 14, 효종 6년 5월 기묘.

<河宇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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