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43권 국권회복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2. 애국계몽사상
  • 1) 애국계몽사상의 개념과 형성
  • (2) 애국계몽사상의 형성

(2) 애국계몽사상의 형성

이제 한말 애국계몽사상을 형성한 사상적 조류를 학계의 연구 성과를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로 實學思想이 한말 애국계몽사상을 형성한 사조의 하나가 되었다는 설은 오늘날 학계의 통설로 되어 있다.

먼저 계보상으로 보아, “조선에서의 역사적 개념으로서의 계몽사상은 18세기 후반기의 실학파의 북학사상을 그 맹아적 형태로 하고, 1870∼1880년대의 개화사상은 계몽사상의 제 특징을 그 내실로서 구비하고 있다”고 하여, 실학사상·개화사상·애국계몽사상을 같은 맥락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이 견해는, 특히 북학사상이 갖는 여러 특징, 구체적으로는 ①세계지도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토대로 한 ‘華夷之分’의 부정, ②인간관·학문관·직업관에서의 봉건적 명분론의 부정, ③합리적 생산기술의 도입에 의한 생산력의 발전과 그것을 저해하는 구질서의 개조, ④개국론적 해외통상책과 서양기술자 초빙안 등에 주목하여, 북학사상이 근대적 사상으로 발전 가능성을 내포하는 ‘계몽사상으로서의 초기적 성격’을 가진다고 본다.0710)姜在彦, 앞의 책(1973), 208∼209쪽. 곧 실학사상을 애국계몽사상의 始原的 사상으로 보는 것이다.

그리고 실학사상과 개화사상의 연관관계에 대해서는, ①실학자들의 利用厚生과 實事求是 개념이 그대로 개화사상가에게 계승 발전되었다는 점, ②실학자들의 민족주의적 의식과 국학연구가 개화사상가들에게 계승 발전되었다는 점, ③실학자들의 평등의식과 민권사상이 개화사상가들에게 계승 발전되었다는 점, ④실학자들의 개국통상론·무역부국론이 개화파의 기술도입론·수입대체적 공업화론으로 연결 발전되었다는 점, ⑤실학자들의 영업자유론이 개화파에 계승되어 都賈革罷論·惠商工局革罷論·육의전 전매제도 혁파로 나타난 점, ⑥실학자들의 小作地均等化論·조세금납화론·농업기술론 등이 개화파에 의하여 계승 발전되었다는 점에서, 실학사상과 개화사상의 불가분의 관계가 논증되고 있다.0711)金泳鎬,<開化思想의 形成과 그 性格>(≪한국사≫16, 국사편찬위원회, 1975), 258∼274쪽.

실학사상과 개화사상은 인적인 맥락에서도 긴밀하였음이 밝혀졌다. 먼저 개화의 선각자 吳慶錫·朴珪壽·劉大致의 경우, 오경석의 사상은 실학자 朴齊家와 金正喜의 학문에서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고,0712)愼鏞廈,<吳慶錫의 開化思想과 活動>(≪韓國近代社會思想社硏究≫일지사, 1987), 62쪽. 박규수는 조부이며 저명한 실학자 朴趾源과 丁若鏞의 학문적 영향을 받았으며,0713)金泳鎬, 앞의 글, 247쪽. 유대치는 오경석의 절친한 친구이며 사상적 동지였다.0714)李光麟,<숨은 開化思想家 劉大致>(≪開化黨硏究≫, 일조각, 1973), 72쪽. 초기 개화인물 金玉均·朴泳孝·洪英植·徐光範·金允植·兪吉濬 등은 박규수로부터 개화교육을 받았고, 급진개화파 인물들은 박규수 사후 유대치의 지도를 받았다.0715)愼鏞廈,<개화당과 독립협회>(≪한민족독립운동사≫1, 국사편찬위원회, 1987), 121쪽.
李光麟, 앞의 글, 78쪽.
魚允中은 정약용의 제자인 조부 魚命能으로부터 실학사상을 배웠고, 朴定陽은 실학자 洪淵泉의 제자였으며, 金弘集의 부친 金永爵은 서유구·丁學淵과 교우인 실학자였다.0716)金泳鎬, 앞의 글, 255·258·273쪽. 그리고 申觀浩·金綺秀·姜瑋 등은 김정희의 제자였으며, 정약용 제자의 문하에서 신관호·申耆永·申正熙·魚允中·李沂·李道宰 등이 실학을 공부하였다.0717)金泳鎬, 위의 글, 251∼253쪽.

