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1. 19세기 중반기의 동아시아 정세
  • 2) 서세 동점과 동아시아 제국
  • (5) 중영 무역의 변천:차에서 아편으로

(5) 중영 무역의 변천:차에서 아편으로

 초기에 광주에서 유럽으로 수출된 중국 상품은 주로 견직물과 도자기였으나 17세기 후반부터 중국산 차가 수출되기 시작했다. 유럽 각국, 특히 영국의 상류사회에서 차를 애용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중엽이었는데 이 때는 주로 화란을 통하여 수입한 것이었다. 그후 청조의 해금이 해제되고 광동무역제도가 확립되자 영국 동인도회사도 이에 참가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영국 내 차의 판매가격이 대폭으로 인하되어 18세기초부터 국내 차 소비가 크게 증가하고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차 수입이 견직물을 능가하게 되었으며 1830년대부터는 중국에서 수입되는 상품 중 大宗이 되었다. 이와 함께 차에 대한 관세는 정부의 중요한 재원이 되었다.

 영국은 1688년의 名譽革命 이후 지속적인 해외팽창활동을 전개하여 세계 각처에서 막대한 군사비가 필요하게 되었다. 이를 조달하기 위하여 차 관세를 대폭 인상하게 되어 17세기 후반에는 세율이 100%에 가깝게 되고 그 총액은 매년 100만 파운드를 초과하였다. 이와 같은 高關稅는 불가피하게 국민의 反稅 감정을 증폭시켜 화란을 비롯한 유럽 각국으로부터 대규모의 차의 밀수입을 초래하였다. 결국 영국의 차 소비량 중 영국 동인도회사가 수입한 것은 30∼40%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유럽에서 밀수입한 것이었다. 영국에서는 차 밀수입을 위해 매년 약 200만 파운드의 銀貨가 유출되는 형편이었다. 한편 차에 대한 高 관세를 반대하여 일어난 北美 植民地의 反稅 운동은 독립운동으로 발전하여 급기야 1776년에 13개 植民領이 연합하여 독립을 선포하였다. 이리하여 동인도회사는 막대한 이윤을 상실하였으며 영국은 모든 식민지 중 가장 소중한 북미 식민지를 영원히 상실하였다.

 이와 같은 전무후무의 역사적 실패에서 교훈을 얻은 영국은 1784년 과감한 減稅정책을 행하였다. 이해 8월 英國議會는 차 관세를 119%에서 12.5%로 대폭 인하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 목적은 물론 동인도회사의 이윤을 확보하고 영국정부의 세입을 증대시키는 것이었으나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중국 무역을 확대시켜 북미대륙에서 상실한 경제적 손실을 동방무역에서 만회하자는 것이었다. 영국의 감세정책은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즉 1785년 감세법 시행을 계기로 유럽 각국의 영국에 대한 차의 밀수출은 완전히 근절되고 중국에서 유럽으로 수출되는 차의 30% 정도를 취급했던 영국 동인도회사는 그후 10년 내에 70%를 차지하게 되었다. 프랑스 혁명과 이로 인하여 야기된 유럽의 대 전란은 이 추세에 박차를 가하여 19세기 초두에는 중국에서 유럽으로 수출되는 차의 90% 이상을 영국이 취급하게 되었다. 이와 함께 광동무역에서 영국은 유럽제국을 결정적으로 압도하여 전 무역량의 80% 전후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 결과 1785년 감세법이 시행되기 전 10년간 동인도회사가 중국 차 수입에서 얻은 이익은 연 평균 18만 3천 파운드 정도였는데 그후 10년간에는 매년 58만 파운드를 넘었으며 1793년 이후에는 매년 70만 파운드를 초과하였다. 이와 함께 매년 약 17만 파운드로 예측되었던 영국정부 茶稅 수입은 30만 파운드를 초과하였다.

 그러나 이 같은 성공은 증가하는 차 수입에 필요한 자금조달 문제를 초래하였다. 여기에는 두 가지 원인이 있었는데 하나는 중국무역의 일방성이고 또 하나는 당시 국제무역의 決濟慣行이었다.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中西 무역은 무역 쌍방이 다같이 원해서 시작된 것이 아니고 주로 서방제국의 일방적인 요구에 따라 시작된 것이다. 광동무역에서 중국의 일방적인 수출초과는 매년 증가할 뿐이었다. 당시 국제무역은 모든 거래에서 은화에 의한 현금결제가 관행이었다. 따라서 매년 막대한 은화가 중국으로 흘러 들어갔고 서방 무역국들은 이에 필요한 은화 조달에 고심하였다.

