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Ⅰ. 학문의 발전
  • 2. 훈민정음의 창제
  • 6) 훈민정음과 관련된 사업들
  • (2) 서적의 간행

(2) 서적의 간행

 훈민정음 창제 뒤에 이 문자로 간행된 초기의 문헌으로는≪훈민정음≫(해례본)·≪동국정운≫·≪용비어천가≫·≪월인천강지곡≫·≪석보상절≫·≪월인석보≫등을 들 수 있다. 이들에 대해서 간단한 설명을 하기로 한다. 다만≪훈민정음≫(해례본)에 대해서는 이미 자세히 적었으므로 생략한다.

 ≪동국정운≫은 언제부터 그 편찬이 시작되었는지 기록이 없다.163) 이 책의 完本(6卷)이 1972년에 江陵에서 발견되었다. 현재 建國大學校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세종 26년에≪운회≫번역사업이 있었는데 그 뒤 이 책이 간행된 흔적은 없고≪동국정운≫이 나타난다. 이것을 보면 세종이 처음에는≪운회≫의 번역으로 우리 나라 한자음의 표준화를 단행하려 했다가 무리가 있음을 깨닫고 새로운 운서를 편찬하게 된 것으로 추측된다. 이 책의 간행은 신숙주의 서문에 의하면 세종 29년 9월 하순이었다.

 ≪용비언천가≫(10권)는 세종 27년 4월에 일단 편찬되었으나 왕명으로 보수하여 세종 29년 10월에 간행되었다. 이 때에 550책을 여러 신하에게 나누어 주었다는 기록이≪세종실록≫에 보인다. 125장의 가사와 지명·인명 등의 표기에 정음이 사용되었다.

 ≪석보상절≫은 세종 28년 3월에 세상을 떠난 昭憲王后의 명복을 빌기 휘하여 수양대군 등이 세종의 명을 받아 석가모니의 일대기를 주로 한문 서적에 의존하여 편찬한 것이고,≪월인천강지곡≫은 세종이 이것을 보고 지은 것이다.≪석보상절≫은 그 서문에 의하여 세종 29년 7월에 이루어졌음이 확실하나,≪월인천강지곡≫의 정확한 간행년대는 알 수 없다.≪석보상절≫은 24권 정도,≪월인천강지곡≫(3권)은 500章 가까운 가사로 이루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164)≪釋譜詳節≫은 落帙이 전하며(國立圖書館 所藏 등),≪月印千江之曲≫은 상권만이 전한다(개인 소장).

 ≪훈민정음≫(언해본)이 언제 이루어졌는지는 확실하지 않다.≪월인석보≫(1권) 첫머리에 붙어 있는데 본래는≪석보상절≫(권 1) 첫머리에 붙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165) 安秉禧,<訓民正音의 異本>(≪震檀學報≫42, 1976) 참조.

 ≪洪武正韻譯訓≫의 편찬은 세종대에 추진되었으나 단종 3년에 완성되어 간행되었다. 한편 신숙주가 편찬한≪四聲通攷≫는≪홍무정운역훈≫의 한자들을 보기에 편하도록 개편한 것이었다. 이 책들은 한자의 중국 발음을 적은 것으로≪동국정운≫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166)≪洪武正韻譯訓≫은 그 落帙本이 전하지만(고려대학교 도서관 소장),≪四聲通攷≫는 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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