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42권 대한제국
  • Ⅲ. 러일전쟁
  • 1. 러일전쟁의 배경
  • 1) 러일전쟁과 한국

1) 러일전쟁과 한국

 20세기초 동아시아 지역에서 전개된 일본과 러시아간의 경쟁과 갈등은 드디어 1904년 2월 러일전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일본은 전쟁중 한국을 군사적으로 점령했으며, 전쟁에서 승리한 후 영국·미국·러시아 등 열강들과의 조약을 통해 한국에 대한 보호권을 승인받았다. 그리고 1910년 한국을 합방하였다. 러일전쟁은 이같이 국제정치적으로 한국의 운명을 결정하는 분수령이 되었다는 점에서 한국에게는 불행한 사건이었다. 물론 이 전쟁은 본질적으로 동아시아에서 일본과 러시아라는 두 팽창주의적 세력이 다툰 국제정치적인 사건으로 한국이 ‘가장 중요한 경쟁의 대상’이었는가 라는 점에서는 약간의 異論이 존재하지만, 한국이 ‘가장 큰 피해자’가 되었다는 점에서는 이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근대사를 다룬 개설서들은 대부분 이 문제를 중요하게 취급하고 있다.

 국내 학계에서 이 전쟁을 다루는 입장은 어떤 의미에서 단순하다. 우선 이 전쟁을 한반도를 둘러싼 러시아·일본간 각축의 연장선상에서 취급하는 시각이다. 1895년의 乙未事變에서 시작하여 아관파천, 로젠(Rosen)-니시(西)협정, 로마노프(Romanov)-야마가타(山縣)협정, 마산포 조차, 용암포사건 등 한반도를 두고 일본과 러시아가 경쟁한 사건들을 이 전쟁의 전주곡으로 간주한다.350)이것은 주로 한국사의 관점에서 러일전쟁을 취급하는 태도이며≪한국사≫41권의 1장에서 충분히 다루었다. 그러나 이같이 한반도라는 국지적 관점으로는 러일전쟁의 실상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다. 두번째 시각은 러일전쟁을 일본과 러시아 양국의 팽창주의적 정책이 동아시아라는 지역 수준에서 충돌한 것으로 평가하였다. 이 전쟁은 주로 만주에서 전개되었으며 경쟁의 주요 대상은 만주였다. 이것은 주로 동아시아 국제정치사적인 입장을 반영하는 것이며, 한국근대사보다는 동양외교사에서 이 전쟁을 더 상세하게 다루는 데서 잘 나타나 있다. 이 관점에 의하면 러일전쟁은 한국과는 상관없으며, 관련이 있더라도 한국은 양국간에 주된 경쟁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물론 이 시기를 전후해서 전개된 일본의 한반도 침탈은 언급되지만, 러일전쟁 자체에 관한 한, 그리고 전쟁의 과정에서, 한국정부나 국민들은 방관자적인 입장을 보이다가 종전과 함께 승전국의 전리품으로 취급되는 상황을 맞으면서 경악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러일전쟁이 한국의 존망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이라면 양국간의 갈등이 그 근원에서부터 전개과정, 그리고 그 처리에 있어 한국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전개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정부나 국민들은 러일전쟁의 전조로서 전개된 중국의 의화단사건이나 영일동맹, 그리고 러·일간의 전쟁에 민감하게 때로는 엉뚱하게 반응하였으며, 이를 한국의 장래와 관련시켜 평가하고 있었다. 따라서 러일전쟁은 동아시아를 무대로 하여 전개된 지역적·범세계적 의미를 갖는 사건이면서도 한국과 밀접하게 관련된 것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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