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Ⅳ. 학문과 종교
  • 6. 역사학
  • 3) 당대사의 편찬
  • (4) 사찬 지리서의 편찬

(4) 사찬 지리서의 편찬

 조선 전기의 관찬 지리서 편찬과는 달리 16세기 이후에는 지방의 관리, 학자들이 중심이 된 읍지가 광범위하게 편찬되기 시작하였다. 중앙정부가 지방사정을 파악하는 자료로 이용되었던 조선 전기 官撰의 通志와는 달리, 이것은 주자학 이해의 심화와 사림파 지식인들의 이상정치 실현을 위한 일련의 향촌사회에 대한 통제정책과 관련된 것으로,0745)楊普景,<16∼17世紀 邑誌의 編纂背景과 그 性格>(≪地理學≫27, 대한지리학회, 1983).
―――,≪朝鮮時代邑誌의 性格과 地理的 認識에 관한 硏究≫(서울大 地理學科 博士學位論文, 1987), 66∼96쪽.
지방통치를 위한 자료의 획득이라는 목적과 더불어 유교적인 향촌교화의 측면이 강조되고 있어 조선 중기 사림파 지식인들의 역사의식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조선에서 편찬된 최초의 사찬읍지는 李耔가 1507년에 편찬한 경상도 義城의≪聞韶志≫로 알려지고 있으며,0746)楊普景, 위의 책, 67쪽. 현존하는 것으로는 鄭逑(1543∼1620)에 의해 편찬된≪咸州志≫(1585)가 시기적으로 가장 이르다.0747)金慶洙,<鄭逑의≪咸州志≫연구>(≪于江權兌遠敎授 停年紀念論叢≫, 1994). 그외에도 16∼17세기 동안 경상도와 전라도를 중심으로 활발한 읍지 편찬이 이루어졌으며, 이후 지역적으로 전국으로 확대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0748)16∼17세기 편찬된 사찬읍지에 대한 개별적 검토는 다음 글을 참조.
楊普景, 앞의 책.
任世權,<永嘉誌 編纂 및 刊行의 意義>(≪安東文化의 再認識≫, 安東文化硏究會, 1986).
金慶洙, 위의 글.
崔允榛,<16, 17세기에 편찬된 慶尙道의 私撰 邑誌>(≪全北史學≫17, 1994).

 이러한 읍지 편찬의 성행은 지방의 문화의식을 고양시키는데 기여하였을 것이며, 오늘날에도 지방사 연구에 소중한 자료일 뿐만 아니라 사학사적인 의미에서도 중요하다.

 한편 通志로서는≪東國輿地勝覽≫이 조선 전기의 문화를 총집성하였으며 그 이후 이를 수정한≪新增東國輿地勝覽≫이 중종 25년(1530)에 편찬되었을 뿐 국가적인 편찬사업으로 전국적인 통지는 편찬되지 못하였다. 그런데 실학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柳馨遠에 의해≪東國輿地志≫가 편찬되었던바, 이는 개인 학자에 의해 만들어진 전국규모의 통지일 뿐만 아니라 실학적인 안목으로 작성된 지리서로 지리서의 편찬에 있어 새로운 발전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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