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협회의 자주국권사상은 먼저 國家平等權論으로 제기되었다. 근대 이전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의 평등이 인정되지 못하고 신분의 차별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듯이, 인간의 集積인 국가의 차등도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유럽에서는 로마제국과 그 전통을 이은 나라가 황제의 국가로서 주변의 왕국·제후국보다 높은 위치에 있었으며, 동아시아에서는 중국이 황제의 국가로서 주변의 왕국·제후국 위에 군림하는 위치에 있었다. 곧 동아시아의 전통적 국제관계는 대국인 중국과 소국인 조선을 비롯한 그 주변 국가가 事大關係라는 불평등한 차등관계로 이어져 왔다.
근대사회는 인간의 평등과 인간의 집적인 국가의 평등을 전제로 하여 이루어졌다. 이미 조선 후기에 선진적인 실학자들은 중국 중심의 화이적 세계관을 부정하고 自國中國說에 의거한 국가 평등의식을 보여주었다. 조선의 문호를 개방한 강화도조약은 제1조에서 “조선은 자주국가이며, 일본과 평등권을 보유하고 있다”0646)≪高宗實錄≫권 13, 고종 13년 2월 3일 병자.고 규정하여,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근대적인 국가평등의 국제관계를 명시하고 있다. 이와 같은 서구적 국가평등 의식은 개화인사들에게 수용되어 일반화되어 갔다.
개화사상가 兪吉濬은≪西遊見聞≫에서, “나라 위에 나라 없고 나라 밑에 나라 없으며, 국권은 동등한 지위에 있다”는 국가평등권을 명백하게 천명하였다.
國上에 國이 更無하고 國下에 國이 亦無하야 一國의 國되는 權利는 彼此의 同然한 地位로 分毫의 差殊가 不在한지라(兪吉濬,≪西遊見聞≫, 景仁文化社 影印本, 1969, 88쪽).
이처럼 개화인사들은 국가란 국제사회에서 동등한 지위와 권리를 가진다는 국가평등권사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국가평등권사상은 근대 이전의 차등적 국제질서에 대한 전면 거부를 의미하는 것이다.
갑신정변을 통하여 수립된 개화당정부는 개혁요강 제1항에서, “대원군을 不日 倍還할 것, 조공의 허례를 폐지할 것”0647)趙一文 역주,≪甲申日錄≫(건국대 출판부, 1977), 148쪽.이라 하여, 무엇보다도 청국에 대한 조공을 폐지함으로써 불평등한 사대관계를 청산하고자 하였다. 서재필은 독립협회의 창립사업으로서, 중국에 대한 사대의 상징인 迎恩門을 헐은 자리에 국민의 성금으로 독립문을 세웠다. 그것은 국민의 가슴속에 국가의 자주와 평등의 상징을 심어주기 위한 것이었다.0648)≪大朝鮮獨立協會會報≫1, 1896년 11월 30일,<獨立協會輪告>. 이처럼 독립협회 회원들은 국가평등권사상에 의거하여 종래의 사대관계에 의한 동아문화권의 차등적 국가관과 불평등한 국제질서를 부정함과 동시에, 당시 평등을 가장한 근대적 국제관계가 실제로는 불평등관계임을 간파하였다.0649)尹致昊,≪尹致昊日記≫5(國史編纂委員會, 1975), 1897년 11월 11일.
≪독립신문≫, 1898년 7월 15일,<독립하는 상책>.
독립협회는 당시 조선이 스스로의 힘에 의한 것이 아닐지라도 엄연히 세계 각국과 동등한 국가인데, 실제로는 외국의 간섭을 받고 있음을 비판하였다.0650)≪독립신문≫, 1896년 9월 12일, 논설. 그러므로 독립협회 토론회에서는 “남에게 종이 되고 살기를 얻는 것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죄를 얻음”이라는 제목으로 토론하는 중에, “황제는 어느 열강의 노예이다”, 곧 황제가 러시아의 노예라는 과격한 발언까지 나왔고, 여기에서 윤치호는 “우리 나라와 우리 군주가 만국에 동등해야 하며 어느 나라에도 열등해서는 안 된다”0651)尹致昊,≪尹致昊日記≫ 5, 1898년 2월 13일.고 주장하였다.≪독립신문≫은 아래와 같은 기고문을 실어 사회 일반에 국가평등 의식을 고취하였다.
우리 대한 전국에 있는 일천 이백만 동포 형제가 다 一心 一力으로 나라를 도와 우리 나라도 지금 구라파에 있는 상등국과 동등국이 기어이 되기를 바란다(≪독립신문≫, 1898년 8월 9일,<유지각한 친구의 편지>).
나아가 독립협회 회원들은 국제조약에는 유럽국가 사이에 체결된 완전한 대등조약과, 청국·일본간에 치외법권을 규정한 不對等條約이 있다고 하고, 우리 나라가 일본·청국 등 열강과 맺은 조약은 치외법권을 인정한 불대등조약 곧 불평등조약이므로 이를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0652)≪독립신문≫, 1898년 11월 2일,<유지각한 친구의 편지>. 이와 같은 독립협회의 국가평등권사상은 근대국가 의식의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