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2. 양명학
  • 1) 양명학의 이해
  • (3) 조선양명학의 전개

(3) 조선양명학의 전개

 과연 17세기 조선성리학이 집대성되는 과정 속에서 조선양명학은 어떻게 진전되어 갔을까. 17세기에 들어서면 율곡계통을 잇는 김장생·송시열·송준길·이유태·유계 등이 나와 율곡의 ‘기발이승지’설에 입각한 조선성리학의 이해를 진전시켜 이의 보편성을 현실에 맞게 정립하여 가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노력이 토지를 소유하는데 기득권을 차지하지 못한 신세력인 율곡계의 서인을 대변하는 우암 송시열이 심을 기로 본다든지 하는 기중심설이 강화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와는 달리 우계 성혼계통을 잇는 장유·최명길·윤선거·윤증·박세당·최석정으로 이어지는 소론계통의 학자들은 현실에 맞는 보편성을 추구해 가는 과정에서, 기본적으로는 율곡의 ‘기발이승지’설을 따르지만 여기에 ‘심즉리’를 주장하는 양명학을 수용하여 조선식 양명학을 완성함으로써 기중심의 객관적인 율곡성리학을 바탕으로 한 심중심의 주관적인 성리철학을 확립하여 간다.

 이러한 소론의 양명학적 성리철학은 16세기 말에 남언경·이요 등이 수용하고, 芝峰 李睟光(1563∼1628), 蛟山 許筠(1569∼1618) 등을 거쳐 17세기 초에 장유(1587∼1638)가 신흠(1566∼1628), 최명길(1668∼1647) 등과 같이110)尹南漢,≪朝鮮時代의 陽明學硏究≫(集文堂, 1982). 조선식 양명학을 체계화하고, 白湖 尹鑴(1617∼1680), 南溪 朴世采(1631∼1695), 明齋 尹拯(1629∼1714), 西溪 朴世堂(1629∼1703) 등을 거쳐, 17세기 말에 최명길의 손자 明谷 崔錫鼎(1646∼1715)을 비롯한111)崔錫鼎,≪明谷集≫권 13, 書牘 與鄭士仰書 壬申(太學社, 1982). 소론계 학자들 사이에 논의되면서 18세기 초에는 霞谷 鄭齊斗(1649∼1736)에 의해 집대성되었다.112)鄭齊斗,≪霞谷全集≫권 2, 書 3 答崔汝和書錫鼎 癸酉.

 이러한 17세기 양명학의 전개과정을 먼저 윤휴의 인심도심설로부터 살펴보자.

人心道心을 程子는 天理와 人欲이라 생각하고, 朱子는 形氣에서 생하고 性命에서 발하는 것이라 생각하였으며 羅欽順은 已發과 未發이라 생각하였다. 학자는 이에 있어서 마땅히 귀결할 바를 궁구함으로써 그 공을 시험하되 진실로 혹 잘못 인식하여서 잡되게 이것을 시행하면 혼란이 일어날 것이다. 先儒가 생각하기를 이 세 가지 주장은 모두 지극한 이치(至理)이므로 하나도 폐지할 수 없다고 하였다. 대개 先賢이 道를 다스리는 미묘한 말씀은 후학이 마땅히 몸소 체험하여 이것을 묵묵히 깨달아 알아야 할 것이요, 그 뚜렷한 주장을 갑자기 취사할 바가 아니다(尹 鑴,≪白湖全書≫권 35, 雜書 人心道心圖 하).

 장유가 이미 체계를 세운 것처럼 나정암의 인심도심체용설을 수용하여 주자와 다른 견해를 표명하고 있다든지, 윤증이 박세당·조득증 등과 같이 장유의≪谿谷漫筆≫에 있는 양명학에 대한 견해를 이어받고 있다든지,113)劉明鍾, 앞의 책, 105쪽. 최석정이 정제두에게 보내는 편지에서≪계곡집≫을 읽고 양명학을 배우게 되었다는 것을 얘기하고 있다든지,114)崔錫鼎,≪明谷集≫권 13, 書牘 與鄭士仰書 壬申. 정제두가 최석정에게 답한 편지에서 “일찍이 谿谷의 陽明書를 보니, 그 글뜻과 견해가 완숙하였다. 그러므로 한 번 보고 그 요령을 얻지 않음이 없었다. 이에 매번 선배의 안목이 높음을 찬탄하였다”고115)鄭齊斗,≪霞谷全集≫권 2, 書 3 答崔汝和書錫鼎 癸酉. 하여 계곡의 저술을 보고 조선양명학을 배웠음을 얘기하고 있고, 그의 저술<存言>에서도≪谿谷集≫雜述에 있는 이목구비설을 따라116)張 維,≪谿谷集≫권 3, 雜書 雜述. 그의 이목구비설을 논술한 것에서도 하곡이 계곡을 이어받고 있음이 잘 나타나고 있다.117)鄭齊斗,≪霞谷全集≫권 8, 存言 상 耳目口鼻說 상·하.

