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3. 형법·민법체계의 변화
  • 2) 입법의 형식

2) 입법의 형식

 조선시대에는 특별한 입법기관이 따로 없고, 관계 관청이 발의하여 대신들의 토의를 거쳐 왕의 재가를 받아 법령이 제정되었고, 내용상으로는 祖宗成憲인 舊法尊重의 이념으로 보수와 개혁이 긴장상태를 유지하면서 전개되었다.874)丁玉泰,<李朝立法節次에 관한 一考察>(≪논문집(법학·행정학편)≫29, 전남대, 1984).
金池洙,<受敎의 法的 性格과 理念>(≪韓國法史學論叢≫, 박영사, 1991) 참조.
개화기에 들어서 서구법의 영향으로 법령은 형식과 내용에서 차이를 나타내었다. 입법에 관한 기관으로 세워진 군국기무처는 총재 1명, 부총재 1명, 의원 10∼20명으로 구성되어 거기서 결정한 법령을 의안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 의안의 내용은 복잡하고 아직 조선시대의 전통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였다.

 근대법 형식의 단서가 보이는 것은 1894년 9월 12일 군국기무처가 의안으로 제정한<命令頒布式>인데, 전문 9조로 구성되었다. 이것의 내용은 법률·칙령·명령의 제정방식과 이들의 공포방법을 정하며, 외교문서의 작성방법, 관리의 임명장에 관하여도 규정하였다. 1894년 군국기무처가 폐지되고 김홍집 내각이 성립되면서 11월 21일에는 앞의<명령반포식>을 대신하여 칙령 제1호로<公文式>이 제정·반포되었다. 이<공문식>은 총 19조로 법률·칙령 등 법령의 상하단계를 규정하고 그 제정절차와 형식을 정하였다. 그러나 헌법이 제정되지도 않고 국회도 개설되지 않은 상태에서<공문식>에서 법률과 칙령 등을 구별한 것은 별 의미가 없지만, 내용상으로는 일본의 明治憲法에 따른 차이가 보인다. 그리고 법집행자가 법령을 남발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자문기관으로 中樞院을 두었으나 제 기능을 하지 못하였다.875)자세히는 李熙鳳, 앞의 글, 184∼198쪽.

 <공문식>은 이듬해 1895년 5월 8일에 전폭 개정되었는데, 국한문혼용체로 전 3장 18개조로 구성되었다. 이에 따라 법률과 명령의 반포절차가 확정되었다. 이것은 1887년에 제정한 일본의<공문식>을 번안한 것인데, 한국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제10조에서 각부 대신이 행하는 部令은≪관보≫에 반포하나 구습에 따라 적당한 처소에 게시할 수 있게 하였다. 이후 입법형식은 이에 근거하여 지속되었고, 다만 통감부기에는 통감부의 告示 외에도 일본법령이 적용되었다. 전통적 입법에서 근대적 입법으로 이전하는 과도적 과정에서는 그 형식과 내용에서 많은 혼란과 시행착오를 거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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