한편 실학사상이 개화사상을 통하여 애국계몽사상에 영향을 끼치기도 했지만, 직접적으로 애국계몽사상의 형성에 다대한 영향을 끼쳤음도 밝혀졌다. 곧 한말 애국계몽가들이 실학사상을 재발견하고 실학을 열심히 연구했으며, 실제로 실학사상은 그들에게 끊임없이 많은 지식과 사상, 관점과 신념, 그리고 자부심을 공급해 주었다고 평가되고 있다.0718)愼鏞廈, 앞의 글(1980), 277쪽.

실학사상과 애국계몽사상의 직접적인 연관관계에 있어, 애국계몽가들이 國學을 중요시했던 실학적 전통을 계승하여 국학운동을 전개한 점도 지적되고 있다. 張志淵·朴殷植·申采浩 등이 그러하며, 특히 역사연구에서의 계승관계가 지적되고 있다. 장지연은 자신의 학문적 계보를 실학자인 이익과 정약용에 두었고,0719)張志淵,<事略>(≪韋庵文稿≫권 12, 國史編纂委員會, 1971), 496쪽. 정약용의 학문을 更張維新의 뜻을 가진 학문이라고 높이 평가했으며,0720)張志淵,<題雅言覺非後>(≪韋庵文庫≫권 5), 192쪽 참조. 정약용의 저작인≪목민신서≫·≪흠흠신서≫를 출판하고≪我邦疆域考≫를 증보 개정하는 등 정약용의 저작을 출간하였다.0721)姜在彦, 앞의 책(1973), 211쪽.
千寬宇,<張志淵과 그 思想>(≪白山學報≫3, 1967), 499쪽.
박은식은 젊은 시절에 정약용의 제자인 신기영과 丁觀燮을 찾아가 정약용의 학문을 섭렵했으며,0722)愼鏞廈,≪朴殷植의 社會思想硏究≫(서울대 출판부, 1982), 4쪽. 신채호는 실학시대의 사학을 비판적으로 계승하고, 실학의 비판정신·개혁성·실증성·근대성을 수용하여 근대사학을 정립하는 계기를 이루었다.0723)李萬烈,≪丹齋 申采浩의 歷史學硏究≫(문학과지성사, 1990), 100쪽.

≪皇城新聞≫이 실학파의 학문을 집중적으로 거론한 점도 지적되고 있다. 그들은 新舊學 절충의 필요성에서, 舊學 가운데 ‘英正時代의 실학’을 거론하고, 김육·유형원·이익·정약용·박지원·유득공 등의 실학자들을 열거했으며, 토지제도개혁론으로부터 농업기술문제, 상업문제, 신분개혁문제 등을 소개하였다.0724)김도형,<애국계몽운동의 연구동향과 과제>(≪한민족독립운동사≫12, 1993), 73쪽. 이처럼 실학사상은 개화사상의 형성에 깊은 영향을 끼쳤으며, 동시에 애국계몽사상의 형성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둘째로 한말 애국계몽사상이 개화사상을 계승하여 형성된 사상이라는 설도 오늘날 학계의 통설로 되어 있다.

