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근대
  • 45권 신문화 운동Ⅰ
  • Ⅰ. 근대 교육운동
  • 4. 교육구국운동의 추진
  • 1) 근대 교육의 성격
  • (1) 근대 교육의 성격

(1) 근대 교육의 성격

 19세기 후반기 이후의 한국사는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한 국권수호 즉 자주화의 방향과 함께 한편으로는 전통사회로부터 탈피하여 새로운 근대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근대화의 방향으로 전개되는 시대상황으로 설명될 수 있다.

 근대화의 성공이 제국주의 침략을 저지하고 자주국가로의 발달을 이룩하는 것을 전제로 할 때, 한국근대사는 국권을 수호하기 위한 민족운동이 그 주류를 이루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19세기 후반기에서 20세기 초까지 전개된 민족의 여러 방향의 활동은 그 나름대로 국권의 수호와 근대화를 위한 민족운동이라는 의미와 성격을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시각에서 한국의 근대 교육은 이러한 민족의 움직임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역량을 조성하는 중요한 역사적 기능을 내포하고 있다. 즉, 한국의 근대 교육은 개항 이후 밀려오는 서양의 근대문물을 수용하여 새로운 사회발전의 기틀을 마련하는 동시에 외세의 침략에 저항하는 민족의 정신적 기반을 형성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한국의 근대 교육은 민족교육이라는 역사적 성격을 갖는 동시에 근대 교육운동 그 자체가 민족운동의 일환으로 전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한국 근대 교육을 민족교육으로 인식할 때 이는 주로 1905년 이후의 사립학교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1894년 갑오개혁이 진행되면서 실시된 교육개혁의 결과 성립된 관공립학교의 교육이념이 1895년 2월 발표된 교육입국조서나205)≪承政院日記≫, 고종 32년 2월 2일.
≪舊韓國官報≫, 개국 504년 2월 2일, 조칙 1(이하≪官報≫).
1895년 9월 발표된 학부고시에서 나타나고 있는 바와 같이 애국적이고 민족적인 성격이 강하였다. 학부고시의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교육은 개화의 본이라 애국의 心과 부강의 術이 모두 학문으로부터 生하나니 오로지 나라의 문명은 학교의 성쇠에 달렸는지라 이제 23부에 학교를 아직 다 설시하지 못하였거니와 위선 京城內에 소학교를 壯洞·貞洞·廟洞·桂洞의 네 곳에 설립하여 아동을 교육하는데 … 그 과정은 五倫行實로부터 小學과 本國歷史와 地誌등 時宜에 적응한 서책을 일체 교수하여 虛文을 버리고 實用을 尙하여 교육을 務盡케 하노니 夫 외국 학교의 규정을 보건대 兒童이 학교에 입학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父兄을 罰하는 예도 혹 있는지라 本國에는 이 규정을 아직 設擧치 못하였으나 아동의 부형되는 자는 그 자제를 대동하고 本部에 來하여 許入狀을 受한 후 학교에 赴하여 학업을 務修하되 혹 나태하여 끊어짐이 없기를 바람(≪舊韓國官報≫, 1895년 9월 30일, 告示<學部告示>4호).

 즉 교육이 국가발전의 기초가 됨을 말하고 있으며 관립소학교의 교육내용에서 국어와 본국사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이보다 조금 앞서 발표된 소학교령과 소학교교칙대강의 내용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으며 이는 소학교뿐만 아니라 같은 해에 설립된 한성사범학교나 외국어학교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소학교교칙대강에 제시된 교과목의 요지에서 본국지리의 교수요지는 “…그 생활에 관하는 중요한 사항을 이해하게 하고 겸하여 애국하는 정신을 養함”이라고 하였으며, 본국역사에서는 “國體의 대요를 알게 하여 국민된 志操를 養함”이라고 하였다.206)≪官報≫, 개국 504년 8월 15일, 학부령 3호<小學校敎則大綱>.

 한성사범학교는 그 교육요지의 하나로 “尊王愛國의 志氣에 富함은 敎員者의 중요한 바 故로 학원으로 하여금 평소에 충효의 大義에 明하여 국민의 志操를 振起함을 요함”으로 규정하고 있다.207)≪官報≫, 개국 504년 7월 24일, 학부령 1호<漢城師範學校規則>.

 이로 보아 한국 근대 교육의 발전기인 1895년 정부에서 설립한 각종 관립학교에서 전개된 교육이 민족교육의 전개과정으로 보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이러한 교육의 성격은 1906년 일제의 통감부에 의해서 교육 침략이 진행되기까지 계속된다고 보아야 한다.

 한편 관공립학교에서 나타난 민족교육의 성격은 거의 같은 시기에 설립되기 시작한 사립학교에 있어서도 나타나고있다. 1906년 전반기에 이르기까지 전국적으로 설립된 사립학교는 관공립학교만으로는 부족한 교육의 수요를 충족시키면서 관공립학교와 함께 민족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였다.

 당시 관공립학교의 민족교육의 성격은 국어와 본국사를 중요시하였다는 것에서 단적으로 찾아볼 수 있다. 이는 앞서 제시한 학부고시에서도 나타난 바이지만 근대 교육 발전기에 가장 고등한 수준의 사범학교에서는 이것이 더욱 강하게 제시되고 있다.

 한성사범학교에서 본국사의 교육을 강조하고 이에 대한 이해를 중요시하였다는 것은 입학시험과목에 본국사 과목이 포함되어 있었고, 또 입학자에게 필요한 서류로 제시해야 하는 學業履歷書에 역시 본국사를 이수한 사실을 기록하여야 하였던 사실에서도 잘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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