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오파는 박영효가 1895년 6월 18일에 개시했던 23부제 지방제도 개편에 따른 후속조치를 취하였다. 1895년 10월 25일에는 지방제도의 급격한 실시로 말미암아 군·현간의 병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郡에 대한 확실한 파악과 그 효율적 행정운영을 도모하려는 조치가 취했졌다.570)≪韓末近代法令資料集≫1, 570∼574쪽. 이어 12월 12일에 갑오파는<鄕會條規>와<鄕約辦務規程>을 발포함으로써 초보적인 민주적 지방자치제를 실시하고자 했던 것이다.
鄕會는 里會·面會·郡會의 3급으로 구성되며, 각 향회의 회원은 里의 尊位, 면의 執綱, 군의 郡守 등 관리·속리와 각급 단위구역에서 公擧한 자로 충원하였다. 또한 각급 향회에서는 ①교육, ②호적과 지적, ③위생, ④사창, ⑤도로교량, ⑥식산흥업, ⑦공공산림과 堤堰伏港, ⑧제반 稅目과 납세, ⑨歉荒과 환난의 구휼, ⑩公共服役, ⑪제반 契會 및 ⑫新式令飭 등에 관한 사항을 公議하도록 규정하였다.571)≪韓末近代法令資料集≫1, 600∼601쪽.
그런데<향약판무규정>을 살펴보면, 종래 지방의 하급행정에 관여했던 風憲·約正·勸農·洞長·里正 등 명목들을 폐지하고, 그 대신 리 혹은 촌과 동에는 존위와 書記·頭民·下有司 각 1인을, 그리고 면에는 집강과 서기·하유사·面主人 각 1인을 두도록 규정하였다. 또 존위와 집강을 “관에서 차정하던 예를 폐지”하는 대신 존위의 경우에는 “매년 정월에 該 里人이 회의하야 班常을 拘치 勿하고 圈選한 후” 본 면·군에 보고하고, 집강의 경우에도 같은 방법으로 권선하여 본군에 보고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조직·운영되는 향회에서는 해당 각 리의 호적·인구 및 산업에 관한 문부의 작성 및 보고와 부·군·면에 할당되는 ‘공동의 役’을 분담하며, 該 里내의 “종래 無名雜歛하는 폐를 금지”하는 역할 등을 담당케 하였다.572)≪韓末近代法令資料集≫1, 602∼605쪽.
이 향회 및 향약 규정은 우리 나라의 전통적인 지방행정조직을 시의에 맞게 변통·활용하려 했던 개혁기도로서 주목할 가치가 있다. 뿐만 아니라 면이라는 최하급 행정단위에서 지방민의 ‘권선’과 ‘공동회의’ 등 민주주의적인 지방자치제를 조장·실시하려 했던 징표로서 의의가 있다. 요컨대, 갑오개화파 관료들은 전국 규모의 의회 설치는 시기상조라고 판단했지만, 지방에 향회를 개설·보급함으로써 리·면 수준에서 민주주의 정치를 점진적으로 보급·실시하려 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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