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43권 국권회복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2. 애국계몽사상
  • 3) 국민국가건설의 논리
  • (1) 국민국가론

(1) 국민국가론

한말의 애국계몽가들은 외세의 침탈로 인하여 야기된 민족적 모순에 대응하여 실력양성에 의한 국권회복의 논리를 전개했고, 내부 지배층의 압제와 수탈로 표출된 봉건적 모순에 대응하여 근대 국민국가건설의 논리를 전개하였다.

먼저 애국계몽가들은 천부인권론에 기초하여 국민의 자유권·평등권·생존권을 주장하였다.

애국계몽가들은 자유란 “皇天이 인간에게 부여한 것”이며, 인간의 대소 강약은 다르나 “天賦自由之權은 동일하다”고 하여 天賦人權을 주장하였다.0798)南宮氵寔,<自由論>(≪月報≫제9호), 9쪽.
元泳義,<自助論>(≪月報≫제13호), 1쪽.
그리고 그들은 천부의 권리는 사람이 태어날 때 주어진 고유한 것이지만 법률에 의해서만 보장될 수 있다고 하여 법부인권을 주장하였다.

대저 天賦權은 사람이 태어날 때 주어져 固有한 것이다. 水草相逐하는 시대에 있어서는 반드시 腕力에 제한되는 것은 논란을 기다리지 않을 것이니, 비록 天賦權이 있은들 편안히 누리지 못함에 이르면 어찌 權利라 칭하리요. 고로 법률이 있은 후에야 비로소 그 권리를 보전할 것이니, 소위 天賦自由라 公言하는 말은 空論에 불과할지라(薛泰熙,<法律上 人의 權義>(≪月報≫제8호), 17쪽).

나아가 그들은 “하늘이 백성을 내릴 때 자유를 균등하게 부여했으니, 인민에게는 자유와 생존의 권리가 있다”0799)薛泰熙,<抛棄自由者爲世界之罪人>(≪月報≫제6호), 19∼20쪽.던가, “하늘이 백성을 냄에 각기 주어진 자유가 있으니 백성된 자는 평등 자유하다”0800)金成喜,<工業說>(≪月報≫제10호), 28∼29쪽.고 하여, 개인 차원의 천부인권을 국가 차원에 적용하여 天賦民權을 주장하였다.

다음으로 천부인권론에 의거 국민평등권·국민자유권·국민생존권을 주장한 애국계몽가들은 사회계약론에 기초하여 국민주권과 국민참정권을 주장하였다.

대한자강회 평의원 薛泰熙는<抛棄自由者爲世界之罪人>이란 논설에서,

국가에는 스스로 일정한 토지와 인민이 있어서, 본래 마땅히 각자가 조처하여 得失을 평의할 것이나, 복잡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하여 인민이 통치권을 賢者에게 위임한 것이니, 정부는 통치권의 分任者로서 인민 보호의 의무와 用法·행정의 권한을 가지며, 인민은 役稅 부담의 의무와 자유 생존의 권리를 가진다(薛泰熙,<抛棄自由者爲世界之罪人>(≪月報≫제6호), 19∼20쪽 축약).

고 하여, 사회계약론에 의거 국민을 통치권 곧 주권의 근원으로 또는 주권의 위임자로 인식하고, 통치자와 정부를 주권의 수임자로 인식하였다. 따라서 주권의 수임자인 정부는 결국 인민의 보호를 목적으로 설치된 것으로 파악하였다.

대한자강회 부회장 윤효정은 논설에서, “정치가의 본직은 국가의 발전과 인민의 행복을 증진시키는데 있다”고 전제하고, 정부 당국자의 “귀중한 位權은 인민으로부터 假得한 것이며, 두터운 봉록은 인민으로부터 공급된 것이요, 국정 전반의 위임은 인민에게서 인수한 것인즉, 그 행정의 잘 잘못은 마땅히 인민에 감독을 必受할 이유가 있다”0801)尹孝定,<政治家의 持心>(≪月報≫제12호), 11∼12쪽.고 하여, 역시 사회계약론적인 시각에서 정부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 것이고 제반 국정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된 것이라는 근거에서 국민의 국정감독권을 강력히 주장하였다. 대한자강회의 평의원 南宮薰도 논설에서, 우리 국민이 국정을 정부에 위임하여 국가 흥망의 일차적 책임이 국민에게 있으므로, 우리 국민은 국정감독의 권리를 가진다고 주장하였다.0802)南宮薰,<國民의 義務>(≪月報≫제10호), 48쪽.
金成喜,<政黨의 事業은 國民의 責任>(≪會報≫제1호), 29쪽.
元泳義,<人民의 共同的 責任>(≪會報≫제2호), 7∼8쪽.