한말 애국계몽사상은 사상적인 면에서 개화사상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조선의 개항 초기에 ‘開化’란 용어는 開國과 동일시되었고 부국강병의 논리로 전개되다가, 1890년대 후반에는 物的 개화로서의 開物(산업의 근대화)과 人的 개화로서의 化民(인간의 의식과 지식의 근대화)을 결합한 용어로 정착되었다고 이해된다.0725)姜在彦, 앞의 책(1980), 177쪽. 이러한 개화사상이 독립협회운동가들에 의하여 국권과 민권을 축으로 하는 근대개혁사상으로 체계화된 것으로 보이며, 애국계몽사상의 국권회복론과 국민국가건설론은 개화운동의 인맥적·사상적 계승성을 지니면서, 국권침탈의 상황에 대응하여 운동과제의 초점을 전환한 데서 나타난 논리였다고 파악되고 있다.0726)姜在彦, 위의 책, 247쪽.

또한 한말의 애국계몽사상은, 1905년 국권을 침탈당한 후 국권회복을 목적으로 하여 개화사상에서 전환된 것이며, 새로운 사태에 대응한 ‘개화사상의 변형’이라고도 표현된다. 특히 개화사상 중에서도 독립협회와 萬民共同會의 영향이 가장 컸다고 이해된다. 따라서 한말의 애국계몽사상과 운동은 국권의 피탈이라는 새로운 사태 변화의 도전에 대한, 종래의 개화파·독립협회·만민공동회파의 응전의 양식이었다고 파악되기도 한다.0727)愼鏞廈, 앞의 글(1980), 277쪽.

결국 애국계몽운동은 1904년의 러일전쟁과 1905년의 을사조약에 의하여 일제로부터 강요된 보호국체제하에서, 갑신정변·갑오개혁·독립협회운동으로 이어지는 개화자강계열의 운동을 계승하여 전개한 민족운동이었다고 할 수 있다. 대한제국 초기에 개화자강계열의 민족운동을 주도했던 독립협회가, 외세의 침탈로부터 국권의 상실을 막고 자주독립의 주권국가를 수립하려는 자주국권운동과, 지배층의 압제로부터 민권의 유린을 막고 근대적 국민국가를 건설하려는 자유민권운동, 그리고 국정 전 분야에 걸친 일대 개혁을 통하여 근대적 자강체제를 수립하려는 자강개혁운동을 전개했는데, 이러한 독립협회운동을 직접적으로 계승한 운동이 애국계몽운동이던 것이다.0728)柳永烈,≪大韓帝國期의 民族運動≫(일조각, 1997), 180쪽.

한말 애국계몽운동은 인적인 면에서도 개화자강계열의 지식층이 중심을 이루었고, 특히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 회원들은 대부분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大韓自强會의 회장단과 평의원 역임자 43명 중 21명이 독립협회 출신이었고, 그 최고 지도층인 회장단과 평의장 역임자 6명 중 尹致昊·尹孝定·玄檃·林炳恒·張志淵·池錫永 등 5명이 독립협회 출신이었다.0729)柳永烈, 위의 책, 114∼115쪽. 그리고 安昌浩·梁起鐸·全德基·李東輝·李東寧·李甲·尹致昊·朴殷植·申采浩·盧伯麟·李商在 등 독립협회 회원 30여 명이 신민회의 창립과 활동을 주도했고, 신민회 창립위원 7명 중 6명이 독립협회 출신이었다.0730)柳永烈, 위의 책, 197∼198쪽. 또한 李鍾一·鄭雲復·林炳恒·南宮檍·柳瑾·張志淵·朴殷植·申采浩·羅壽淵·梁起鐸·安昌浩·李甲·吳世昌 등 독립협회 출신들이 제국신문·황성신문·대한매일신보·만세보·대한민보 등 한말의 5대 애국계몽언론의 창간·경영·편집을 주도하였다.0731)李海暢,<言論機關의 活動>(≪한국사≫20, 국사편찬위원회, 1974), 40∼55쪽.

