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2. 조선중국상민수륙무역장정과 조·청관계의 변질
  • 2) 조선중국상민수륙무역장정 체결과 조·청관계의 변질
  • (2)<조선중국상민수륙무역장정>체결과 조·청관계의 변질

(2)<조선중국상민수륙무역장정>체결과 조·청관계의 변질

임오군변 이후 고종은 정치적 안정을 도모하고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향후 조선의 정치개혁방안 즉 ‘善後事宜六條’를 만들어 1882년 7월 16일 청국파견 사신으로 임명된 陳奏正使 趙寧夏, 副使 金弘集, 從事官 李祖淵 등을 통해 이홍장에게 보내고 이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699)≪淸季中日韓關係史料≫3, #554, 光緖 8년 8월 8일, 910∼917a쪽. 安民志·用人才·整軍制·利財用·變律例·擴商務의 여섯 가지 조목으로 되어 있는 ‘선후사의육조’는 조선정부가 추진하고자 하는 개화정책의 방향을 예시한 것이었다. 조선정부는 개화정책의 방향을 정립했지만 이를 추진할 수 있는 재정과 시설, 인재 등이 부족함을 절감했다. 이에 따라 임오군변이 진압된 직후 바로 陳奏使行 편에 이 개혁방안에 대한 자문을 구하면서 청의 원조를 요청하게 되었다.

1882년 8월 6일 진주사 조영하는 이홍장과 ‘선후사의육조’에 대해 문답하는 중에 군변 이전에 조선과 수륙통상조약을 체결하기로 되어 있으니 이에 대해 상론할 것을 제의했다. 그러자 이홍장은 馬建忠과 상의해서 시행하라고 대답했다.700)≪淸季中日韓關係史料≫3, #554-(2), 光緖 8년 8월 8일, 914b쪽. 마건충은 조미조약 조인 때와 그 후 조영·조독조약 조인 때에 입회했고, 임오군변 때에도 조선에 파견되는 등 청의 洋務派관료 가운데 제1급의 조선통으로서 이홍장뿐이 아니라 조선측에서도 신뢰가 두터운 사람이었다.701) 秋月望,<朝中間の三貿易章程の締結經緯>(≪朝鮮學報≫115, 1991), 106쪽.

조선정부는 청과의 통상협의를 위해 1882년 8월 12일 문의관 어윤중을 다시 천진에 파견했다. 8월 17일 천진에 도착한 어윤중은 다음날 진주사로 간 조영하 일행과 합류하여 마건충·주복·이홍장 등을 차례로 만나고, 8월 22일부터 본격적으로 통상장정에 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702) 魚允中,≪從政年表≫, 고종 19년 8월 17∼22일. 조선과의 장정체결을 주도했던 이홍장의 기본방침은 속방과의 교역은 다른 대등한 나라와 같을 수 없다는 만국공법을 참작하여―장정체결을 통해 조선과 청 양국이 서로 이익을 추구한다고 하지만 속국과 교섭하는 체통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藩服을 지키면서 이권을 확장하는 것이었다.703)≪淸季中日韓關係史料≫3, #594, 光緖 8년 8월 30일, 979a쪽 및 #596, 光緖 8년 9월 1일, 987a쪽. 한편 어윤중은 청측에서 제시한 장정 초안을 청측 대표인 마건충과 주복과 논의하는 가운데 장정이 공법을 참작하여 규정되었지만 조선과 청 사이의 사대관계에 입각한 규정내용이 구미제국에 원용될 염려가 있다는 이유로 장정을 수정할 것을 요구했다. 어윤중이 수정 요구한 항목은 개항장에서의 재판관할권 문제와 양국 연안에서의 어채문제, 漢城開棧 및 內地採辦문제, 紅蔘稅率문제 등이었다.704) 金鍾圓,<朝·中商民水陸貿易章程에 대하여>(≪歷史學報≫32, 1966), 152쪽.

어윤중에 의해 수정 요구된 4개 항목을 검토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서로 파견하기로 한 상무위원의 재판관할권문제이다. 청의 상무위원은 조선에서 영사재판권을 행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피고가 조선인이고 청인이 원고가 되는 경우에도 조선관리와 같이 심리에 참가하도록 규정되었다. 한편 청국내에서는 조선상무위원의 영사재판권은 인정되지 않았다. 財産罪犯은 조선 상민이 원고이건 피고이건 가리지 않고 청국 지방관의 관할하에서 심리되고, 조선상무위원은 심리결과에 대해 보고를 받을 뿐이었다. 이에 대해 어윤중은 상무위원과 지방관에게 대등한 심판권을 주어 공평하게 처리하도록 개정하자고 요구했다.