한편 애국계몽가들은 “민선의원을 두어 정무를 감독한다”고 했으므로,0803)金成喜,<國家意義>(≪月報≫제13호), 41쪽
―――,<論外交上 經驗的 歷史>(≪會報≫제8호), 8쪽.
국민의 국정감독은 의회개설에 의한 국민참정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의회개설에 의한 국민참정은 생명·재산 등 국민의 기본적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며,0804)金成喜,<政黨의 事業은 國民의 責任>(≪會報≫제1호), 29쪽. 국민과 국가와의 일체감을 조성하여 국가의 자강을 도모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0805)尹孝定,<地方自治制論>(≪月報≫제4호), 18∼19쪽.
―――,<國家的 精神을 不可不發揮>(≪月報≫제8호), 8쪽.
元泳義,<人民의 共同的 責任>(≪會報≫제2호), 8쪽.
고 믿고 국민참정권을 주장하였다. 국민참정권은 국민주권을 전제로 발생되는 것이므로, 애국계몽가들은 국민을 주권의 근원 또는 주권의 위임자로서 뿐만 아니라 사실상 주권의 소유자로 인식했다고 하겠다.

애국계몽가들은 이상과 같이 자연법적 천부인권과 사회계약론적 국민주권 등 자유민권사상을 가지고, 이를 바탕으로 하여 새로운 국가관을 형성하게 되었다.

대한자강회 회원들은 “국가는 국민 萬姓의 공동체이니 군주 1인의 사유물이 아니라”고 하고, “군주는 국가의 통치자이며 국가의 私有者가 아니다”0806)海外遊客,<國家의 本義>(≪月報≫제3호), 54쪽.
――――,<國家及 皇室의 分別>(≪月報≫제3호), 55쪽.
고 인식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朕은 곧 국가”라고 한 루이 14세의 말을 ‘대역무도’하다고 비판하고, “짐은 국가의 상등 공용인”이라고 한 프레드릭 2세의 말을 국가와 황실의 구분을 명확히 한 ‘萬世의 귀감’이라고 극찬하였다.0807)海外遊客,<國家及 皇室의 分別>, 56쪽. 이처럼 애국계몽가들은 국가를 토지에 중점을 두어 군주의 사유물시하는 전통적인 ‘군주=국가관’을 정면으로 부정하였다.

그리고 대한협회 회원들은 “국가의 국가됨이 衆多 인민을 집합하여 이룬 것이므로 위로 君位와 아래로 관직은 모두 백성을 위해 설치한 것”0808)元泳義,<政體槪論>(≪會報≫제3호), 28쪽.이라 하고, “백성은 국가 전체의 주인이오, 정부는 民人 의사의 대표”이니 정부는 주인의 동의를 얻어 국사를 처리해야 한다0809)金成喜,<論外交上 經驗的 歷史>(≪會報≫제8호), 4쪽.고 주장하였다. 곧 국가의 모든 통치 기구는 국민을 위해 설치된 것이며, 국가의 통치는 국민의 동의에 의하여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그들은 “국가는 吾人(인민)의 국가요 정치가의 국가가 아니며 정치가는 오직 우리 나라 인민의 使役者”라 하여,0810)卞悳淵,<國民과 國家의 關係>(≪會報≫제7호), 30쪽. 국가를 국민집단과 동일시하는 ‘국민의 국가’로 인식하였다. 서우학회와 서북학회의 회원들도 국가의 주인은 군주 개인이 아니고 국민이라고 하여, 국가를 ‘국민의 국가’로 인식하였다.0811)朴聖欽,<愛國論>(≪西友≫제1호), 27∼29쪽.
≪西友≫제2호,<愛國論一>, 17∼23쪽.
≪西友≫제7호,<安昌浩 演說>, 26쪽.
金翼瑢,<今日 吾人의 國家에 對한 義務 及 權利>(≪西北學會月報≫제1호), 27∼32쪽.

이처럼 애국계몽가들은 전통적인 군주=국가관을 부정하고,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 국가 곧 근대 국민국가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대한협회 회보편찬원 金成喜가<論國家>라는 논설에서, 입헌정체는 ‘평등권의 특질’과 ‘대의기관의 특질’이 있다고 하고, 입헌대의제를 통하여 국민의 자유 권리가 보장되고 국민이 국가의 책임자가 되는 국가를 ‘국민적 국가’라 규정한 뒤, 우리 나라도 헌법의 발포와 국회의 설립을 추진하여 국민국가를 구성해야 한다0812)金成喜,<政黨의 事業은 國民의 責任>(≪會報≫제1호), 28∼30쪽.고 역설했듯이, 애국계몽가들은 국민국가관을 가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국민국가의 건설을 추구했던 것이다.