 이처럼 소론계통의 학문경향은 최명길의 형 내길의 외손서이며, 최명길의 손자 최석정과 박세채에게 동문수학한 정제두에게 이어져 조선의 양명학파를 형성하게 되는데, 이러한 하곡의 양명학도 기본적으로는 ‘기발이승지’설이라는 조선성리학을 바탕으로 하는 장유의 조선양명학을 집대성하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면은 정제두의 이기관을 살펴보면 더욱 확연해진다. “發者는 氣이다(氣가 아니면 발할 바가 없다). 發하는 所以란 理다(理가 아니면 능히 발함이 없다)”118)鄭齊斗,≪霞谷全集≫권 8, 存言 상 生理虛勢說.라고 하여 장유와 마찬가지로 기본적으로 율곡의 이기일원론에 입각한 ‘기발이승지’설을 계승하고 있다. 따라서 그는 “形而上者를 道라 하고 形而下者를 器라 하는 것을 理가 氣 중에 있어 그 體가 극히 나누어 말하기 어려운 까닭에…”119)鄭齊斗,≪霞谷全集≫권 9, 存言 중.라고 하여 이가 기에 내재하고 이기는 둘로 나눌 수 없다는 이기일원론을 확실히 한다. 그러나 하곡은 계곡이 기의 체용을 설정하여 기의 체를 태허로 보아 태극에 대응시켰던 것처럼, 氣有體用論을 바탕으로 한 기의 체인 태허를 설정하면서 이에 더 나아가서 태허를 이로까지 봄으로써120)鄭齊斗,≪霞谷全集≫권 9, 存言 중 生理性體說. 이기일원론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이기관을 바탕으로 사단칠정을 말하는데 있어서도 칠정과 사단을 모두 情으로 보고 사단은 그 중에서 오로지 순수하고 선한 이 부분만을 가리켜 말한 것으로 상정하고 있는 데서 기본적으로 율곡의 ‘기발이승지’설에 입각한 사단칠정설을 따르고 있다.

七情이면서 理에 순하면 이것 또한 四端이 될 수 있고, 四端이면서 氣에 따른 즉 이것 또한 이른바 七情이 氣를 따른 것일 뿐이다. 이런 까닭에 性은 形의 本이고 理는 氣의 原이다…(鄭齊斗,≪霞谷全集≫권 8, 存言 상 四端七情說).

 그러나 하곡은 이기관에서 기본적으로는 율곡의 ‘기발이승지’설을 따르면서도 氣有體用·理有體用·心有體用설을 전개하여 기의 체 즉 이, 이의 용 즉 기, 정의 체 즉 성, 성의 용 즉 정의 논리를 펴고 있어, 사단칠정관계에서도 칠정은 성의 용인 정으로 사단은 정의 체인 성으로 파악하여 性情·理氣를 체용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情에서 발하는 것으로 喜怒哀樂을 말하면 性之情이요. 惻隱·羞惡를 말하면 情之性이라. 喜怒哀樂에 선한 것도 있고 불선한 것도 있는 것은 理도 있고 非理도 있는 까닭이요. 惻隱·羞惡가 모두 선한 것은 모두 理가 되는 까닭이다(鄭齊斗,≪霞谷全集≫권 8, 存言 상 四端七情說).

 앞에서와 같은 논리는 人心道心관계를 설명하는 데서도 같은 입장을 나타내고 있었다.

주자는 맹자의 본의가 본말과 경중을 가려 분수에 맞도록 한 데서 나오게 된 것임을 살피지 않고 도리어 이것을 聖學을 크게 나누는 한계로 삼고서 곧 虞書에 있는 人心과 道心을 구별한 것은 잘못이다. 대개 聖學을 專一하게 하고 오로지 이 두 가지에서 가리고 구별하는 것만을 중하게 여기며 다시 천리와 인욕을 구분하는 데는 정밀하게 안한다면 그 본말은 비록 얻었다고 하더라도 나누어서 둘로 한 것이매 그것은 근본을 잃은 것이니 자못 告子와 더불어 그 잃은 점에서는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다(鄭齊斗,≪霞谷全集≫권 9, 存言 중).

 따라서 하곡은 이는 항상 기에 내재해 있는 것이라고 하면서121)鄭齊斗,≪霞谷全集≫권 9, 存言 하. 人心道心, 四端七情, 未發之性 已發之情, 심의 동정을 본말의 차이 정도로 생각하여 이와 기의 차이처럼 둘로 나누는 것을 부정하고122)鄭齊斗,≪霞谷全集≫권 9, 存言 하. 심의 체용을 설정하여 심의 체를 이로 파악함으로써123)鄭齊斗,≪霞谷全集≫권 9, 存言 중. ‘심즉리’설을 주장하고 있는 장유의 조선양명학을 더욱 발전시키고 있었다.

 이와 같은 논리는 양명이 기일원론적 이기일체론을 바탕으로 심무체용론에 입각한 ‘심즉리’를 주장한 반면, 하곡은 율곡의 ‘기발이승지’설을 바탕으로 한 이기일원론으로 심유체용론에 입각한 ‘심즉리’를 주장하고 있다.124)松田弘,<朝鮮朝 陽明學의 特質과 그 論理構造>(≪韓國學報≫25, 一志社, 1981)에서 奇大升의 理氣合一論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하였는데, 이는 退溪·高峯의 四七·人道논쟁을 거쳐 栗谷의 氣發理乘之說에 입각한 朝鮮性理學이 성립하였고 이후 栗谷의 理氣觀을 바탕으로 霞谷·谿谷 등의 논리가 전개되고 있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다만 율곡이 모든 사물에 내재하는 이를 상정하여 ‘기발이승지’설을 전개하고 있는데 반해, 하곡은 계곡과 마찬가지로 태극의 구체적인 실체로 태허를 상정하여 모든 사물에서의 실질적인 본체를 상정하고 理의 여러 가지 표현을 이의 用인 氣로써 상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의 본체를 심으로 상정하여 주체성을 확립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하곡의 논리는 이라는 원칙을 끊임없이 추구하여 지켜서 감정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자제하게 하지만, 한편으로는 태극의 구체적인 실체를 태허로 상정하여 그것의 용과는 차별성을 상정하고, 이러한 체용론을 바탕으로 ‘심즉리’라는 주관적인 원칙을 상정하여 지켜감으로써 이기일원론내에서 기본적으로 體用의 이원론을 상정하는 보수성을 띠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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