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1. 성리학
  • 5) 유기론과 유리론의 대두와 쟁점
  • (1) 임성주의 유기론

(1) 임성주의 유기론

 鹿門 任聖周는 18세기 기호학파 성리학의 대표적 인물인 陶菴 李縡의 문하에 출입하였고, 渼湖 金元行, 雲坪 宋能相과 인물성동이론의 문제를 비롯한 성리설을 토론하였던 당대 성리학에서 비중이 큰 인물이다. 그는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사이에 성리학적 입장의 커다란 전환을 일으켰으며 이 시기에 기일원론의 입장을 체계화하고 자신의 기철학을<鹿廬雜識>에서 서술하였다.

 임성주는 주희가 제기한 바 ‘이’와 ‘기’는 결단코 두 가지의 것이라는 주장(理氣決是二物說)을 버리고 羅欽順의 理氣一物說을 받아들인다.

사람과 사물을 낳은 것이 다만 하나의 기(一個氣)이다. 그 작용은 누가 시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렇게 하여 그렇게 되는 것(自然而然)일 뿐이다. 이처럼 스스로 그렇게 하는 것을 성인들은 ‘도’라고 하고 ‘이’라고 하였다(任聖周,≪鹿門集≫권 19, 雜書 鹿廬雜識).

 ‘기’와 ‘이’를 완전히 동일시하는 입장을 취함으로써 우주의 실체를 ‘기’로 파악하고 있다.

 또 그는 율곡계열의 기호학파에서 성장하였지만 율곡의 理通氣局說이 ‘이’와 ‘기’를 각각 소통성(通)과 국한성(局)에 배당하여 이원화시키는 경향이 있음을 지적하여 거부하였다. 나아가 ‘이’와 ‘기’를 통일성(一)과 차별성(分殊)에 배당하는 理一氣分殊로서의 理一分殊說에 대해서도 이원론이라 비판한다. 여기서 그는 ‘이’의 입장에 서서 보면 통일성과 차별성이 모두 ‘이’로 나타나는 理一理分殊라 할 수 있지만, ‘기’의 입장에 서서 보면 통일성과 차별성이 모두 ‘기’로서 나타나는 氣一氣分殊가 성립되는 것이라 하여 氣一分殊說의 정당성을 지적한다. 이처럼 그는 ‘기일분수’와 ‘이일분수’를 동일한 실체를 해명하는 두 시각으로 규정함으로써 양자를 일치시키고 있다.077)任聖周에 있어서 ‘氣’와 ‘理’의 통합적 관점은 理氣一原分殊說 내지 一原分殊說로 규정하기도 한다(劉明鍾, 앞의 책, 1985, 179∼180쪽).

 이처럼 임성주는 우주적 존재의 통합된 전체 존재를 ‘기일분수’의 기일원론으로 밝히는데 관심을 기울였다. 이러한 면에서 그의 기철학은 唯氣論이라 일컬어지기도 한다.078)任聖周의 성리설을 唯氣論으로 규정하여, 奇正鎭의 唯理論과 상대화시키는 견해가 있다(裵宗鎬, 앞의 책 241∼261쪽). 이와 동시에 그는 본체로서의 ‘기’(天·天氣·浩氣·太虛)의 주체적 성격을「生意」으로 제시하여 ‘기’의 생성적 성격을 확인함으로써 본체와 작용이 일체를 이루는 것으로 파악하는 體用一源의 이해를 보이고 있다.079)任聖周,≪鹿門集≫권 19, 雜著 鹿廬雜識. 여기서 그가 제시하는「생의」의 개념은 ‘기’가 지닌 내재적 생성의지 내지 생성능력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기’의 외재적으로 나타난 작용에 대해 내재의 운동계기를 명확히 제시해 준다는 사실에서 의미가 있다. 이러한 그의 유기론적 기개념은 기일원론의 통일성에서는 서경덕의 경우보다 더욱 진보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임성주의 기개념에서도 ‘기’의 본체적 측면이 강조되고 있으며, 이러한 기개념은 구체적이고 경험적이라기보다는 여전히 관념적 보편존재의 성격을 지니는 것으로 보인다.

 임성주는 인간 이해에 있어서도 마음(心)과 성품(性)을 본체와 작용으로 이원화하는 것을 반대하고 心性一致說을 주장한다. 또한 본연과 기질로 성품을 이원화하는 것을 거부하고 性卽氣說을 내세움으로써 기질지성의 실재성을 확인한다. 이에 따라 인간과 사물의 성품이 기질의 분수에서 오는 다양성에 따라 서로 다른 것이라는 인물성상이론의 구체적 차별성을 중시하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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