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1. 19세기 중반기의 동아시아 정세
  • 2) 서세 동점과 동아시아 제국
  • (4) 화란과 영국의 진출

(4) 화란과 영국의 진출

 16세기 유럽의 동방진출을 주도한 것은 포르투갈과 스페인이었다. 17세기로 접어들면서 이들을 제치고 화란과 영국이 선두에 나섰다. 원래 화란은 스페인의 영토였으나 종교개혁의 결과 개신교도들이 연합하여 1581년에 스페인에서 독립한 국가이다. 영국의 동방진출은 초기에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해군력의 견제를 받아 활발하지 못했으나 1588년에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하고 유럽에서 동방과 미주 대륙에 이르는 전 해역에서 제해권을 장악하였다. 이와 함께 포르투갈, 스페인 양국이 로마교황으로부터 받았던 해외영토와 무역의 독점권은 유명무실하게 되었다.

 개신교 공화국으로 출발한 화란은 동방진출에서 기독교 포교나 식민지 획득에는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았고 상업활동에 주력하였다. 왕실이나 정부가 아니라 상인들이 공동 출자하여 동방무역을 위한 항해를 조직하여 그때그때 이익을 분배하는 방식으로 시작하였으나 후에는 각자 고정적인 출자금을 내어 상설 무역기구를 조직하여 지속적인 활동을 전개했다. 이것이 근대 주식회사의 효시가 되었다. 이와 같이 화란상인들은 해외진출에서 당시 복잡한 유럽의 종교분쟁이나 왕실이나 국가간의 경쟁에 휩쓸려들지 않고 오로지 상업활동에만 전념했다. 또 화란은 이베리아반도와는 달리 좋은 船材가 많이 생산되는 발트海 연안에 가까운 곳에 위치하여 대양항해를 위한 조선업을 발달시킬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유리한 조건하에 전개된 화란의 동방진출은 1602년에 창설된 동인도회사가 주도하였다.

 화란 동인도회사는 해외식민지 획득은 원칙적으로 원치 않았으나 본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광대한 지역의 원주민들을 통제하고 유럽인 경쟁자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불가피하게 전략적 요지에 기지를 건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먼저 아프리카 남단 希望峰에 식민지를 건설한 다음 1619년에는 바타비아(Batavia)를 동방경영 본거지로 삼았다. 이리하여 본국을 떠난 화란상선들은 희망봉 기지에서 보급을 받은 후 남 인도양을 동으로 횡단하여 바타비아로 직행하는 신항로를 개척하여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압도하고 광대한 인도네시아 열도를 지배하게 되었다. 이에 앞서 1609년에는 일본 쿠슈에 상관을 설치하였다. 1624년에는 명조 말기의 중국 정세가 불안한 틈을 타서 대만 북부를 점령하여 1661년에 축출될 때까지 이곳에서 중국 본토에서 건너오는 상인들과 교역하였다. 이와 같이 화란은 17세기 전 시기를 통하여 동방무역에서 우위를 유지하였다. 그후 영국에 주도권을 뺏기게 되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300년간 세계 유수의 식민지제국으로 남아 있었다.017)17∼18세기 和蘭의 동방진출에 관한 대표적 연구에는 C. R. Boxer, The Dutch Seabome Empire, 1600∼1800(London:Hutchinson, 1965)가 있다.

 영국이 16세기초에 해외진출을 개시하였을 때는 주로 북미대륙 식민사업에 주력하였다. 그러나 화란이 동방무역에서 막대한 이윤을 얻는 것을 보자 이 분야에 진출하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한 후 1600년에 동인도회사를 설립했으나 그 규모는 2년 후에 설립된 화란회사보다 적어서 동남아지역에서는 그 세력에 대항하지 못하였다. 1612년에 처음으로 인도 서해안의 스랫트(Surat)에 상관을 설치한 다음 이어 마드래스(Madras)와 봄베이(Bombay)에 항만을 구축하고 1633년에는 캘컷다(Calcutta)에 기지를 건설하여 벵갈(Bengal) 경영을 시작하였다. 이와 같이 초기에 영국은 주로 인도무역에 종사하였다. 영국 동인도회사가 중국무역을 시작한 것은 17세기 말엽이었는데 厦門·廣州 등지에서 중국산 견직물과 도자기를 수입했다.

 18세기로 접어들면서 영국은 화란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이 배후에는 영국 국내경제의 발전이 있었다. 영국은 세계에서 산업혁명을 최초로 이룬 국가이다. 영국의 산업혁명은 18세기 후반에 시작하여 19세기초에는 모방직공업을 중심으로 본격적 단계에 들어갔다. 국내산업의 뒷받침 없이 단순한 중계무역에만 종사하는 화란과는 달리 국내에 산업기지를 갖게된 영국은 경제력과 군사력이 급속히 성장하여 해외 식민지획득에서 경쟁국들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18세기 중엽 오스트리아(Austria) 왕위계승문제로 영국과 프랑스가 전쟁관계에 들어가자 인도에서 양국간에 군사적 충돌이 일어났다. 1757년 푸렛시(Plassey) 대전에서 영국이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게 되어 프랑스는 인도에서 축출되고 영국의 인도지배가 확립되었다. 인도를 동방경략의 본거지로 만든 영국은 19세기초에는 말레이(馬來) 半島를 장악하여 동방무역에서 모든 유럽국가를 주도하였으며 특히 중국무역에서는 이들을 완전히 압도하게 되었다.018)영국 동인도회사와 그 동방진출 역사에 관한 근래의 연구로는 John Keay, The Honorable Company:A History of the English East India Company(New York, N. Y.:Macmillan Publishing Company, 199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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