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5. 의·식·주생활의 변화
  • 1) 의복
  • (5) 여복

(5) 여복

 翟衣는 고종이 황제위에 오르자 明 황후의 것을 그대로 우리 나라 황후의 것으로 제정한 옷이다. 황후의 것과 황태자비의 것은 같은 것이었다. 심청색 바탕에 적문의 等數에 따라서 황후는 十二等하여 적문을 넣었고, 황태자비는 구등분하여 적문을 넣었는데 적문의 사이사이에는 梨花紋을 두었다. 깃과 도련 및 수구에는 紅色 선을 두르고 그 위에는 운용문을 織金하였다. 황태자비는 봉황문을 직금하였다. 적문의 십이등과 구등분은 면복의 십이장문과 구장문과 비유되는 것이다.

 황후 적의제를 보면, 적의·중단·폐슬·玉革帶·대대·綬·玉佩·말·舃·玉穀圭로 되어 있는데, 거기에 더하여 霞帔와 補를 더하였고 冠은 大首로 하였다. 純貞孝皇后(純宗皇后)의 적의가 현재 세종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그림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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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8>純貞孝皇后의 翟衣
<그림 8>純貞孝皇后의 翟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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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나라에서는 황후에 오르면서 적의가 바뀌었고 따라서 圓衫이 달라졌다. 황후의 것은 이것의 홍원삼이 아니고 황후의 복색을 따라서 黃圓衫이 되었다. 황색길에 다홍색과 남색의 끝동과 한삼이 달렸고 옷과 대에는 五爪龍의 운용문을 금직 또는 금박하였다. 대례복으로 사용할 때는 오조룡의 운용문을 金繡한 圓補를 양어깨와 앞뒤에 加飾하였으며 소례복사모로 착용할 때는 쌍봉문을 금수한 흉배를 앞뒤에 가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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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9>순정효황후의 평상복
<그림 9>순정효황후의 평상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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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후의 상복도 고유복인 치마·저고리이다. 일반인들과도 별 차이가 없다. 다만 첩지머리를 하고 있으며 노리개를 차고 있다. 이것도 독특하지는 않다. 저고리의 세부구조도 일반과 같다.

 우리 나라에서 양장의 시작은 1895년 단발령 이후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양장을 하고 기념사진을 찍은 모습이 남아 있다. 그리고 1900년에는 유학 갔던 여의사가 귀국하면서 양장을 하고 돌아와서 보여 주면서 유행하게 된 것이다. 그 후 1906년경 모자를 쓴 여인이 미국에서 양장을 하고 돌아왔고 유학간 학생들이 돌아오며 증가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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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0>19세기말 嚴妃 양장모습
<그림 10>19세기말 嚴妃 양장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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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1>1906년 귀국한 여인
<그림 11>1906년 귀국한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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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 여자복은 여권 신장과 더불어 의복의 활동성을 생각하게 되었다. 제일 먼저 기독교의 전도부인들이 짧아지기만 하던 저고리를 약간 길게 하고, 길기만 하던 치마를 다소 짧게 하여 외출과 활동에 편한 평상복으로 개량해 입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여학생의 교복이 되고 신여성의 옷차림으로 번져 나아갔다. 그리고 쓰개용 장옷 쓰개치마도 없어지고, 잠시 검정 우산을 내외용으로 쓰고 다니기도 하였다.

 여자들의 사회진출과 더불어 방한용으로 두루마기를 입기 시작하였다. 두루마기는 남자의 의관이었으나 여자용 두루마기는 추위를 막는 방한용이다. 일반 부인들은 비단으로 만들어 입었으며 아니면 무명으로도 해 입었다. 그러면서 여학생 특히 이화여자 전문학교에서는 겨울 정복으로 세무로 해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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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2>여자두루마기
<그림 12>여자두루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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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고리는 19세기말부터 더욱 짧아지기 시작하였다. 1880년대에는 거의 25㎝미만으로 짧아지더니 1900년대가 되면서 더욱 짧아져서 20㎝정도가 되었다. 1910년경에는 신여성들은 일방 약간씩 길어져서 20㎝가 넘어서기도 하였으나 전통을 고수하는 사람은 1910년대가 가장 짧아진 때로 18㎝정도가 되기도 하였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 다르기도 하겠으나 일반적인 경향임은 유물을 통해 볼 때 확실하다.

 또 깃의 모양이 달라졌다. 19세기에 들어와서는 당코깃이 계속되었다. 그 후 1900년 이후 당코깃이 자취를 감추었다.

 고름너비도 보통 3∼4㎝정도이고 길이도 한 끝 길어져서 50∼60㎝였다.

 19세기말부터 신여성들의 치마는 긴치마가 짧은 통치마로 변해 갔다. 그리고 이화전문에서는 20세기가 되면서 교복치마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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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3>1880년대 저고리
<그림 13>1880년대 저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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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4>1910년대 저고리
<그림 14>1910년대 저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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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5>깃나비 변천
<그림 15>깃나비 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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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6>20세기 초 통치마모습
<그림 16>20세기 초 통치마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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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柳喜卿>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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