둘째, 장정 제3조에 규정되어 있는 양국 상선의 해로통상과 난파선박의 구원의무, 쌍방의 연해해역에서 어선조업의 공인 조항이다. 여기서 어윤중은 양국 어선의 조업조항을 조문 속에서 삭제할 것을 요구했다. 그 이유의 하나는 일본이 이 조항을 전례로 일본어선의 조선연안에서의 조업인가를 요구할 것이 염려된다는 것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청국어선이 조선연안에 진출함으로써 밀무역이 증대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셋째, 한성개잔 및 양국 상인의 상대국에서의 상업활동 즉 내지채판에 관한 것이다. 어윤중은 조선의 경제가 취약함을 이유로 한성개잔 및 내지채판을 삭제할 것을 요구했다.

넷째, 제6조에 들어 있는 홍삼세율문제로 홍삼은 조선이 청에 수출하는 최대품목이었다. 청의 초안에서는 그 세율이 30%로 규정되었다. 어윤중은 조선에서 이미 홍삼의 반출량을 규제하고 수출세를 징집하는 등의 조치가 있는데 여기에 고율의 수입세가 부가되면 유통이 막힐 뿐 아니라 밀매가 성행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세율인하를 요구했다.

어윤중이 다른 나라의 원용을 두려워해 제시한 4개 수정 항목 중 홍삼세율문제만은 청측이 약간 양보하고 나머지 세 항목은 청측에 의해 거절되었다. 청측은 공법 내에 藩屬朝貢之國에 관계되는 무역왕래의 한계를 정한 것은 조선과 청 사이에 통용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다른 나라와 정한 조약은 양국이 비준한 후에 시행할 수 있는 조약이지만 조선과 청 사이의 장정은 청 조정이 특별히 윤준해서 쌍방이 서로 맺은 約章이고 상하가 정한 조규로서 명칭이 ‘條約’과 ‘章程’으로 다르듯이 실제의 내용도 같지 않아, 조선이 청과 맺은 장정과 그 밖의 다른 나라와 체결한 조약에는 차이가 있기 마련이라고 반박했다.705)≪淸季中日韓關係史料≫3, #594-(3), 光緖 8년 8월 30일, 984쪽. 이것은 청이 조·청 사이에 체결된 장정을 근대 국제법적인 세계질서에 기초한 조약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성질의 것으로 규정하고 있음을 나타낸 것이었다. 이어서 청측은 장정이 서로 평등한 예를 하는 다른 나라와의 조약과 달라 다른 나라가 원용할 것을 염려하여 수정을 요구하는 것은, 조선이 청과의 체제에 대항하고자 하는 것으로서 단지 일본을 두려워하고 청은 두려워하지 않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협박했다. 그리고 다른 나라가 장정을 원용할 것이 염려가 된다면 장정에 속방조관을 넣을 것을 제안했다.706)≪淸季中日韓關係史料≫3, #594-(3), 光緖 8년 8월 30일, 986a쪽. 청측이 제시한 장정 초안에는 속방조항이 없었다.

청측이 속방조관 삽입을 조선측에 종용한 것은 속방조항을 명문화하여 다른 나라에게 주지시키고자 한 이홍장의 계책이었다. 임오군변이 발발하자 일본주재 청국공사 여서창이 군변이 평정된 후 조선의 국사를 청이 통할하도록 하자는 의견을 내는 등 청의 대조선정책에서 강경론을 주장하는 세력이 있었다.707)≪淸季中日韓關係史料≫2, #486, 光緖 8년 6월 26일, 773쪽. 하지만 이홍장은 외교적인 분쟁을 초래할 소지가 있고, 청의 국내사정을 고려한 끝에 시의가 적절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회의적이었다.708)≪淸季中日韓關係史料≫3, #624, 光緖 8년 10월 13일, 1032b∼1033a쪽. 이홍장은 장정체결 당시 이런 대조선 강경론을 지양하면서 속방조항을 넣어 간접적으로 조선이 청의 만국공법적인 속국이라는 것을 언명하고 이를 각국으로부터 인정받고자 한 것이었다.709) 具仙姬, 앞의 책, 86쪽. 속방조항에 대해서 어윤중이 반대하지 않은 것은 조미조약체결 당시 청이 조선에 강요한 속방조항을 김윤식이 그대로 수긍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이었다.710) 金允植,≪陰晴史≫, 고종 18년 12월 27일. 김윤식은 조미조약체결 당시 청에 있으면서 이홍장이 조미조약에 속방조관을 넣어야 한다는 제의에 찬동하고 나서 고종에게 올리는 封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나라가 중국의 속방이라는 것은 천하가 다 아는 바이다. 항상 중국이 착실하게 담당할 뜻이 없으면 孤弱之勢가 될 것 같고, 大邦의 보호함이 없으면 실로 特立하지 못할 것 같아 걱정했다. 지금 李中堂(이홍장-필자)은 중국의 병권을 쥔 대신이다. 다행히 我國을 담당하는 중임을 의연히 스스로 맡아 이미 각국에 성명하고 약조에 大書했다. 다른 날에 우리 나라에 일이 있는데 힘을 다해 구하지 않는다면 다른 나라들이 반드시 비웃을 것이나 다른 나라가 중국이 우리 나라를 담임한 것을 보면 각국이 우리를 경시하는 마음도 또한 따라서 줄어들게 될 것이다. 또 그 아래에 자주한다는[구절-필자]까지 넣게 되면 각국과 서로 교통하는 데 무해하고 평등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리하여 실권할 염려도 없고 사대하는 데에도 어긋나지 않으니 양득이 된다고 할 만하다.”

