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Ⅴ. 문학과 예술
  • 3. 음악
  • 3) 기악풍류의 성립과 발달
  • (3) 보허자

(3) 보허자

 보허자는≪高麗史≫에 기록된 詞樂의 하나이나, 조선 중기에 이르면 민간풍류로 정착된다. 사악 보허자의 본래 선율은 다음에서 알 수 있는 것과 같이 단순한 노래선율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尾前詞의 첫 구절만 적으면<악보 20>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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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보 20> 보허자의 기본선율
<악보 20> 보허자의 기본선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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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악 보허자가 풍류로 변환한 시점도 분명치는 않다. 다만≪금합자보≫와≪이수보≫에 기록되어서 대개 영산회상과 같은 시기에 풍류로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 下三(大四) 한 음에서 발전한≪이수보≫보허자의 첫 행은<악보 21>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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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보 21>≪이수보≫의 보허자
<악보 21>≪이수보≫의 보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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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수보≫의 보허자는 길이가 훨씬 길고 선율이 황종궁의 평조로 된 점에서 같은 악보의 영산회상과 다르지만, 그 외의 음악적 특징은 영산회상과 매우 비슷하다. 즉 선율에 동음반복이 많고 ‘사랭’ 또는 ‘스렝’이 많아서 느린 음악임을 알 수 있다.

 풍류 보허자는≪신증금보≫에 이르러 ‘片’(후기의 章)의 구분이 생기고,≪한금신보≫에 이르러 영산회상처럼 步虛子本還入·步虛子數還入·步虛子除指 등을 파생하였다.0938)張師勛,<步虛子論攷>(≪國樂論攷≫, 서울大 出版部, 1966). 이러한 초기 파생곡들은 위에서 언급한 영산회상의 초기 파생곡들처럼 보허자를 조금씩 변주한 것이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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