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Ⅴ. 갑신정변
  • 3. 갑신정변의 전개
  • 2) 갑신정변의 준비
  • (5) 국왕의 밀칙 획득

(5) 국왕의 밀칙 획득

김옥균 등 개화당으로서는 정변을 일으킴에 당하여 국왕의 승인과 가능하면 ‘密勅’·‘密書’를 받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였다. 군주제하에서 그래야만 ‘정변의 정당성’이 확고히 백성들에게 설명되기 때문이었다. 김옥균은 이를 잘 알고,<朝鮮改革意見書>에서 ‘평화행사’의 방법과 ‘무력행사’의 방법을 거론하면서, 무력행사의 방법을 채용하는 경우에는 ‘국왕의 密意에 의탁’하면서 무력행사를 해야 함을 일찍이 설파한 적이 있었다.855) 金玉均,<朝鮮改革意見書>(全集, 111∼112쪽).

김옥균은 1884년 10월 12일(양력 11월 29일) 국왕과 독대한 기회를 포착하여 국제정세의 급박성에 대해 청·불전쟁 발발, 러시아의 극동침략, 청·일전쟁 발발, 조선의 급박한 위기 등을 긴박하게 설명하고, 나라를 보전하기 위해 청의 간섭으로부터의 조선의 독립과 과감한 개혁단행의 불가피성을 설득력 있게 주상한 후에 마침내 국왕의 ‘밀칙’을 문서로 획득하는데 성공하였다.<甲申日錄>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나는 청·불의 교전으로부터 아뢰되 청국은 아직 러시아의 침략(정책)을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과 또 벌써 십수년 이래로 여러 나라의 동양에 대한 정책이 급변해서 동양 여러 나라들은 오직 舊規를 지켜서만은 편안히 숨어 自守의 책을 도모할 수 없다는 것을 아뢰고…통절하게 一論하였다. 그 때 뜻밖에 곤전(민비)께서 내실에서 나오시며, ‘내 경의 말을 처음부터 다 들었다. 사세의 절박함이 이미 이러할지면 그 대책은 어떠해야 하겠느냐’ 국왕께서도 또한 간절히 하문하셨다. 나는 아뢰되, ‘다케조에가 처음에는 신과 의론이 맞지 아니하와 그 저해를 많이 받았사옴은 이미 통촉하시는 바이나, 다케조에가 다시 온 후로부터는 도리어 신에게 친절히 접근해 와 터놓고 의사를 보이게 되었습니다. 신은 이것이 일본의 政略이 전날과는 갑자기 변한 까닭인가 하옵니다. 따라서 청·일의 擧兵이 머지않은 일인 줄 믿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조선은 청·일전쟁의 마당이 될 것입니다. 무슨 모책으로 이것을 면하겠나이까’ 국왕과 곤전께서도 깊이 동의하시고 우려하시는 분부로, ‘만약 청국과 일본이 교전한다면 그 승패는 어떻게 될까’ 나는 아뢰되, ‘그 최후의 승패는 지금 예측할 수 없사오나 만약 불란서와 합체하게 되면 그 승리는 단연 일본에 있다 하겠나이다’ 국왕은 가로되, ‘그러면 우리 나라의 독립책도 역시 여기에 있지 아니하냐’ 나는 아뢰되, ‘聖敎와 같사옵니다. 그러나 폐하의 측근 신하들이 모두 청국을 우러러보아 그 주구의 역할을 하고 있으니 일본이 비록 독립에 돕고자 한들 어찌할 도리가 있겠나이까. 신의 말에는 생사가 달렸사오나 나라의 위망이 조석에 달린 이 때 신의 일신의 안위는 돌아볼 틈이 없나이다’ 폭포같은 아룀이 여기에 이름에 곤전께서, ‘경의 말은 아마 나를 의심하는 듯 하나 그러나 일이 나라의 존망에 관계되는지라 나는 일 부인으로써 어찌 大計를 그르치게 할까보냐. 경은 숨기지 마라’ (나는 實과 虛를 알 수 없다) 국왕께서 가로되, ‘경의 마음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무릇 나라의 大計와 위급한 때를 당하여 경의 籌謀에 일임할 터이니 다시 의심치 말지어다’ (이것은 實心이고 實語이다) 나는 아뢰되, ‘신으로서는 감히 당할 수 없사오나 오늘 이 밤의 聖敎는 정녕 귀에 있사오니 어찌 감히 어기겠습니까. 바라옵건대 폐하께서 친서의 密勅을 내려주시오면 신의 신상에 항상 모시겠습니다’ (국왕께서) 즉시 勅書를 쓰시어 수결하시고 옥새를 찍어서 내려 주시었다(<甲申日錄>, 1884년 11월 29일, 全集, 64∼67쪽).

김옥균이 국왕의 ‘친서의 밀칙’을 받았다는 이 기록은 김옥균 자신이 쓴<갑신일록>의 기사이기 때문에 의심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정변 실패 후 국왕이 청군과 수구파대신들에게 받은 대접이나 개화당의 일관된 주장으로 보아서 ‘국왕의 친서의 밀칙’을 이 때 김옥균이 획득한 것은 사실로 보인다. 단지 국왕의 ‘친서의 밀칙’의 내용이 직접 ‘정변’을 지칭한 것이 아니라, 김옥균이 과장하여 아뢴 청·일전쟁 발발 때의 ‘임기응변의 대권’을 위임한 추상적 내용의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김옥균은 국왕으로부터 ‘친서의 밀칙’을 받아 몸에 지녔으므로, 정변에 일단 성공하기만 하면 온 나라에 정변의 정당성을 국왕의 ‘밀칙’을 빌려 설득할 준비를 갖추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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