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Ⅴ. 문학과 예술
  • 5. 무용·체육
  • 1) 무용
  • (2) 일무

(2) 일무

 佾舞는 역대 제왕의 신위를 모시는 종묘제례와 薛聰, 崔致遠 등의 우리 나라 성현들과 孔子를 비롯한 그의 제자들을 기리는 문묘제례에서 쓰이는 춤으로 列을 지어 추는 엄격한 형식을 갖추고 있다.

 원래 일무는 지위에 따라 八佾舞, 六佾舞, 四佾舞, 二佾舞의 4종류가 있는데 이러한 일무는 주나라 때 비롯된 것으로 고려 예종 11년(1116)에 송으로부터 우리 나라에 들어왔다고 한다. 이 때 수입된 일무의 舞制는 雅樂의 전래와 더불어 6열 6행으로 36명이 추는 6일무가 들어왔는데 그 뒤 親祠登歌와 軒架에 보면 한 줄 8명씩 6줄에 6일무를 썼고, 有事攝事登歌와 軒架에는 한 줄 8명씩 4줄에 32명의 4일무로 바뀐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文宣王廟 즉 공자를 모신 문묘제향에는 천자가 행하는 제의라고 해서 조선 초기부터 현재까지 64명이 추는 8일무를 쓰고 있다. 그리고 일무는 그 안에 문무와 무무로 나뉘어지는데 문무는 왼손에 籥, 오른손에 翟을 들고 추며, 무무는 왼손에 干과 오른손에 戚을 들고 춘다. 또한 조선 초 종묘제례 때 쓰던 일무의 형식으로는 세종 때 회례연에 사용되던 보태평과 정대업의 육일무가 한 줄 8명씩 6줄에 48명이었는데 세조 9년(1461) 이후 종묘제례악으로 개작되어 종묘와 영령전 제향 때에 쓰였는데 한 줄에 6명씩 6줄에 36명의 육일무가 채택되었다.≪악학궤범≫에 수록된 것을 보면 종묘에서 연출하던 일부는 춤의 내용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이 없고 겨우 일무의 순서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1024)成 俔,≪樂學軌範≫권 2, 時用俗部祭樂.

 먼저 迎神에는 保太平之樂을 아뢰고 保太平之舞를 추는데, 춤은 熙文舞가 九變이다. 奠幣에 또한 보태평의 악무로 춤은 熙文舞이다. 進饌에는 豊安之樂으로 춤은 없다. 初獻에는 보태평지악을 아뢰고, 보태평지무를 추는데 11聲이다. 亞獻·終獻은 함께 정대업지악·정대업지무로 11성이다. 徹邊豆에는 雍安之樂, 送神에는 興安之樂으로 일무는 없다. 永寧殿의 악무가 또한 종묘와 거의 같다.

 위와 같은 종묘의 6일무는 광무 원년(1897)에 64명의 8일무로 바뀌어 썼고, 1910년 이후로는 다시 8일무를 써 왔는데 1960년대 李氏 종친회에서 종묘제향을 주관하여 받들게 되면서 다시 8일무를 채택하여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1025)장사훈,≪한국무용개론≫(대광문화사, 1992), 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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