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조선 시대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4. 무용·체육 및 연극
  • 2) 체육
  • (5) 유상·등고 기타

(5) 유상·등고 기타

 ≪京都雜志≫에 있는 遊賞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弼雲臺의 살구꽃, 北屯의 복사꽃, 동대문 밖의 버들, 天然亭의 연꽃, 三淸洞·蕩春臺의 水石, 산보객이 모두 여기로 몰린다. 서울 城의 주위 40리를 하루 동안에 두루 돌아다니고, 성 내외의 꽃과 버들을 다 본 사람을 제일로 쳤다. 그리하여 꼭두새벽에 오르기 시작하여 해질 무렵에 다 마친다. 그러나 산길이 험하여 포기하고 돌아오는 자도 있다(柳得恭,≪京都雜志≫권 1, 風俗 遊賞).

 이것은 분명히 봄을 맞이한 맛을 보기 위한 나들이를 말하는 것이다. 내용으로 보아 어떤 공식적인 대회라고 할 수 없지만 제일로 친다는 말은 경쟁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걷거나 뛰어 험한 산길을 돌아오는 것은 꽃감상을 위한 봄나들이로만 취급할 수 없는 것이고, 험하여 포기하는 자가 있다 함은 대단한 체력을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어느 집단이 서로들 경쟁을 하였을 것으로 추측되며, 이는 오늘날의 등산대회를 짐작케 하는 활동인 것이다.

 한편 가을에는 등산을 거거나 단풍놀이를 즐기는 행사를 가졌다.

서울 풍속에 남산과 북악산에서 이 날 마시고 먹으며 즐긴다. 이는 登高의 옛 풍습을 답습한 것이다. 淸楓溪·後凋堂·南漢山·北漢山·道峯山·水落山 등이 단풍 구경하는 데 좋다(洪錫謨,≪東國歲時記≫ 9월 9일).

 이와 같이 조선시대에는 절기를 이용한 특별한 활동을 하였는 바, 이는 오늘날 여가활동의 방법으로 일반화되어 있는 활동과 뜻을 같이하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이 밖에도 예로부터 내려오던 돌싸움(石戰)·줄다리기·고싸움·가마싸움·동채싸움 등이 촌락대항의 형식으로 특정한 지역과 절기에 시행되었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네(추천)·널뛰기(板跳)·줄넘기(跳索) 등은 부녀자와 여자아이들을 중심으로, 竹馬·자치기·제기차기(蹴雉毬)·팽이(氷毬子) 등은 남자아이들 사이에서 즐겨 놀았다.

 이상으로 조선 후기의 체육적 놀이행사에 대하여 기록을 중심으로 정리해 보았다. 그러나 당시의 행사를 파악함에 있어서 사료의 미비로 파악치 못한 것도 존재하였을 것으로 생각되며 또한 사료의 해석상 문제를 내포하고 있기는 하지만 다음의 몇 가지 사실을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정월 보름의 석전, 5월 단오의 그네와 씨름, 8월 추석의 의성 가마싸움 등과 같이 많은 놀이들이 절기에 맞추어 실시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절기에 맞추어 생활의 변화를 통하여 힘찬 내일의 생산활동을 준비하는 레크리에이션적 가치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둘째, 후기로 오면서 민중의 생활과 의식의 변화에 따라 놀이의 양적·질적 확대와 규모가 확대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조선 초·중기에 비하여 놀이에 대한 가치인식이 변화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셋째, 놀이의 내용이나 명칭과 관련하여 질병의 극복(예:줄넘기) 또는 풍농의 기원(대부분의 집단놀이)과 같은 주술과 결합하여 의미있는 행사로 정형화되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점이 원인이 되어 매년 같은 절기에 특정한 형식으로 반복되어 놀이문화의 한 단면을 형성하였다고 할 수 있다.

<林榮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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