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2. 농업과 농업기술
  • 4) 농업생산력의 역사적 위치

4) 농업생산력의 역사적 위치

이상을 종합해 볼 때 조선 전기의 농업 생산력은 지속적으로 성장하였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러한 성장은 어디까지나 노동생산성 중심의 조선 전기의 농업생산력이 토지생산성에 기초한 조선 후기의 그것으로의 전환이란 성격을 갖는 것이었다는 점에서, 적어도 조선 전기에 있어서는 전자의 모습이 더욱 지배적이었다. 특히 이러한 조선 전기 농업생산력의 위치와 그 역사적 성격은 계량적인 접근을 통해서도 증명될 뿐만 아니라, 생산기술과 노동기술로 구성된 이 시기의 농업생산력을 하나하나씩 검증하는 과정에서도 속속 밝혀지고 있다 하겠다.

이 시대 농업생산력 발달의 직접적인 원인으로서는 무엇보다 농학이 발달하였고 농업 생산기술이 고도화하였을 뿐만 아니라, 노동 수단인 역축과 농구가 새로 개발된 데 기인하고 있었다. 이러한 분석의 출발점으로서 더욱 분명해진 것은, 15세기의 농법이 많은 축력을 기반으로 한 노동생산성 중심의 노동절약적·토지사용적 기술에 근거하였다는 사실이다. 수전 농법의 경우도 주로 만도를 수경 및 건경법으로 재배하던 열등한 수전이 광범위하게 분포하였고, 한전의 경우도「1년 1작식」의 작부 체계가 지배적이었으며 휴한전도 일부나마 존재한 상태였다. 또한 시비의 측면에서도 조방적이었을 뿐 아니라, 농구 체계도 두 마리 소를 견인 동력으로 하는 축력 일관 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16세기로 가면서 이와 같은 농법도 점차 변화·발전해 나가고 있었다. 먼저 수전농법에서는 새로운 회환농법과 건경법, 그리고 이앙법의 보급과 발달이 점차 지속되었으며, 한전농법에서는 근경과 간종이 일반화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작무(묘)법과 시비법의 개선이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구비의 보편화를 낳은 시비법의 발달과 역축의 확대 보급, 농구의 분화 및 새로운 개발, 그리고 전면번전경의 보편화도 이 시대 농업 생산기술을 고도화하는 데 중요한 원동력이 되었다. 또한 이러한 발전과정은 처음 중국 농서의 보급으로 출발한 농학의 발달과 흐름을 같이하는 것이었으며, 이는 결국 우리 현실에 맞는 새로운 농서의 편찬과 보급으로 이어져 나갔던 것이다.

한편 그러한 직접적인 요인 외에도, 이 시대 농업생산력의 발전은 인구의 급속한 증가, 농지공급의 확대라는 간접적인 요인에 의해서도 더욱 촉진되었다. 특히 조선 전기의 전기간 동안 인구는 2배 가까이 성장하여 농업 발전을 강력히 촉구하였다. 뿐만 아니라 조선 전기의 농지 공급 상황 역시 초기의 급속한 농지공급 확대와 그 이후의 질적 개량을 통해 이 시기 농업 생산력 발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李鎬澈>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