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2. 독립협회 전후 일제의 이권강점
  • 1) 독립협회 전후 한국을 둘러싼 국제관계와 이권문제

1) 독립협회 전후 한국을 둘러싼 국제관계와 이권문제

 청·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일본은 청나라 세력을 한반도로부터 구축하고 한국과 청이 종래 갖고 있었던 종속관계를 일단 배제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뿐만 아니라 대만을 식민지로 영유하고 요동반도를 할양받는 데 성공함으로써 한반도를 둘러싼 동아시아의 세력판도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어진 삼국간섭으로 인하여 일본은 전쟁에서의 승리를 오래 만끽할 수 없었고, 오히려 삼국간섭의 여세를 몰아 러시아의 한반도 진출이 현저해지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러시아와 한국내의 친러세력에 의해 그 세력이 위축되어 가던 일본은 을미사변을 통하여 상황을 바꾸어 보고자 하였으나 오히려 국제 여론의 악화와 더불어 한국에서의 발언권이 결정적으로 저하되었고, 국제적인 고립을 자초하게 되었다. 게다가 이어진 아관파천과 김홍집내각의 붕괴는 한반도에서의 일본세력의 약화와 함께 러시아를 위시한 열강들의 세력 균점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결국 한반도에서의 열강의 이권침탈이 본격적으로 개시되게 되었고, 열강의 이권침탈에 반대하는 한국내의 움직임 또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그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던 것이 독립협회·만민공동회였다.

 이러한 불리한 상황속에서 일본은 일단 러시아와의 관계 조정을 통하여 한국에서의 세력을 만회해 보고자 하였다. 1896년 5월 14일의 베베르-고무라 覺書(Waeber-小村 Memorandum)과 같은 해 6월 9일의 로바노프·야마가타 議定書(Lobanovr-山縣 Protocol)은 모두 일본이 러시아의 한국에 대한 발언권을 공식적으로 승인한다는 형태로 일단 타협을 하는 것이었다. 즉 러시아와의 공존을 도모하고자 하는 일본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어 1898년 4월 25일에는 로젠-니시 協定(Rosen-西 Convention)이 체결되었다. 그 내용은 당시 러시아가 청의 旅順과 大連을 조차하는 등 청의 이권침탈을 적극화하고 있는 상황속에서 한국내에서는 反러시아 움직임이 활발하게 전개되자, 이러한 분위기를 틈타 러시아의 여순·대련 租借를 묵인하는 형태로 협상을 성립시켜 한국에서의 상업·공업상의 유리한 지위를 러시아로부터 보장받아 한반도에 대한 재진출을 노리는 것이었다.

 또 한편에서는 미국과 영국과 같은 제3국의 이해와 지지를 얻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0384)윤병석,<열강의 이권침탈>(≪한국사≫18, 국사편찬위원회, 1973), 125∼126쪽. 영국을 비롯한 열강들은 러시아의 세력 확장을 견제하기 위하여 러시아의 지나친 간섭에 항의를 하고 있었고, 한국정부 또한 러시아에 대하여 불만을 표시하고 있었다. 일본은 이러한 기회를 이용하여 구미 열강들이 차지해 놓고도 미처 손을 대지 못한 각종 이권을 사들이거나 이양받으면서 한편으로는 한국정부를 조종하여 이를 기회로 새로운 이권을 강점하기 시작하였다. 이 같은 일본의 행동을 후원한 것은 일본과 동맹을 맺고 있었던 영국이었고, 또 일본의 이권을 알선한 것은 미국과 프랑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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