셋째로 한말 애국계몽사상의 형성에 社會進化論과 西洋啓蒙思想이 깊은 영향을 주었다는 설도 학계의 통설로 되어 있다.

1880년대에 개화지식인들이 받아들이기 시작한 사회진화론이, 1900년대에 이르러 주로 梁啓超의≪飮氷室文集≫을 통하여 본격적으로 한국사회에 수용되었으며, 당시 제국주의가 팽배하고 국가가 멸망의 위기에 처한 한말에, “弱肉强食하고 適者生存한다”는 사회진화론이 보편화되어 애국계몽운동의 추진력이 되었다고 이해된다. 또한 한말에 사회진화론이 구국을 위한 강한 정치의식을 불러일으켰고, 위기극복을 위해 국민의 정신과 자세를 새롭게 하려는 新民思想을 주창케 했으며, 민족과 경쟁(투쟁)을 중심으로 한국사를 보려는 민족사관을 정립케 했다고 이해된다.0732)李光麟,<舊韓末 進化論의 受容과 그 영향>(≪韓國開化思想硏究≫, 일조각, 1981), 286∼287.

한말에 유행한 적자생존·우승열패 등 사회진화론은 제국주의의 원리를 설명해 주고, 이에 대항하는 自强論의 형성을 뒷받침하여, 애국계몽사상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으며, 사회계약론·민권론·국민주권론·국민국가론 등 서양계몽사상이 국민을 주체로 하는 국권회복운동의 사상적 기초가 되었던 것이다. 또한 한말에 있어서 사회진화론과 서양계몽사상의 도입에는 중국의 영향, 특히 康有爲의 저작들과 양계초의≪음빙실문집≫등의 저작들이 큰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0733)愼鏞廈, 앞의 글(1980), 277∼278쪽.

곧 한말의 애국계몽가들은 당시 국제사회의 현실을 기본적으로 사회진화론적 시각에서 파악하여, 약육강식·우승열패의 국제사회에서 한국이 보호국 상태로 전락한 근본적인 책임은 국가의 자강을 도모하지 못한 한국 자체에 있다는 자가반성의 입장에서, 실력의 부족으로 상실된 국권의 회복은 실력의 양성으로만 가능하다고 믿고, 국권회복을 위한 실력양성론, 곧 사회진화론에 기초한 자강독립론을 폈던 것이다.0734)柳永烈, 앞의 책, 316쪽.

한편 한말의 사회진화론이 가지는 ‘경쟁과 진보’의 양면성에 주목하여, 진보에 중점을 두는 경우에는, 근대주의에 빠져 제국주의를 용인하고 문명국 일본의 지도하에 문명개화를 달성하자는 논리로 발전하게 되었고, 민족간의 경쟁을 강조하는 경우에는, 제국주의 침략을 배격하고 민족주의로 발전하는 논리가 되었다는 견해도 있다. 이 견해는 우리 나라에 수용된 사회진화론은 독립협회운동에 영향을 미쳤는데, 특히 패배주의적 민족주의와 국권론적 근대주의를 형성했다고 하여, 그 부정적인 영향을 거론하기도 한다.0735)김도형, 앞의 글(1993), 80∼81쪽.

사회진화론은 원래 ‘경쟁을 통한 진보의 원리’로 사회의 변화 발전을 설명하며, 서양 자본주의 사회의 발전과 관련하여 부르죠아 계급과 제국주의 국가의 등장을 합리화하는 논리, 곧 ‘강자의 약자 지배의 논리’임은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한말에 유행한 사회진화론이 민족패배주의를 조장한 면도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한말에 국권회복을 위하여 실력양성에 헌신했던 대다수의 애국계몽가들은, 제국주의의 속성을 당시 한국사회의 어느 계층보다도 잘 알고 있었고, 사회진화론을 기초로 하여 자강독립론을 확립하고 자강구국운동을 전개했으므로, 한말 애국계몽가들의 사회진화론은 ‘약자의 강자화를 위한 논리’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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