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Ⅴ. 문학과 예술
  • 3. 음악
  • 2) 단가의 발생과 전개
  • (5) 삭대엽

(5) 삭대엽

 노래로 불려진 삭대엽의 완형은 17세기 후반의≪증보고금보≫에 처음 보이는데, 대체적인 악곡구조는 중대엽과 거의 같다. 그러나 삭대엽은 노래선율이 중대엽에 비하여 단순하고, 중대엽과는 달리 우조와 (우조)계면조가 평조보다 선행하여 기록되었다.≪증보고금보≫의 삭대엽은 다음<악보 16>처럼 선율이 비교적 높게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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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보 16>≪증보고금보≫의 우조삭대엽
<악보 16>≪증보고금보≫의 우조삭대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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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삭대엽이 중대엽을 대치한 정확한 시점은 명확하지 않으나 이미≪증보고금보≫시절부터 삭대엽이 중대엽과 함께 노래로 불려졌다. 그리고 얼마 후 곧≪신증금보≫와≪한금신보≫에 이르면 삭대엽은 중대엽을 대치하여 불려졌고, 각 악조의 악곡들이 모두 제2곡, 제3곡(제4곡) 등을 파생하여 그 노래의 곡수가 많아졌고 내용도 다양해졌다. 이러한 삭대엽 제2, 제3 등은 각각 삭대엽 본곡의 머리선율을 변주한 곡이다. 예를들면,≪한금신보≫의 羽調삭대엽 제3은 선율이 다음<악보 17>처럼 매우 높게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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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보 17>≪한금신보≫의 우조삭대엽 제3
<악보 17>≪한금신보≫의 우조삭대엽 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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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기의 삭대엽은 그 음악적 특징이 여러 가지로 중대엽과 닮았다. 박자와 형식, 악조, 사설붙임 등 대부분의 악곡구조에서 삭대엽은 중대엽과 비슷하다. 특히 빠르기에 있어서도 처음에는 분명히 삭대엽이 중대엽보다 빨랐을 것으로 보이나, 중대엽 노래가 소멸한 뒤에는 삭대엽의 빠르기도 중대엽과 비슷하게 느려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삭대엽이 중대엽과 다른 점은 우조 노래가 평조 노래보다 더 선호된 점이다. 이러한 사실은 영산회상에서 음역이 높은 영산회상甲彈이 파생된 사실과 더불어 조선 중기의 음악적 취향이 평조에서 우조로 바뀌었음을 알게 한다. 즉 이 시기에는 꾸준히 높은 음역의 선율이 새로 개발되고 애호되었다 하겠다.

 조선 중기의 삭대엽은 중대엽을 대치하여 발전을 거듭하면서 점점 더 많이 애호되었고, 많은 곡을 잇대어서 連唱하는 조선 후기의 가곡으로 이어졌다. 즉 삭대엽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긴 가곡 한 바탕을 형성한 것은 여러 歌壇이 조성되고 그 활동이 두드러지는 조선 후기에 이루어지므로, 조선 중기의 삭대엽은 후기에 가곡을 꽃피우기 위한 토양을 풍성하게 한 셈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대엽·만대엽·북전·중대엽·삭대엽 등의 악곡은 공통적으로 조선 중기에 성립되었다. 그리고 대엽은 곧 만대엽에 대치되고 소멸되었고, 다시 만대엽은 중대엽에, 중대엽은 삭대엽에 그 노래가 각각 대치되면서 조선 중기에 사라졌다. 그러나 북전과 삭대엽은 그 노래가 계속 불려져서 조선 후기에 이어지는데, 그 이유는 두 노래가 조선 중기에 생성하고 소멸한 여러 노래를 대표하는 두 가지 구조적 특징을 가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즉 삭대엽은 악곡구조가 3구 6행의 기본틀로 되었고, 북전은 3구 3행의 기본틀로 되었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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