 이와 같은 무역의 불균형을 시정하기 위해 영국은 자국 상품을 중국에 수출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영국에서는 17세기부터 모방직 공업이 국가경제의 基軸을 이루게 되고 장차 다가올 산업혁명의 기반이 되었다. 자국산 모직물 시장을 개척하기 위하여 1693년에 영국의회는 동인도회사에 동방무역 독점권을 부여하는 대가로 매년 10만 파운드의 영국산 모직물을 동방제국에 수출할 의무룰 부과하였다. 그러나 기후가 溫暖多濕한 인도, 중국남부, 일본 등지에서 모직물은 거의 팔리지 않았다. 그후 중국 洋商들로 하여금 차를 파는 대가로 일정량의 영국산 모직물을 사도록 하는 방법으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으나 영국의 연간 대 중국 수출총액은 중국의 대 영국 수출총액의 1/3에도 못 미쳤다. 1783년 미국 독립전쟁이 끝난 후 신대륙에서 은화조달이 용이하게 되자 영국 동인도회사는 차를 위시한 중국상품 수입을 위하여 매년 200만 파운드의 은화를 중국으로 실어갔다. 이에 인도-중국간의 지방무역에 종사하는 상인들이 송금 목적으로 회사에 불입하는 150만 파운드를 합치면 실로 350만 파운드의 은화가 매년 영국에서 중국으로 유입되었던 것이다.

 이때 영국의 산업혁명이 가속도로 진행되고 있어 국내 산업투자에 많은 자금이 필요했다. 국내 기업인들은 동인도회사가 매년 대량의 은화를 해외로 반출하는 것은 영국의 산품의 해외시장 개척을 소홀히 하고 국가이익보다 회사이익만을 추구하는 행위라고 비난 공격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인도회사는 중국무역의 내용 개선을 위하여 1787년에 육군중령 카트카트(Cathcart)를 단장으로 한 사절단을 중국에 파견하였다. 그러나 이 사절단은 중국으로 가는 도중 단장의 사망으로 중도에서 철수하였다. 다음에 파견된 것이 매카트니(Sir George Macartney) 사절단이었다.

 외교와 식민지통치에서 요직을 역임한 죠지 매카트니卿이 대규모의 사절단을 이끌고 중국방문 길에 오른 것은 1792년 9월이었다. 이때 중영 간에는 광동무역뿐만 아니라 영국상인들에 대한 중국상인들의 부채, 청조 당국의 외국인에 대한 규제, 그리고 특히 광주에 거주하는 영국인에 대한 재판권 등 懸案이 산적해 있었다. 사절단에 주어진 訓令의 골자는 다음과 같다.

① 중국내에 차와 견사생산지와 모직물 소비지에 가까운 지역 한 두 곳을 영국에 割讓하고 그곳에서 영국인의 거주권과 치외법권을 인정할 것. ② 광주외에 수개 항을 개방할 것. ③ 북경에 영국 공사가 상주하는 것을 허용할 것. ④ 광주에서 영국인에 대한 부당한 규제를 폐지할 것.

 이를 요약하면 영국과 대등하고 정상적인 외교관계를 맺고 영국과 그 식민지 산물에 대하여 중국시장을 개방하라는 것이었다. 이는 산업혁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어 국력이 크게 성장한 영국의 자부심을 반영한 것이었다. 그러나 乾隆皇帝 치하에서 사상 미증유의 번영을 누리고 있던 중국이 이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매카트니 일행이 天津의 外港인 大沽에 도착한 것은 1793년 7월이었다. 이때 건륭황제는 피서차 熱河離宮에 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매카트니는 그곳으로 가서 9월 14일 황제에 알현하였다. 청조는 관례에 따라 사절단을 ‘進貢使’로 간주하고 때마침 건륭황제 팔순탄신이었기 때문에 이를 경축하는 것이 그 사명이라고 생각했다. 그후 영국 왕의 서한을 상세히 검토한 결과 아연실색하여 그의 모든 요구를 거절하고 조속히 귀국시키도록 하였다. 매카트니는 교섭을 시도했으나 청조 당국은 이를 일축하고 10월 7일 북경을 떠나게 하였다.

 이때 건륭황제가 영국왕 죠지 3세에 보낸 ‘勅書’는 당시 청조 통치계급의 중화사상과 해외무역에 대한 태도를 여실히 보여주는 흥미 있는 문서이다. 영국의 요구를 모두 거절한 다음 중국은 물산이 풍부하여 ‘外夷’의 物貨가 필요치 않으나 중국의 차와 자기와 견사는 서방인들의 필수품이니 특별히 은혜를 베풀어 이를 팔아주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영국 사신이 定例에 없는 많은 것을 청하였는데 이는 遠人에 은혜를 加하고 四夷를 撫育하는 道에 크게 어긋나는 것이라고 꾸짖은 다음 ‘天朝가 萬國을 一視同仁’으로 다스리는 것이니 영국만의 청을 들어줄 수 없다고 잘라 말하였다. 이리하여 광동무역 제도를 개혁하고 중국과 대등한 외교관계를 수립하기 위한 영국의 첫 시도는 완전히 실패하였다.019)매카트니의 사절단에 관하여는 J. L. Crammer-Bying, "Lord Macartney's Embassy to Peking in 1693," Journal of Oriental Studies, Ⅳ:1-2(1957∼58), pp.117∼158 참조