장정체결 때 어윤중의 속방조항에 대한 인식은 김윤식의 인식과 같았다. 그들은 대외전략에서 기왕의 조선과 청과의 사대관계를 충분히 활용하는 선에서 청이 조선을 방위해 줄 수 있는 국가로 상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청이 조공관계에 가탁하여 조·청관계를 근대적 종속관계로 개편시키려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단지 전래적인 조공관계로만 파악하고 있었다. 전래적인 조공관계에서는 공물을 바치고 의례적인 행사 몇 가지만 하면 청이 조선을 병합하려 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이 점이 당시 대다수의 조선인민이 가졌던 대청인식의 한계였다.

장정은 조선정부가 기왕의 조공관계에서 벗어나 만국공법적인 평등관계를 지향하면서 맺고자 한 것과는 달리, 청은 만국공법에 준하는 속국을 조선에 기대했다. 결과적으로 장정은 조선에 대해서는 불평등조약이 되었고, 청은 이 장정을 통해 조선에 근대적 식민지배를 자행할 수 있는 규정을 명문화함으로써 이를 기점으로 전근대 동아시아 국제질서로서의 조공관계에서 근대적 종속관계로 조선과 청과의 관계는 변질되었다.

조선과 청측의 협상 결과 체결된<朝鮮中國商民水陸貿易章程>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前文:조선이 속방임과 淸商의 특혜규정.
 “이 상민수륙무역장정은 중국이 속방을 우대하는 뜻에서 상정한 것이고 각국과 더불어 일체 균점하는 예에 있지 않다.” 제1조:商務委員의 파견 및 兩國派員의 처우, 북양대신과 조선국왕이 대등한 위치임을 규정. 제2조:조선내에서의 청 상무위원의 치외법권 인정. 제3조:遭難救護 및 평안·황해도와 山東·奉天 연안지방에서의 어채 허용. 관세규정. 제4조:북경과 漢城·楊花津에서의 開棧貿易을 허용하되 양국상민의 內地采辦 금지. 단 내지채판 및 遊歷이 필요할 경우 지방관의 執照를 받을 것. 관세규정. 제5조:세칙규정. 柵門·義州, 琿春·會寧에서의 개시. 제6조:홍삼무역과 세칙규정 제7조:招商局輪船 운항 및 청 병선의 조선연해 왕래·정박. 제8조:장정의 수정은 북양대신과 조선국왕의 咨文으로 결정.

그리고 이<조선중국상민수륙무역장정>에는 육로통상, 즉 변경개시의 개편에 대해서는 현지답사한 후에 상정하는 것으로 되었다. 이에 따라 그 후 1883년에<奉天與朝鮮邊民交易章程>과<吉林朝鮮商民隨時貿易章程>이 체결됨으로써 육로통상의 상세한 문제들이 규정되었다.711) 秋月望, 앞의 글, 104쪽.

<朝鮮中國商民水陸貿易章程>은 전문에 청과 조선이 종주국과 속방관계라고 규정함으로써 조선정부의 비준조차 요구되지 않는 일방적인 것이었다. 그 내용도 특권으로 일관하고 있는데 제2조의 치외법권은 말할 것도 없고, 조선시장을 청국에 고스란히 내어 주는 조항까지 들어 있었다. 제4조의 서울을 개시장으로 한다는 내용과 호조가 있으면 각 지방을 돌아다니며 행상이 가능하다는 내지통상권에 대한 규정, 제7조의 연안무역권의 승인 등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전문에는 종주국과 속국간의 관계에서 맺어진 것이므로 이 장정을 다른 나라와 균점할 수 없다고 했지만 그 뒤에 체결되는 조약, 특히 일본과 영국간의 조약개정에 중대한 영향을 미쳐 불평등조약체계 확립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 조문이 계기가 되어 조선시장은 서울에서 벽촌에 이르기까지 외국상인에게 시장이 개방되고 말았던 것이다.712)李炳天,≪開港期 外國商人의 侵入과 韓國商人의 對應≫(서울대 박사학위논문, 1985), 제1장 참조.

따라서<朝鮮中國商民水陸貿易章程>의 체결은 정치적으로는 청과 조선과의 관계가 전통적 조공체제에서 변질된, 곧 청이 조선에서 의도한 근대적 식민지배의 속셈을 명문화한 결과를 가져왔고, 경제적으로는 불평등조약체계의 확립에 결정적 역할을 함으로써 국내시장의 보호와 나아가 국내산업의 육성 자체를 어렵게 만들어 자주적 근대화를 저애하는 계기가 되었다.

<具仙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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