그럼 애국계몽가들이 국민국가와 관련하여 어떠한 정부를 구상하였던가.

대한협회 평의원 安國善은 논설에서,

대저 근대에 제일 선량한 정부는 治者의 병력에 의뢰치 아니하고, 전적으로 피치자의 自由同意로 근거를 지어 政機運轉할 때에 결코 强力을 외면에 나타내지 아니하니, 곧 이러한 정부는 국민 다수의 의사로 원천된 헌법과 법률로 기초를 지어야 그 배후에 있는 강력은 朝廷이나 소수 右族의 강력이 아니라 일치한 국민 다수의 강력이오, 이 국민 다수의 강력은 剛强盛大하여 가히 犯치 못할 것이다(安國善,<政府의 性質>(≪會報≫제7호), 28쪽).

고 하여, 근대에 있어 최선의 정부 곧 ‘국민적 정부’는 국민의 ‘자유 동의’에 근거하여 정치기구를 운용하는 정부, 곧 국민 다수의 의사에 근거한 헌법과 법률에 기초를 둔 강력한 정부라고 인식하였다.0813)≪西友≫제13호, 2쪽에 실린<自助論>도 국민주권에 근거한 헌법과 정치·법률에 의하여 국가를 통치하는 국민적 정부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같은 논설에서,

대저 금일에 문명국의 정치를 말하면, 반드시 ‘여론정치’를 말하며 ‘서민참정’을 말하니, 이러한 말은 모두 십분 성장 발달한 ‘民主制度’를 언명함에 족하도다. 그 여론을 형성하는 다수자가 승세를 잡음은 다수자가 국민의 소리를 가지고 국민의 권력을 가진 데에 말미암는다. 곧 다수자가 지배권을 가지는 것은 그 지식으로서가 아니고 그 潛勢力으로서이다(安國善,<政府의 性質>(≪會報≫제8호), 24쪽 축약).

고 하여, 문명국 곧 국민국가의 정치는 여론정치·서민참정을 의미하는 민주제도로 귀착되며, 국민의 여론과 국민의 권력에 바탕을 둔 다수자가 지배하는 정치라고 인식하였다. 서북학회 회원도<我韓의 公平한 與論을 要함>이란 글에서,

近世 문명 각국에서는 國民主義로 標幟를 삼아 정치상·경제상·사회상 중대사건에 대하여는 국민의 공평한 여론에 의하여 處斷實行하나니, 故로 世人이 입헌정치를 指하여 여론정치라 칭함에 至한 것이라. 然則 국민의 여론은 국가행동의 나침반이라. 건전한 여론이 행하면 其國이 必治하고, 病的 여론이 행하면 其國이 必亂할지니, 吾儕가 어찌 여론의 가치를 泛視할 수 有하리요(友洋生,<我韓의 公平한 與論을 要함>(≪西北學會月報≫제14호), 19∼20쪽).

라고 하여, 근대 문명국가가 추구하는 국민주의는 국민의 여론에 의한 정치임을 밝히고, 입헌정치의 선결 요건인 여론정치를 실현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따라서 애국계몽가들은,

정부는 결코 정부 당국자의 정부가 아니오 곧 전국 국민의 정부이어늘, 이제 당국자의 施措에 대하여 漢城이 불복하고 畿甸人이 불복하고 전국인이 불복하는지라. 그런 즉 內閣 제공은 누구를 의뢰하여 부끄럼 없이 그 지위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가(大韓子,<政府當局者의 猛省함을 再警함>(≪會報≫제7호), 4쪽).

라 하여, 정부란 곧 ‘국민의 정부’이므로 국민의 지지를 상실한 현 내각대신은 퇴진해야 한다고 촉구했던 것이다.