 동인도회사의 광동무역에 필요한 은화조달 문제의 해결책으로 등장한 것이 아편무역이었다. 아편이 중국에서 처음으로 마약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초였다고 한다. 이때 화란인들에 의하여 臺灣, 福建省 등지에 유입되었는데 청초에 해금이 해제되자 연해지방에 아편 유입이 증가했으리라고 추측된다. 청조가 최초로 아편 禁令을 내린 것은 1729년이었는데 영국 동인도회사도 이 금령을 존중하여 회사원이 아편을 밀수하는 것을 여러 차례 경고한 적이 있다. 그러나 1757년 동인도회사가 인도, 벵갈 지방의 지배권을 장악하게 되자 사정이 일변하였다. 동방무역 독점권뿐만 아니라 벵갈 통치권까지 장악하게 되자 회사의 재정부담이 크게 증가하여 재원확보에 고심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1773년에 이 지방의 중요한 물산인 아편의 專賣제도를 실시하고 1797년에는 그 생산관리까지 하게 되어 아편의 해외시장 개척에 나서게 되었다. 즉 아편무역에 의하여 벵갈 농민들의 수입을 보장하고 회사의 벵갈 통치자금을 확보하며 중국 상품 수입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 문자 그대로 一石三鳥의 효과를 노린 것이었다. 처음에는 회사가 소량을 직접 중국에 반입하는 것을 시도한 적이 있었으나 청조의 금령을 고려하여 인도-동남아시아-중국무역에 종사하는 이른바 ‘地方貿易’업자들에 이를 일임키로 하였다. 그러나 회사는 계속 벵갈에서 아편전매권을 장악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지방무역 업자가 중국에서 벌어들인 모든 은화는 이를 회사에 기탁하고 그에 해당하는 금액을 인도나 영국에서 영국 통화로 환불받도록 하여 은화 조달에 만전을 기하였다.

 이와 함께 매년 1,000상자(1상자=100斤=133파운드) 전후였던 중국에 대한 인도의 아편 밀수출이 18세기말에는 일약 4,000여 상자로 증가하였다. 그후 1820년까지는 대략 이 수준에 머물다가 다시 상승하기 시작하여 1826년에는 10,000상자로 불어나고, 1830년대 초에는 20,000상자를 초과했으며, 1835년에는 35,000상자, 1838년에는 40,000상자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한편 아편 가격은 상자 당 평균 600∼700달러로부터 약 3배로 상승하여 2,000달러를 넘게 되고 이를 위하여 지출하는 은화는 3배로 증가되었다. 청조의 禁烟令은 그대로 남아 있었으나 아편은 공공연하게 반입되었고 이에 따라 막대한 은화가 중국에서 유출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근세 초기 서방무역이 시작된 후 200년에 걸쳐 지속되었던 중국의 수출초과가 19세기 초부터 줄기 시작하여 아편밀수가 급격히 증가한 1820년대 중엽에는 완전히 수입초과로 역전하였다. 이에 따라 매년 은화의 해외유출이 격증하고 중국경제는 크나큰 타격을 받게 되었다.

 이리하여 아편무역은 영국의 해외무역과 인도통치를 위하여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영국 식민지 통치 초기의 인도에서는 양질의 토산 면직물이 생산되고 그 일부는 영국에 수출되어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영국산업의 발전과 함께 면방직 공업은 새로 개발된 기계방직 기술에 힘입어 눈부신 발달을 보게 되고 19세기 초두에는 과잉생산 문제까지 발생하였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인도에 판로를 개척하여 값싼 면직물을 대량으로 수출하게 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전통적인 手紡織 기술에 의존하고 있던 인도 면방직 공업은 거의 전멸상태에 빠졌다. 이에 동인도회사는 인도 농민들에 아편재배를 권장하고 전 생산량을 매입하여 이를 중국에 수출하여 그들이 수입하는 영국산 면직물의 대금을 치를 수 있도록 하였다. 이리하여 아편무역은 인도농민의 수입보장, 인도 통치를 위한 재원확보, 중국 상품 수입을 위한 은화조달뿐만 아니라, 영국 면방직 공업의 판로 확보를 위해서 불가결하게 되었다.020)17세기 초부터 아편전쟁 발발 직전까지 中英간이 아편무역 발전에 관하여는 佐佐木正哉,<英國と中國:アヘン戰爭ヘの過程>(榎一雄편, 앞의 책), 358∼537쪽 참조.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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