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Ⅰ. 학문의 발전
  • 1. 성리학의 보급
  • 4) 대표적인 성리학자들
  • (2) 권근(1352∼1409)

(2) 권근(1352∼1409)

 權近이 이해하고 실천한 성리학의 체계는 그가 귀양중에 初學之士들을 위해 저술하였다는≪入學圖說≫에 제시되어 있다. 程朱 성리학을 토대로≪입학도설≫이 저술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권근의 성리학 이해에 대한 입장이 잘 나타나 있다.077) 권근에 대한 이해도 이 시기 역사이해와 관련하여 중요하나 연구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권근에 대한 연구로 다음이 참고된다.
都珖淳,≪權近의 生涯와 思想≫(한국인문과학연구소, 1985).
尹絲淳,<朝鮮初期 성리학의 전개>(≪韓國哲學史≫中, 1987).
―――,<陽村의 性理學>(≪한국의 성리학과 실학≫, 열음사, 1992).
그의 성리학 이해체계는 크게 2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天人心性合一之圖·天人心性分釋之圖·洪範九疇天人合一圖 등에서 제시하고 있는 천도와 인도의 상호 관련성에 대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五經各分體之圖·五經體用合一之圖 등에서 제시하고 있는 全體大用的인 입장이다.

 그는 먼저 자신이 몸담고 있는 이 세계 우주에 대해 기본적으로 “하늘은 陰陽五行으로 만물을 낳고 氣가 형체를 이루며 理가 또한 품부되어 있다”고 이해하였다.078) 權 近,≪入學圖說≫天人心性合一之圖說. 그리하여 사람과 사물이 생겨남에 그 이는 같으나 기의 通塞偏正에 차이가 있어 그 正하고 通한 것을 얻은 것이 사람이 되고, 그 偏하고 塞한 것을 얻은 것이 사물이 된다고 보았다. 다시 말하면 사람·동물·초목 등은 비록 형체는 천만가지이나 모두 하나의 太極 중에서 유출되는 관계상 만물이 각기 하나의 태극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천하에는 性이 없는 사물은 없기 때문에≪中庸≫에서 말하는 그 성을 다하면 능히 사람이 성을 다하고, 능히 사물이 성을 다하면 천지의 化育을 돕는 것이 된다고 말하고 있다.

 천지의 화육을 돕는 것은 타고난 성을 다하는 데 있고 특히 사람의 성을 다하는 데 있다. 그런데 사람의 성은 마음의 작용여하와 관련을 가지고 있다. 권근은 성이 형상화하여 발한 것이 情이고 心이 형상화하여 발한 것이 意로서 모두 심의 用으로 보았다.

 권근은 또 심의 虛靈知覺을 체용관계에서 파악하여 마음의 허령함은 五常의 性으로 萬事萬物의 理를 통솔하지 않음이 없고 마음의 지각은 四端七情의 느낌으로 만사만물의 변화를 관찰하지 않음이 없다고 보았다. 여기서 특히 권근이 강조하고 있는 것은 마음의 이 두 가지 허령지각의 체용관계를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즉 한갓 마음의 靜虛한 것만 알고 5상의 성이 體가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면, 그 마음됨이 막연하여 도교의 虛와 불교의 空寂에 함몰되지 않음이 없다고 하였다. 조선 초기 벽불론의 이론적 근거가 여기에 있음을 밝힌 것이다. 또 “한갓 마음이 지각 있음만 알고 4단7정의 발함이 있음을 알지 못한다면 마음은 物의 사역하는 바가 되고 欲이 動하고 情이 勝하여 達道가 행해지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다.079) 四端七情의 發處 문제는 이후 한국 성리학의 주요한 논쟁거리가 되었는데, 그 단서가 이미 권근에 의해서 제기되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해서 천지만물의 생성변화가 인간 심성의 생성변화와 직결되어 있고 특히 인간의 심성을 제대로 발현하는 것이 중요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敬을 통한 자기수양을 하지 않을 수 없음을 말하였다. 이러한 권근의 이해는 보다 구체적인 현실문제, 이른바 국가를 다스려 나가는 문제에서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그는「洪範九疇」가 天道와 人道를 갖추고 있다고 주장하였다.080) 權 近,≪入學圖說≫洪範九疇天人合一圖說. 즉 그는 ①五行 ②五事 ③人政 ④五紀 ⑤皇極 ⑥三德 ⑦稽疑 ⑧瑞徵 ⑨福極 등 천하를 다스리는 큰 법으로 설정하고, 그 가운데서 천도인 5행과 인도인 5사 그리고 천도와 인도를 합하여 하나로 하는 황극을 무엇보다 중시하였다. 특히 그는 천하를 다스리는 九五의 지위를 중시하였다. 황극이란 천도를 잇고 인극을 세워 사방의 표준이 될 뿐 아니라 만민의 법으로 삼는 자리임을 강조하였다. 그리하여 황극을 세우느냐 못세우느냐 여하가 통치와 직결된다고 보았다. 즉 5사를 얻어 황극이 세워지면 5행이 순조로이 운행되고 자연의 아름다운 休徵이 나타나지만 5사를 잃어버려 황극이 세워지지 못하면 5행은 汨하고 자연의 咎徵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天과 人이 서로 유통하여 감응하는 도가 분명해진다. 그리고 국가통치와 직결되는 5사를 닦고 황극을 세우는 방도가 중요하게 된다. 권근은 敬을 공부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말하면서, 군주들이 경을 공부할 것을 강조하였다.

