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1. 제국주의의 경제 침탈
  • 4) 해운업 침투
  • (6) 일본의 해운업 독점(1905∼1910)

가. 대외항로 독점

 러일전쟁 동안 일본과 러시아의 민영기선은 대부분 징발되어 민간항로가 중단되었다가 전후에 재개되었다. 러시아는 패전으로 동청철도회사 기선회사의 권리를 일본에게 탈취당한 후 의용함대(1878년 설립)에 일반 상선회사와 극동의 모든 기선회사를 흡수 통합시켰다. 의용함대는 블라디보스톡-상해선을 인수하여 1907년부터 시베리아철도와 연결시키고 ‘Express’라 불렀는데, 소속 기선이 부산에 기항하다가 중단하였다.205)孫兌鉉, 앞의 책, 473·494쪽.

 반면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호황을 맞이하면서 조일무역이 더욱 발전하자 대조선항로를 확충하였다. 우선 일본우선회사의 나가사키-부산선과 코오베-北淸線 등 전전의 명령항로는 1905년 9월 정부의 보조금 지급이 연장되면서 계속 운영되었다. 또 일본우선회사는 1906년 5월 오사카-진남포선(1907년 11월 폐지)을, 1906년 7월에는 오사카-원산선(1906년 9월 폐지)을, 그 해 10월에는 자유항로로서 요코하마-우장선을 신설하였다.206)安秉珆, 앞의 글, 128쪽. 코오베와 한국-북청을 연결하는 항로는 1912년 3월 명령만기와 함께 모두 폐지되었다.207)日本郵船株式會社 編, 앞의 책, 176·231쪽.

 오사카상선회사는 보다 적극적으로 항로를 정비·확장하였다. 우선 기존 항로의 정비 실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이 회사는 1904년 9월 오사카-인천선을 오사카-군산선에 합병시켜 폐항하고, 1906년 6월 오사카-군산선을 다시 인천까지 연장하여 오사카-인천선이라고 개칭하였다. 코오베-오사카선은 1906년에 정부보조금이 폐지되면서 1907년에 폐항하였다. 오사카-진남포선은 오사카-인천선이 폐지된 이후 기선수와 운항횟수가 늘어났다가 1906년 4월 이후 감소된 뒤 1907년 상반기에 폐항하였다. 오사카-부산선은 1905년 3월부터 나가사키에도 기항하였고, 1906년 9월 폐지되었다. 오사카-원산선은 1906년 4월 이후 블라디보스톡까지 연장하면서 오사카-블라디보스톡선으로 개칭되었다가 종착항의 변동에 따라 오사카-성진선에서 다시 오사카-원산선으로 개칭되었다가 1910년 4월 청진을 종점으로 하면서 오사카-북한선으로 개칭되었다. 인천-진남포선은 1906년 상반기에, 인천-군산선은 1907년 4월에 폐지되었다.

 다음으로 새로 개설된 항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05년 4월에 진남포-안동현선(1906년 상반기 폐항)이, 그 해 5월에는 나가사키-진남포선(8월에 나가사키-한국선으로 개칭되었다가 1907년 4월 안동현까지 연장하여 나가사키-안동현선으로 개칭)이 개설되었다. 나가사키-진남포선은 1910년 6월 나가사키-大連線과 합병하여 ‘조선 경유 나가사키-대련선’이 되었다. 1905년 8월에는 오사카-안동현선이, 1906년 12월에는 오사카-마산선(1907년 6월 폐항)이 개설되었다. 또 1907년 1월 오사카상선회사는 육군운수부와 船腹의 1/3을 임대하는 계약을 체결하면서 ‘우지나(宇品) 경유 오사카-안동현선’(1908년 7월 폐항)을 개설하였다. 이들 항로는 모두 일본정부의 보조를 받는 명령항로였다.208)이상 오사카상선회사의 항로개설에 대해서는 大阪商船株式會社 編, 앞의 책, 189∼191·198∼203쪽 참조.

 이밖에 일본정부는 大家商船合資會社를 보조하여 모지(門司) 등 일본지역과 블라디보스톡-원산-부산을 연결하는 2개의 노선을 개설토록 하였다. 이 항로는 1907년 오사카상선회사에 인계되면서 조선 기항이 폐지되었다.209)朝鮮郵船株式會社 編, 앞의 책,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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