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Ⅴ. 문학과 예술
  • 2. 미술
  • 5) 건축
  • (3) 읍성과 관아, 객사

(3) 읍성과 관아, 객사

 각 지방마다 읍성이 축조되고 읍성 속에는 관아와 객사, 병영 등을 건립하여 행정이 원활하게 이루어 지고 백성들이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토록 하였다. 조선시대의 읍성들은 대부분 이미 조선 초기에 그 기틀이 마련, 축조되었고, 또 고려 때 더 일찍이는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축조되어 조선 중기에는 개보수 등의 공사가 주로 이루어 졌다. 그러나 교동읍성·청주읍성·고창읍성·영천읍성·울산읍성 등은 중기에 축조되었다.0881)孫永植,≪韓國城郭의 硏究≫(문화재관리국, 1987), 247∼250쪽.

 喬桐邑城은 강화도 교동면 읍내리에 있는 인조 7년(1629)에 축조된 석축성으로 둘레 305m, 높이 2.4m로 동 남 북에 성문을 세웠다.

 淸州邑城은 오래전에 축성된 것으로 판단되나, 성종 18년(1487) 2월에 성답게 축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형태는 남북이 긴 장방형의 모를 죽인 抹角방형으로 기록상 둘레는 3,648척, 높이 8척, 여장 높이 5척이다. 성내에 우물 13개소, 포루 8개, 성문은 동서남북 4개의 대문을 두었다. 또 남문과 북문에는 甕城이 있다. 성내에는 官衙인 淸州東軒, 望仙樓, 淸寧閣 등이 지어졌는데 현재 이들 건물만이 남아 있다.

 관아건축은 중앙 관아와 지방 관아로 나누어 지는데, 중앙관아는 議政府, 宗親府 등의 관아와 이조, 호조, 병조 등의 六曹 관아들이 있고, 지방 관아로는 각 도에 관찰사가 정무를 보는 監營을 세우고, 각 관찰사 밑에 부, 대도호부, 목, 도호부, 군, 현 등으로 구분된 행정단위가 있고, 이의 공적 업무를 보는 관아로 東軒이 건립된다.0882)朱南哲,<宮衛建築에 관한 硏究>(≪建築≫28-116, 대한건축학회, 1984).

 江原監營은 고려 성종 4년에 초창되었는데 선조 때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어, 현종 원년(1660)에 원주목사 李後山이 다시 지었다. 현재 몸채인 宣化堂과 문루, 부속채인 청운당만이 남아 있다. 선화당은 정면 7칸 측면 4칸으로 내부에 고주를 세워 외진과 내진으로 구분하여 외진 바닥은 기단상부의 마감처럼 전돌마감이고 내진은 외진바닥보다 한단 높이하여, 우물마루와 장마루로 마감하였다. 공포는 이 익공양식으로 출목은 없으며, 초익공은 연화초각의 앙서로, 이익공은 연봉을 조각한 수서로 이루어져 있다. 이 고주칠양 겹처마의 팔작기와집을 이루고 있다. 문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의 중층 누문이다.

 金堤東軒은 현종 8년에 건립하였고 숙종 25년(1699)에 중수하였다. 정면 7칸 측면 4칸의 단층 겹처마 팔작집이다. 세벌대의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워 연봉을 조각한 이익공양식의 공포를 짜 결구하였는데 보머리도 봉두형으로 조각하였다. 본래 내부에 온돌방이 양쪽에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바른쪽에만 4칸 크기의 온돌방이 있고 나머지는 우물마루로 마감되었다. 동헌의 뒷쪽으로 살림채인 內衙가 자리를 잡고 있는데, ‘ㄷ’자형 평면으로 중앙에 대청을 두고 좌우로 온돌방과 부엌을 둔 전형적인 살림집의 모습을 이루고 있다. 가구는 오량이며, 홑처마 팔작기와지붕을 하고 있다(<도면 4-1,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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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면 4-1>김제동헌(평면도)
<도면 4-1>김제동헌(평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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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면 4-2>김제동헌(종단면도)
<도면 4-2>김제동헌(종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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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客舍건축은0883)朱南哲,<客舍建築에 관한 硏究>(≪대한건축학회논문집≫2-3, 대한건축학회, 1986). 殿牌와 闕牌를 감실에 모셔놓고 초하루와 보름에 지방의 수령이 向闕望拜의 의식을 거행하며, 또 사신을 맞이하여 접대하는 곳이다. 중국사신이 머무는 송도의 太平館과 같은 객사에는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와 중국의 천자를 상징하는 궐패를 모신 龕을 모셔두지만, 기타 객사에서는 전패만을 모셔둔다.0884)주남철,≪한국건축사≫(대한건축학회, 1996), 485쪽. 읍성내의 동헌 가까이에 건립하는데, 구성은 정청과 좌우 익헌, 고직사, 루, 객사문 등으로 구성된다, 정청에 궐패와 전패를 모시고 좌우 익헌에는 온돌방을 두어 사신이 머무르게 하고 루에서는 잔치를 하며, 고직사에서는 음식장만 등의 뒷바라지를 하게 된다. 조선 중기에 건립된 객사 건축으로 현존하는 것으로는 전주객사(1471년 중건), 거제객사(1489년), 무장객사(1581년), 밀양객사(1652년), 부여객사(1704년), 선성현객사(1712년), 낙안객사(1722년), 완도객사(1722년) 등이 있다.

 부여객사는 정청과 좌우 익헌만이 남아 있는데 정청은 정면 3칸, 측면 3칸이고 좌우로 반칸 떨어져 좌우 익헌이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자리잡고 있다. 정청은 단층 맞배집으로 이익공양식이고, 좌우익헌은 단층의 초익공양식으로, 지붕의 용마루는 정청보다 한단 낮은데, 정청쪽의 지붕은 맞배지붕으로, 끝단은 팔작지붕을 이루고 있다(<사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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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부여객사
<사진 1>부여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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