대한협회 회보편찬원 김성희는 몽테스큐의 ‘萬法精神의 說’이 입법·사법·행정의 三權分立을 일반화시킨 헌법의 鼻祖라 하고, 헌법 이전의 국가는 계급적 정부이고 헌법 이후의 국가는 평등적 정부이므로, 계급적 정부는 헌법의 죄인일 뿐 아니라 국민의 仇敵이라고 규정하였다. 또한 그는 정부란 국가의 목적을 위하여 운용하는 기관으로, 공익을 위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행정상으로 말하면 내각이고, 통괄적으로 말하면 정부라고 하였다. 그리고 국민 공동의 사상으로 만든 것을 국민적 정부라 하고, 문명국의 책임내각이 바로 국민적 정부라고 파악하였다. 나아가 그는 책임내각이란 것은 영국에서 비롯되어 군주와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것인데, 한국의 내각은 군주와 국민에게 책임이 없는 내각이라고 비판하고, 국가와 정부, 국민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속히 국회를 조직하여 국민적 정부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0814)金成喜,<政黨의 事業은 國民의 責任>(≪會報≫제1호), 30∼32쪽. 이처럼 애국계몽론자들은 국민의 공동사상으로 구성된 국민적 정부 곧 책임내각이 국민국가에 부합된다고 인식하고, 우리 나라에 있어서 국회의 설립에 의한 책임내각의 구현 곧 국민적 정부의 수립을 추구하였다.

애국계몽가들은 책임내각 곧 국민적 정부의 전제조건으로 정당의 존재를 중요시하였다.

애국계몽가들은 과거의 朋黨은 公義보다는 私利에 치우치는 편벽된 私黨이며, 근대의 정당은 정치상 동일한 主義를 가진 자들이 조직하여 국리민복을 목표로 공의를 소중히 여기는 공당이라고 보았다.0815)安國善,<政黨論>(≪會報≫제3호), 24쪽.
金成喜,<政黨의 事業은 國民의 責任>(≪會報≫제2호), 21∼24쪽.
그리고 김성희가<論政黨>에서, “공중의 도덕성을 결집하여 단체를 구성하여 국회에서 雄力을 가지고, 議院에서 다수를 점하여 여론을 환기하고 國是를 유지하는 것이 국민적 정당이다”0816)金成喜,<政黨의 事業은 國民의 責任>(≪會報≫제2호), 21∼22쪽.고 했듯이, 그들은 근대 정당이란 국회를 활동의 중심 무대로 하는 ‘국민적 정당’이라고 인식하였다.

대한협회 평의원 安國善은<政黨論>에서,

朋黨은 국가와 사회에 해를 끼침이 심하였지만, 政黨은 금일 진보한 정치상에 불가결한 필요기관이다. 정부가 비록 책임내각을 조직한다 할지라도, 정당의 조직이 완전치 못하면 그 실현을 보기 어려우며, 인민이 비록 多數政治를 실행코자 할지라도, 정당의 성립이 없으면 그 유익함을 거두기 어려우니, 이는 구미 각국에 屢驗한 바라. 고로 정당의 분립이 없는 국가는 없다(安國善,<政黨論>(≪會報≫제3호), 24쪽).

고 했듯이, 애국계몽가들은 ‘책임내각’과 ‘다수정치’의 실현을 위하여 정당의 존재와 정당의 분립이 불가결의 것이라고 인식하였다. 김성희가 “오늘날 세계에 정당 없는 입헌국가 없고 정당 있는 전제국가 없다”하고, “정당이 세워진 연후에 국회가 이루어져 헌법이 정해지고, 헌법이 정해져 감독기관이 갖추어진 연후에 정부가 책임내각이 된다”고 했듯이,0817)金成喜,<政黨의 責任>(≪會報≫제3호), 22쪽. 애국계몽가들은, 정당은 입헌국가의 선결조건이며, 곧 국회개설에 의한 정부감독을 통하여 책임내각 곧 국민적 정부를 이루는 전제조건이라고 인식했던 것이다.

따라서 김성희는 정당의 책임을, “정부가 감독권을 스스로 줄 시기는 반드시 없을 것인 즉, 정부로 하여금 부득불 감독을 받게 하는 것이 국민적 정당의 책임이라”하고, 정부가 감독권을 스스로 주지 않을 것을 안다면, 국민이 마땅히 요구해야 하며, 그 요구의 목적은 ‘전국 통치기관을 대다수 인민과 더불어 共同’케 하는 것이고, 그 요구하는 것은 ‘憲法發布와 國會召集’이라고 하였다.0818)위와 같음. 이처럼 애국계몽가들은, 정당은 정부로 하여금 헌법을 발포하고 국회를 소집하여 감독기관을 갖추도록 요구하여, 국가의 통치기관을 국민과 공유케 함으로써 책임내각 곧 국민적 정부를 이루게 하는 추진체가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국민적 정당이 국민적 정부의 수립을 추구하는 것은 곧 국민적 국가의 건설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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