 마음의 허령과 지각을 이해하는 데서도 나타나고 있지만 권근의 성리학에서 나타나는 특징은 체용적 자세가 강하다는 점이다. 이런 점은≪입학도설≫에서도 예외는 아니어서 유학의 기본경전을 체용적인 측면에서 파악하였다. 이를테면 五經과 관련하여≪易經≫은 그 도가 천지에 있는데 성인이 이를 체현하고 있고,≪春秋≫는 도가 성인에 있는데 천지가 어길 수 없다고 보았다. 앞서 天人心性의 측면에서도 천도와 인도를 연결하여 황극을 세워야 하는데 바로 성인군자만이 이 황극을 세워 세상을 통치할 수 있다고 하였는데, 5경을 이해하는 데서 이 점이 구체화되었다. 즉 그는 성인을 5경의 전체로 보면서 5경을 성인의 대용으로 보았다.081) 權 近,≪入學圖說≫五經體用合一之圖說·五經各分體用之圖說. 다시 말하면 5경이란 성인이 나와 천도를 잇고 人極을 세워 세상을 통치하는 것을 말하는데,≪역경≫은 천도를 형상화한 것이고,≪춘추≫는 성인이 세상을 통치한 역사로,≪書經≫은 상벌로써 정치를 행한 기록이며,≪詩經≫은 말로써 권선징악을 다스린 기록으로,≪禮經≫은 행동으로써 節文하는 기록으로 파악하였다.

 조선왕조 개창 후≪五經淺見錄≫을 저술하였는데, 그 저술의 동기도≪입학도설≫에서의 입장과 무관하지 않다. 성인이 천도를 체득하여 그것을 정치로, 말로, 행동으로 그리고 이 모든 것의 기록이≪춘추≫로 나타났다고 본 것이다. 이를 통하여 그가 조선왕조 개창 후 적극적으로 국사에 참여하게 되는 사상적 배경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뿐만 아니라 그의 국사참여는 결국 성리학의 목표인 지치를 구현하려는 데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 밖에≪입학도설≫에는 여러 가지 도설이 수록되었다. 그 가운데 성리학적 예제와 관련하여 논란거리가 종묘제사 문제였다. 이 문제는 당시 제례가 불교적 예제에 의거하여 거행되었던 것이 일반적이었던 점에 비추어 이를 유교적 제사로 전환하는 타당성에 대한 논리가 요구되었다. 그것은 곧바로 유교·불교·도교의 비교에서 현실적으로 우위를 점하게 되는 요건으로서 중요하였다.

 이 문제에 대해 권근은 나라에 제사지내는 문제와 관련하여 왜 무엇에 대해 어떻게 제사하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를 제시하였다.082) 權 近,≪入學圖說≫諸侯昭穆五廟宮之圖說. 즉 조상에 제사지내는 것은 조상의 氣가 나에게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위고하에 따라 기가 미치는 범위에 차이가 있으므로 천자가 천지에, 제후가 산천에 제사지내야 하는 근거가 여기에 있다. 조선 초기 왕실이나 사대부를 막론하고 立後 문제가 중요시되고 사회문제로 부각된 사상적 근거는 기에 있었으며, 나아가 봉건적 신분에 따른 제사의 범위를 지위와 관련된 기의 廣狹으로 파악하는 데서 성리학적 질서인 예제의 근거가 기에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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