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Ⅱ. 기술
  • 1. 농업과 농업기술
  • 2) 농업기술
  • (3) 서지법

(3) 서지법

 호미(鋤)를 사용하여 保濕 및 除草를 행한 여러 기술을 동아시아 농업에서는 일반적으로 鋤地法이라 지칭해 왔다.194) 서지법은 起土를 위한 春鋤와 단순히 제초만을 위한 夏鋤로 나뉘어지는데, 전자의 경우는 봄가뭄을 견디기 위한 耐寒 및 保濕機能에 주목하였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西山武一, 앞의 책, 95쪽). 이 작업에서는 다양한 鋤地具들이 등장할 뿐 아니라, 서지의 목적도 보습을 위주로 하는 ‘春鋤’와 제초를 목적으로 하는 ‘夏鋤’로 나뉘어지기 때문이다. 조선 전기의 서지작업은 ‘提鋤’란 용어로 집약되어 표현되었는데, 이미 봄가뭄을 극복하기 위한 ‘춘서’와 일년의 농사가 오로지 제초작업에 달려 있다고 할 정도로 중요시된 ‘하서’가 분명히 구분되었다. 그러한 사실은 이 시대의 농업이 ‘풀과 싸우는 농업’이란 동아시아 농업의 고유한 성격을 지녔음을 보여준다.

 조선 전기의 서지법은 수전농업에서의 서지법(제1유형)과 足種작물의 서지법(제2유형), 그리고 기타 한전작물의 서지법(제3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제1유형의 농법에서는 ‘손을 이용한 제초’와 ‘호미를 이용한 제초’가 함께 행해졌을 뿐 아니라 관·배수작업과 제초작업이 서로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었다. 또한 가장 치밀한 서지법이 행해진 제2유형에서는 춘서와 하서가 엄격히 구분되었다. 그러나 보편적인 경우인 제3유형에서는 춘·하의 호미가 전혀 구분되지 않는데, 이는 중국과 우리 나라의 기후 차이에 따른 서지법의 차이를 명백히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또한 작물별 서지 횟수를195) 李鎬澈, 앞의 책, 167쪽의<표 2>‘≪農事直說≫의 鋤地回數’ 참조. 보면 가장 많은 4회의 서지작업이 기장·조·만도 등의 작물에 행해졌다. 일반적으로 콩·팥과 조도·만도의 수도작에는 3∼4회 정도의 김매기 작업이 행해졌다고 보여지는데 상농일수록 더 많은 횟수의 제초작업이 행해졌을 것이다. 淡水 直播法의 경우와는 달리 이앙법이 행해진 경우에는 그보다 훨씬 적은 1∼2회의 제초가 행해졌을 것이다. 이를 보면 수세작물이었던 水稻나 춘서와 하서가 분명히 구분되었던 고전작물에는 집약적인 서지작업이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밖의 대부분의 작물들의 경우는 모두가 1회 이하의 서지작업만을 행하였으며, 이는 이 시대 농업의 조방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가 되는 것이다.

 또한 이 시대 호미의 형태는 여러 자료에서 나타나는 ‘호메고’·‘荷鋤’·‘長鋤’·‘長柄大鋤’ 등의 용어들로 보아 長柄鋤가 존재했음이 확인된다.196) 李鎬澈,<朝鮮前期의 鋤地農法>(≪第29回 全國歷史學大會 發表要旨≫, 1986).≪訓蒙字會≫에서도 단병서를 ‘거훔한’, 장병서를 ‘호’라 한 것으로 보아, 조선 전기에는 단병서와 장병서가 함께 사용되었지만 그 중에서 가장 널리 사용된 호미의 형태는 바로 장병서였음을 알 수 있다.197) 李鎬澈,<鋤地法>(앞의 책), 173∼184쪽. 이로 볼 때≪농사직설≫과≪금양잡록≫등에서 주로 사용된 호미는 대부분 중국의 경우와 같은 장병서였으며, 이는 한전작물의 서지법 등 많은 작업에서 널리 사용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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