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 13년(1876)의 강화도조약을 계기로 일본을 앞세워 밀려오기 시작한 서구문화는 기존의 전통과 질서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러한 시대상황 속에서 문화의 발전은 상대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놓였으며 서예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이 시기에는 추사체 등 종래의 조선서풍을 이어가거나 청대의 서풍을 적극 수용하는 등 혼잡한 양상을 보였는데, 이를 토대로 시대정신을 뚜렷하게 표출한 서풍은 별로 나타나지 않았다. 이러한 현상은 조선 후기 이래 수용폭이 넓어진 청의 서예가 개항 이후로 더욱 확대되면서 영향력을 강하게 미쳤기 때문일 것이다. 당시 중국 고대의 전예금석문을 임모하거나 이를 倣作하는 등 비학의 학습방법이 널리 퍼지면서 篆隷에서는 鄧石如·葉志詵·何紹基·吳大澂·吳昌碩 등의 비학서풍이 유행하였고, 楷行에서는 안진경체에 바탕한 유용·하소기 등이나 옹방강류의 淸風이 널리 수용되었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서예가들을 학습연원이나 성향에 따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⁷²³⁾개화기의 서예를 살필 수 있는 글은 아래와 같다.
韓國民族美術硏究所 編,≪澗松文華≫15, 書藝 Ⅳ 近代(1978).
―――,≪澗松文華≫33, 書藝 Ⅷ 近代 Ⅱ(1987).
예술의전당 編,≪韓國書藝一百年(1848∼1948)≫(1988).
―――,≪朝鮮後期書藝展≫(1990).

　먼저 김정희의 말년 제자인 吳慶錫·金奭準·丁學敎 등은 스승을 따라 예서에 뛰어났다. 그 중 역관으로 활약했던 亦梅 吳慶錫(1831∼1879)은 예서에서 禮器碑를, 해행에서 안진경체를 배웠고,≪三韓金石錄≫을 저술하여 스승의 금석학을 계승하였으며, 小棠 金奭準(1831∼1915)은 안진경체와 北朝隷法에서, 蒙人 丁學敎(1832∼1914)는 예서와 행서에서 두각을 나타냈다(＜사진 14＞). 또한 오경석의 아들 葦滄 吳世昌(1864∼1953)은 전서에서 높은 경지를 이루었고, 정학교의 아들 又香 丁大有(1852∼1927)는 부친을 이어 표일한 운필과 독특한 획법으로 예행에서 가풍을 이어갔다. 이 밖에 방희용의 아들 方漢翼(1833∼?)도 예행을 잘하였고, 흥선대원군의 제자로 묵란에 뛰어났던 小湖 金應元(1855∼1921)은 안진경·하소기를 혼융한 행서풍을 구사하였다.

　권문세가의 후예들인 石雲 權東壽(1842∼?)는 청의 王維珍의 행서를 따랐으며 전서도 잘하였고, 海士 金聲根(1835∼1918)은 미불체를 소화하여 자가풍을 이루었으며, 東農 金嘉鎭(1846∼1922)은 처음 원교체를 배우다가 뒤에 미불·동기창체를 바탕으로 유연한 서풍을 이루었고(＜사진 15＞), 石村 尹用求(1853∼1936)는 거친 필획으로 개성적 서풍을 보이기도 하였다.

　이 밖의 玄采(1856∼1925)는 안진경체를 減筆化한 독특한 서풍을 보였으며, 矩堂 兪吉濬(1856∼1914)은 六朝楷書를 가미한 행서에 뛰어났다. 또 화원이었던 心田 安中植(1861∼1919)도 전예에서 일가견을 보였으며, 묵죽화에 뛰어났던 趙周昇(1854∼?)·徐丙五(1862∼1935) 등도 안진경체를 바탕으로 자가풍을 이루었고, 초서를 잘 썼던 愚堂 兪昌煥(1870∼1935)도 전예에 뛰어났다. 또한 전서의 획법으로 寫蘭에 뛰어났던 芸楣 閔泳翊(1860∼1914)은 상해에 머물면서 오창석 등 중국서화가들과 교유하였는데 서풍은 안진경체를 배워 웅건한 기풍을 이루었다. 海岡 金圭鎭(1868∼1933)도 중국에서 서화를 공부한 관계로 중국적 취향이 짙은 묵죽과 大字書에 뛰어났다.

　한편 개화파로서 일본에 망명하여 머물렀던 金玉均(1851∼1894)·朴泳孝(1861∼1939)·黃鐵(1864∼1930) 등의 글씨는 일본 근대서예와의 관련을 보이고 있으며, 국내 개화파로서 일제강점기에 활약한 惺堂 金敦熙(1871∼1936)는 안진경체를 배우다가 노년에 黃庭堅 행서를 배워 일가를 이루었는데 특히 蒼勁整齊한 그의 예서는 후대의 서예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