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3. 인구의 감소
  • 1) 조선시대 인구 추정
  • (2) 인구학적 연구방법에 의한 연구결과

(2) 인구학적 연구방법에 의한 연구결과

權泰煥·愼鏞廈,<朝鮮王朝時代 人口推定에 관한 一試論>(≪東亞文化≫14, 1977. 12).

 1925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시행된 제1회 국세조사의 결과를 조선시대 호구조사 자료를 활용하는 기준으로 삼아,≪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조선 말기의 인구수(약 700만)는 완전성이 40% 미만인 것으로 평가하였다. 그리고 조선시대 자료 중 완전성이 높은 서울 인구에 의한 전국 인구수의 재구성을 시도하였다. 서울 호구수 중 경종 3년(1723)부터 정조 23년(1799)간 2∼12년 간격으로 보고된 것과, 세종 8년(1426)·현종 10년(1669) 것을 완전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하였다. 전국 인구에 대한 비율이 1925년 국세조사의 것과 동일하다는 것을 그 근거로 삼았다. 서울 호구수에서 전국 호구수 추정에 활용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는 호당 口數 곧 가구원수였으며, 이의 산출을 통해 인구학적으로 기대 가구원수와 보고된 수치와의 차이를 보정 요인으로 삼아 전국 인구수를 재추정하는 방법을 썼다.

 위와 같이 평균 가구수를 추정한 다음, 세종 27년 환자미 방출시의 황해도 진휼 대상 호구수를 단편적이나마 완전성을 보이는 자료로 주목했다. 이 자료를 활용해 세종 22년 자료(戶 201,853, 口 692,475)의 완전성이 호 41.4%, 구 15.54%인 것을 산출하여 세종대의 인구수를 6,724,000명 정도로 추정하였다. 이어 이에 근거한 중종대 인구자료의 완전성과 보정 요인 등을 산출하고. 세종 22년∼중종 38년(1543)간, 중종 14년∼38년간의 연평균 인구증가율을 각각 0.53%, 0.44%로 산출했다. 이에 근거해 태조 원년(1392)∼세종 22년간, 중종 38년∼선조 24년(1591)간의 연평균 인구증가율을 0.4%로 가정하여 임진왜란 전까지의 각 년의 인구수를 파악하였다. 조선 건국의 해인 1392년의 인구는 약 555만 명, 임진왜란 직전인 선조 24년은 약 14,00만 명에 달한 것으로 추산하였다.

 선조 25년 임란 이후 인조 15년(1637) 병자호란까지는 전쟁과 관계된 질병· 기근· 사회적 불안 등을 고려해 연 -0.2%로 인구가 감소했다는 인위적 가정을 세웠다. 동일한 가정은 19세기에도 적용되었다. 그 사이의 호구수 추정을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방법을 썼다. 먼저, 인조 17년∼현종 10년간의 30년 동안 호구자료(호 441.827, 구 1,421,165→호 1,313,652, 구 5,018,744)는 ‘급격한 질적 향상’을 보인 것이라고 평가하고, 이 사이의 매년 인구수 보정을 위해 현종 10년 이후 자료와 동일한 오류 유형을 갖도록 일차 보정을 한 후 이를 실제 인구수 추정에 사용하는 방법을 썼다. 현종 10년 것을 기준으로 30년간 호수의 증가율을 25%로 가정하여 호구수를 재조정 한 다음, 1639∼1669년간의 호수는 1669년 이후의 호구와 같은 개념으로 조사된 것으로 간주하여, 현종 17년 이후의 모든 호구조사자료의 오류 보정은 평균가구원수의 조정에 두었다. 평균가구원수는 숙종 46년(1720)의 울산호적자료를 표본으로 사용하여 연령별 분포의 비정상성을 파악한 다음, 이를 1925년의 전국 연령 분포와 대비해 지수형 방정식을 만들어 추산하였다. 그리하여 조선시대 매 연도별 추정 인구표를 제시하였는데(<그림 1>의 ②), 조선 후기의 경우, 인조 17년은 10,665,000명, 철종 12년(1861)은 16,762,000명으로 제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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